올해 처음 시행되는 원유가격 연동제는, 매년 8월 통계청이 발표한 우유생산비 증감액을 현재 원유 기본가격(리터당 834원)에 반영해 기준원가를 산출하고, 여기에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반영한 변동원가를 더해 원유기본가격을 조정한 뒤 원유가격을 결정하는 제도다.
그동안 원유가격 조정원칙이 확립되지 않아 3~5년마다 원유생산농가와 유가공업체 간에 원유가격을 두고 극심한 갈등이 재연됐을 뿐만 아니라, 그러다 보니 원유값이 일시에 급등하는 등의 문제도 반복돼왔다. 원유가격 연동제는 이같은 불합리한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 2011년 12월 양측 합의로 마련됐다.
낙농진흥회 이근성 회장은 연동제 첫 시행과 관련 “이는 생산자와 유업체가 오랜 기간 대화를 통해 이루어낸 결과물로서 상생·협력의 좋은 본보기가 될 것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물론 원유가 인상으로 유제품은 물론 빵이나 커피, 아이스크림 같은 가공식품의 가격도 덩달아 오를 것이다.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유통업계에는 원유가가 100원 오르면 소비자가격은 300원 오른다는 통설이 있지만, 한창 원유가 파동을 겪던 2011년 8월, 원유가가 리터당 704원에서 834원으로 130원 올랐을 때 흰우유 가격은 200원 오른 적도 있다. 그래서 원유가 인상폭에 비해 소비자가격 인상폭이 과도하다는 지적이 많다. 유제품 생산 유통 마진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는 얘기다. 문제는, 소비자가격과 별도로 원유가 자체가 합리적인가 아닌가에 달렸다고 하겠다.
조합원 현재 8,000여 농가
덴마크에는 세계적 규모의 유가공 협동조합 ‘알라푸즈(Arla Foods)’가 있다. 2011년 매출 7조원, 세계 8위다. 1882년 버터생산 협동조합으로 출범해 100여년 동안 낙농조합과 통합과정을 거치며 성장해 왔다. 2000년, 스웨덴의 낙농 협동조합과 합병을 통해 오늘날 알라푸즈가 됐다. 외형상으로는 다국적기업이 된 것이다. 합병은 양측의 시너지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낙농가들이 많은 덴마크로서는 시장을 더 넓혀야 했고, 스웨덴 낙농가들은 안정적인 공급망이 필요했다. 양측은 한 문화권인데다, 협동조합이라는 공동 마당이 있었기에 합병은 순조로웠다.
현재 조합원 현황은 덴마크 3,700여 농가, 스웨덴 3,500여 농가, 독일 600여 농가 등 8,000여 농가에 이른다. 조합원은 이웃 독일은 물론 영국, 핀란드까지 확산돼 있다. 협동조합의 역사가 깊고 유럽연합 결성으로 시장이 열려 있는 유럽은 협동조합도 국경을 넘어 합병을 하고, 이웃나라 협동조합에도 가입을 한다.
합병이나 조합원 자격 개방의 핵심은 하나다. 낙농가가 생산한 원유를 제값받게 해주는 것이다. 알라푸즈의 설립 취지다. 외국 낙농가가 동참하는 이유도 이것이고, 국경을 넘어 합병을 하는 배경도 이것이다. 규모의 경제나 국제경쟁력 확보 등이 모두 이득을 최대로 올리기 위해서다.
원유값 제때 제몫으로 받아
이는 알라푸즈가 회사 수익 변화추이를 14일마다 원유납품가에 반영해주는 경영방침에서도 확인된다. 농가들은 돈을 제때 제몫으로 만지니 그만큼 살림이 편해지는 건 당연지사.
또 알라푸즈는 생산한 유제품의 중간 유통단계도 대거 줄였다. 조합원들은 납품가 안정과 수익 증대를 동시에 이룰 수 있는 구조다. 이를 위해 조합원 농가의 축사 운영과 원유 품질관리까지 지원한다. 물론 성공의 바탕에는 협동정신이 깔려 있다. 힘을 합쳐야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데 모든 조합원들이 동의한 것이다.
알라푸즈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역시 숱한 역경이 있었다. 애초 농민들로서는 원유 생산과 가공 모두에서 민간 사기업과 승부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시장 점유율은 점차 위축됐다. 제대로 맞붙을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자체조작을 갖추어야 했다. 아니면 종속되든지. 농민들은 협동조합을 선택했다. 자신들은 생산에 집중하고, 가공과 마케팅은 협동조합을 통해 힘을 모으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모든 낙농가들이 적극 동참한 것은 아니다. 조합원이 공급하는 원유에는 무조건 최고가를 매겼다. 당연히 동참자가 늘었다.
현재 조합 축산농가는 49개 권역으로 나눠 운영된다. 각 권역을 대표하는 145명의 농민대표와 전문경영인단 10명으로 구성된 의사결정기관이 원유값이나 회사의 중요 정책들을 결정한다. 물론 1인1표다. 또 농민대표 중에서 선출된 16명이 경영감독위원회를 구성해 농가의 권익을 위해 조합 경영진에 의견을 개진할 수는 있다.
공격 마케팅, 핵심 브랜드 육성
알라푸즈는 조합원의 최대 이익이라는 원칙에 충실하다. 마케팅 전략도 이에 초점을 맞춘다. 매년 마케팅 예산을 늘리고, ‘Lurpak’, ‘Castello’ 및 ‘Arla’ 등 핵심 브랜드를 집중 육성한다. 원유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한 전략이다.
유제품 시장은 가격변동이 심하다. 알라푸가 낙농가를 위해 가능한 한 높은 원유가격을 달성하는 것을 핵심목표로 잡고 있는 이유다. 인수·합병(M&A)에 대한 관심도 여전히 높다. 낙농 분야에서 규모화와 국제화는 경쟁력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국제 무대에서의 시장 쟁탈전은 유통망이 승패를 결정한다.
전인철 기자 sbnews7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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