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소상공인 ‘이제 협업이다“=뉴질랜드 키위 브랜드 제스프리

키위는 이제 상당히 대중적인 과일이 됐다. 시원한 키위 생과일 쥬스 한 잔이면 요즘같은 더위도 저만큼이다. 키위는 비타민C와 엽산이 풍부하게 함유돼 있고, 칼륨·칼슘·인 등 미네랄도 많이 들어 있는 데다 과일 가운데 영양성분 농축도가 가장 높아, 스트레스 해소는 물론 임산부 건강과 어린이 성장발육에도 좋다고 한다. 특히 요즘은 골드 키위가 시장에서 인기다.

제주산 골드키위도

국내 시판 키위는 일부 제주에서도 생산되지만 나머지는 전부 수입산이다. 제주산이든 수입산이든 상표를 보면 대부분 ‘제스프리’라 새겨져 있다. 제스프리 인터내셔널은 미국, 유럽에 이어 우리나라 제주도에서도 2007년 1월부터 제주산 골드키위를 시판하고 있다. 뉴질랜드 베이 오브 플렌티 지역의 기후조건과 가장 비슷한 남제주군과 2004년에 협약을 맺고, 농장을 엄선, 재배 허가하여 질좋은 상품을 내놓고 있다.

제스프리는 뉴질랜드 키위 브랜드다. 세계 1위의 키위 판매고를 올리고 있는 제스프리 인터내셔널의 브랜드다. 이 회사는 뉴질랜드 키위생산자협동조합이 설립한 키위 마케팅 전담 자회사다. 그래서 정확히 말하면 제스프리는 협동조합이 아니다. 협동조합이 설립한 유한회사다. 하지만 부부가 잘 살면 누이가 곧 매부니, 그게 그거듯, 제스프리도 협동조합으로 통한다. 암튼 뉴질랜드 키위생산자협동조합이 결성되고, 이 조합에서 생산한 키위 판매를 전담하는 제스프리 인터내셔널이 생기게 된 배경에는 대부분의 협동조합의 경우와는 다른 독특한 역사가 있다. 한마디로 국가가 부여한 ‘착한 독점’이다.

유통 주도에서 생산자 주도로

뉴질랜드는 1952년 키위 첫 수출을 시작했다. 수출은 꾸준히 늘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 연이은 풍작과 난립한 수출업체들 간의 가격인하 무한경쟁으로, 수출 외형은 늘어났지만 대부분의 농가는 적자를 면치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대형업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업자들즉 유통업자들만 과실을 챙긴 것이다.

키위 생산농가들에는 비상이 걸렸다. 농가들은 개별적으로 수출업체들과 거래해서는 ‘남 좋은 일만 시킨 꼴’이라는 걸 뒤늦게 인식한다. 자신들이 주인이 되기로 했다. 대안은 협동조합이었다. 수출업체와 개별 거래로 농가들이 서로 경쟁만 할 것이 아니라 뭉쳐서 협동해 유통까지 주도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1997년 뉴질랜드 키위생산자협동조합이 결성된다. 막다른 골목에서 생존을 위한 결단이었다. 그리고 마케팅 전담 자회사를 설립한다. 제스프리 인터내셔널, 그리고 그 브랜드로 수출 창구를 단일화했다.

제스프리 아니면 수출 못해

이 대목에서 중요한 건 정부가 농가를 거들고 나섰다는 것이다. 뉴질랜드 정부는 제스프리의 수출독점권을 인정하는 수출창구단일화법을 제정하여 이들을 지원했다. 키위 농가들이 100% 소유한 제스프리 브랜드가 아니면 누구도 키위를 수출하지 못하게 법으로 강제했다. 뉴질랜드에서 키위를 생산한 농가는 제스프리를 통하지 않고는 수출할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제스프리가 키위 수출을 독점하고 있는 구조다. 2710여개 키위 생산 농가 중 2700개가 제스프리를 통해 키위를 수출하고 있다.

