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문화발전과 독서진흥을 위해서는 하루빨리 도서정가제가 제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재차 강조됐다.
출판생태계 왜곡 극심
지난 4월 17일 국회 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 열린 ‘출판문화산업 진흥을 위한 도서정가제 법제화’ 공청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한국출판학회 부길만 회장은 “도서정가제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함으로써 도서유통질서가 문란해졌을 뿐만 아니라, 출판생태계도 왜곡될 대로 왜곡되고 말았다”며 이같이 역설했다.
부 회장은 발제를 통해 “도서정가제의 문제는 역사적으로 보면, 서점출판계 차원에서 자율적으로 시행되던 제도가 공정거래위원회 등의 경제 논리 개입으로 헝클어진 데에서 기인했다”며 “현재 도서정가제는 무늬만 남아 실제로는 과도한 할인 판매가 넘쳐나는 상황”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부 회장은 이어 ▲빅타이틀만 추구하는 출판사들의 무리한 마케팅 ▲베스트셀러를 펴내고도 출판사가 이익을 못내는 유통구조 ▲책값 거품 ▲출판물의 질적인 저하와 유사 기획 또는 모방 출판이 성행 등, “암울하게 변해버린 출판시장의 변화”를 소개하며,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완전한 도서정가제가 이뤄져야 한다”고 못박았다.
“도서정가제는 지나친 책값 인상과 출판의 질적 저하를 막기 위해 꼭 필요합니다. 할인제도에서 출판사는 잘 팔리는 책, 기성 저자의 책을 선호하고, 서점은 이윤이 많이 남는 책, 기성 저자의 책을 진열하므로 결국 책의 다양화가 막힙니다. 또 할인 제도는 높은 할인율로 경쟁할 수 있는 대형 출판사에게 유리하고, 규모가 작은 출판사, 신규 출판사에게 불리합니다. 또한 가격경쟁에서 유리한 중앙의 대형서점, 온라인서점이 전국에서 도서시장을 독식할 위험이 있고 지방의 중소서점은 경영이 악화되어 문을 닫습니다. 지나친 할인 경쟁은 결국 그 피해가 온 국민에게 돌아갑니다.”
“아직도 미흡한 부분 있어”
2013년 1월 9일 도서정가제를 규정한 출판문화산업진흥법 제22조를 일부 개정하는 ‘출판문화산업진흥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국회에 발의되었다(대표발의 민주통합당 최재천 의원).
부 회장은 이에 대해 “이번 개정안은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따른다는 조항을 삭제한 점, 예외 조항에서 ‘발행일로부터 18개월이 지난 간행물’을 삭제한 점 등은 현행 법에 비해 진일보했다”면서도 “아직 미흡한 부분도 있다”고 지적했다.
향후 과제도 유념해야
그는 “이번 개정안이 완전한 도서정가제 실현보다는 할인이 성행하는 현재의 문란한 도서유통 질서를 우선 막아야 한다는 현실적 시급성이 앞서 있는 만큼, 완전한 도서정가제 정착을 위한 전단계로서 의의가 있”지만, 도서정가제 법제화 이후에도 서점·출판계 및 정책 당국의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부 회장은 ▲완전한 도서정가제 실시 ▲중소서점 살리기에 모든 정책적 지원 ▲지역문화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역 서점들을 육성·지원 ▲독서운동 전개 ▲도서유통과 출판문화의 발전을 위한 정책적·재정적 지원 확대 등을 향후 과제로 제시했다.
공정거래법도 개정돼야
한편 토론에 나선 한국출판저작권연구소 박익순 소장은 “그 동안 출판서점계가 행정적 구제 노력과 헌법소원 등 사법적으로 도서정가제 문제를 시정하려던 시도는 모두 결실을 맺지 못했다”며 “특히, 법적 소송 과정을 통해 현행 출판문화산업진흥법가 여러 단서 조항이 있어 복잡하고, 이해 관계자들이 서로 다르게 해석할 정도로 허점이 있음이 분명해졌으므로, 현행 법을 단순명쾌하게 개정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박 소장은 “완전 도서정가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출판법 개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후속 조치로 공정거래법 개정이 이뤄지기를 희망했다.
양수열 한국서점조합연합회 정무위원장도 “가격경쟁은 동네서점만 멸종시키는 것이 아니라 치킨게임처럼 출판문화산업 자체를 파괴시킨다”며 “도서정가제가 실시되면 거품가격은 제거될 수밖에 없고 결국에는 착한가격 그리고 정직한 가격이 출판사 판매 마케팅의 기본이 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전인철 기자 sbnews777@naver.com
“정가제 하면 책값 오히려 내린다”
조은재 양철북 대표, 정부 및 선진국 자료 등 제시
“책값 할인이 무한정 가능한 현행 제도 하에서 독자들은 단기간 할인 혜택을 받지만 그에 대한 대가로 출판 기반이 파괴되는 비용을 지불해 왔습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자유가격제(할인제)야말로 책값을 인상시키며, 도서정가제의 강화는 책값을 하향 안정화시킵니다.”
이날 공청회에서 토론자로 나선 조재은 ‘양철북’ 대표는 ‘도서정가제가 강화되면 독자들은 비싼 값에 책을 살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도서 할인판매를 허용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독자들을 위한 제도가 아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책은 다품종 소량 생산을 하고, 또한 대부분 출판사가 중소규모이다 보니 대형서점들에 대해 시장에서 약자 위치에 있습니다. 그래서 할인 판매를 하게 되면 최소한의 마진을 보장하기 위해 책값을 높게 책정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조 대표는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동일 도서를 기준으로 유럽의 책값을 비교한 결과, 자유가격제(할인제)를 실시하고 있는 영국의 책값이, 정가제를 실시하고 있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같은 4개국의 평균 책값보다 높았다”며 2005년 부길만 교수가 도서정가제 공청회에서 제시한 발제 자료를 소개했다.
조 대표는 자신의 주장에 대한 입증자료로 2012년 정부 물가관계장관회의 자료도 제시했다. 최근 5년간 초등학교 참고서 책값(할인 가능)과 중고등학교 참고서 책값(정가제) 인상률(표1)을 조사한 이 자료에 따르면, 2009년 이후 정가제를 한 중고등 참고서는 책값이 상대적으로 안정되거나 일부 인하된 데 비해, 할인을 한 초등 책값은 소비자물가상승률을 상회해서 매년 상당 폭으로 인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표1=초등 참고서 가격 인상률(정가제 비적용 도서)과 중고등 참고서 가격 인상률
|
구 분 |
‘09 |
‘10 |
‘11 |
‘12.1분기 |
‘12.4월 |
|
소비자물가지수 |
2.8 |
3.0 |
4.0 |
3.0 |
2.5 |
|
초등학교 (가중치 1.1) |
11.7 |
6.5 |
8.3 |
5.4 |
2.4 |
|
중학교 (가중치 1.0) |
12.1 |
1.6 |
1.8 |
1.8 |
3.0 |
|
고등학교 (가중치 1.0) |
0.6 |
△0.5 |
1.6 |
1.4 |
△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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