뉴질랜드 정부나 생산자협동조합은 이는 독점이 아니라 창구단일화라고 말한다. 이를 통해 뉴질랜드 전체 키위 생산농가를 보호하고 소득을 증대시키고, 국익도 도모하자는 것이다. 대형유통업체가 주도해 그들의 주머니만 채우던 수출구조를 생산자협동조합이 되찾아오는 게 핵심이다.

세계 교역량 절반 넘어

수출창구가 단일화되자 수출은 급신장했다. 창구단일화로 회사 역량이 집중돼 기술혁신과 수출역량 강화가 동시에 이뤄졌다. 제스프리의 프리미엄 키위는 경쟁국인 이탈리아나 칠레의 키위보다 50% 이상 높은 값에 거래된다. 수출대상국별로 현지화도 추구해 나라마다 맛과 크기가 다른 키위를 내놓았다.

그 결과 제스프리는 세계 1위의 키위 수출회사가 됐고 제스프리의 수입은 농가가 제몫만큼 나눠 가졌다. 제스프리의 지난해 매출액은 151억 뉴질랜드 달러(한화 약 1조4000억원)에 달한다. 전 세계 키위 교역량에서 제스프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45% 정도지만 금액으로는 75%에 달한다.

제스프리가 농가에서 직접 키위를 구매하는 것은 아니다. 수출을 대행하고 수수료만 받는 방식이다. 과거 우리나라의 종합상사와 유사한 성격이랄까. 다른 점이라면 제스프리는 생산농가의 생산시설 관리는 물론 생산품목과 재배방식 등을 일일이 지도한다는 점이다. 기후변화와 각종 병충해에도 대비하고, 국제가격 변동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시스템도 가동하고 있다. 협동조합이 아닌 개별농가가 나섰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생산자협동조합 산하에는 마케팅을 전담하는 제스프리 이외에도 키위를 선별 포장하는 회사, 운송회사, 비료회사 등 80여 개의 사업체가 따로 있다. 하지만 이 모두가 생산자들의 소유다. 생상자만이 조합원이 되고, 개별 농가의 지분규모 또한 직전 3년 동안의 키위 생산량에 비례해 정한다. 철저한 생산자협동조합이다. 협동조합도 그 토양이나 경제환경 문화풍토 등에 따라 얼마든지 가변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대법원도 농가 손들어줘

이런 경쟁력을 믿었기에 정부도 과감히 나설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물론 시장주의자들의 반발도 있었다. 이들은 뉴질랜드 정부에 대해 '독점이다', ‘위헌적 규제다’, '반시장적이다'며 소송까지 불사했다. 하지만 뉴질랜드 대법원도 농부들의 손을 들어줬다.

뉴질랜드는 농업국가다. 농업은 국가 GDP의 12%를 차지하고 있다. 전국토의 52%가 목초지인 나라, 사람보다 젖소가 많은 나라, 농업 수출이 총수출의 절반인 나라다. 우리나라 수출품목이 반도체, 조선, 자동차 등이라면 뉴질랜드에는 유제품, 목재, 키위가 있다.

뉴질랜드 농업 경쟁력의 하나는 강력한 협동조합이다. 협동조합 폰테라를 통한 낙농업 수출도 세계 1위다. 하지만 협동조합이라는 장치를 외면했던 사과나 배 생산 농가들은 결국 경쟁력을 상실해 낙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제스프리의 ‘독점’에 대해서는 ‘착한 독점’을 이야기한다. 애당초 독점을 막자는 것은 부당한 부의 편중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제스프리의 독점은 이와는 다르다. 오히려 99%의 경제적 약자에게 독점의 과실이 돌아간다. 협동조합들의 협동으로 이뤄낸 독점은 그래서 착한 독점이다.

전인철 기자

관리자  @

<저작권자 © 소상공인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