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실패로 삶이 힘드십니까? 절대 좌절하지 마시고 00콜과 함께 다시 한 번 세상에 맞서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모 대리운전 업체의 구인 광고 문구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충분히 도전해볼만한 직업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 최근 들어 대리운전 업체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으며, 업체끼리 연합 전선을 구축하는 등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곳이 바로 대리운전 업계의 현실이다.
그 속에서 죽어나는 것은 대리운전 프로그램개발사도 콜대행업체도 아닌 대리운전 기사들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대리운전 업체가 바로 콜대행업체다. 프로그램개발사는 콜대행업체와 계약을 맺고 건당 콜수에 따라 수수료를 지급받는다.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 속에서 프로그램개발사와 콜대행업체들은 망하지도 문을 닫지도 않는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현재 국내에는 7000여 개의 대리운전 업체가 성업 중이며, 종사자만도 약 12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하루 콜만도 40만 건에 이르고 있지만 업체 간 과당경쟁에 따른 출혈을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오히려 사이좋게 콜을 공유하기까지 한다.
콜보다 대리운전 숫자가 더 중요
대리운전 기사들도 이러한 구조에 익숙한 듯 누구 하나 문제점을 거론하지도 않는다. 간혹 업체와 언쟁을 일삼는 이도 있다지만 다음날 바로 그 업을 접어야만 한다. 업체 간 정보 공유를 통해 블랙리스트에 오른 대리기사들의 휴대기기에는 콜이 전송되지 않도록 락을 걸기 때문이다.
불의를 못 참고 정의를 행사한 대가치고는 너무 가혹하다. 이처럼 대리운전 기사들은 제도권 변방에서 숨죽인 채 하루하루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대리운전 업계의 이 같은 현실에 대해 한국대리운전협동조합 이창수 이사장은 그 이유를 대리운전 기사와 업체 간 수익배분 구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콜대행업체는 수수료 명목으로 요금의 30%가 넘는 수수료를 기본으로 챙기며, 대리운전 프로그램 사용료 대가로 하루 평균 3000~4000천원의 출근비까지 매일 챙긴다는 것.
출근비는 프로그램을 켜는 순간 대리운전 기사들이 미리 예치해둔 가상계좌에서 자동으로 인출된다. 보험료 선납도 업계의 관행으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일부 콜대행업체는 한 개 보험으로 2곳 이상의 대리운전 업체와 계약을 체결하고 일하는 업계 관행을 무시한 채, 자사 지정의 보험 가입을 또 다시 강요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래저래 대리운전 기사만 피해를 보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이 이사장은 “대리운전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에 접어들었지만 오히려 신생업체가 지속적으로 생겨나고 있는 것”이라며 “이러한 모순된 구조가 유지될 수 있는 것도 불합리한 회사 방침에 따라가야만 하는 대리운전 기사가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현재와 같은 구조 속에서는 실제 걸려오는 콜 숫자는 의미가 없는 것”이라며 “콜대행업체 입장에선 소속 대리운전 기사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안정적인 고정 수익이 창출되기 때문에 대리운전 기사 모시기에 열을 올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협동조합 통해 활로 모색
노조도 결성할 수 없는 신분의 특성상 대리운전 기사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협동조합이었다. 이처럼 제도권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대리운전 기사의 입장에선 협동조합이 한줄기 빛이나 다름없었다. 서울시 협동조합 1호 기록된 사실만 보아도 새로운 삶을 개척하겠다는 전국 12만 대리운전 기사들의 바람이 얼마나 간절했는가를 알 수 있다.
사회적 약자인 대리운전 기사들이 모여 만든 조합인 만큼 한국대리운전협동조합의 목표도 거창하지 않았다.
과도한 콜수수료와 부당한 벌금, 보험료 횡령 등 대리운전 업계의 고질적 문제를 스스로 개선하겠다는 것이 전부였다. 조합은 또 자체 콜센터 운영을 통해 대리운전 수행 중 발생한 분쟁·사고 등의 사고처리 지원업무를 강화하는 한편 대리운전 교육 프로그램을 통한 기사로서의 자질함양과 대리운전 기사들의 권익보호에도 앞장선다는 계획이다.
조합은 또 조합원들의 경제적 여건 완화를 위해 자체 콜센터를 직접 운영할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사회적 기업으로 남을 터
한국대리운전협동조합의 중장기 사업에는 사회적협동조합의 설립 목적에 부합되는 부분도 꽤 있다. 우선 ‘시민 밤길 지킴이’ 사업이 그것이다.
이와 관련, 이상국 사업본부장은 “수도권 약 8만명의 대리운전 기사들이 저녁 8시부터 새벽 5시까지 수도권 곳곳의 안전을 살피는 감시자의 눈이 될 수 있다”며 “대리운전 기사의 핸드폰은 개인 위치정보 수집에 동의한 상태이기 때문에 핸드폰으로 사고 현장의 사진을 찍고 관제센터에 전송할 경우 신고 위치가 자동으로 접수돼 사고 해결의 신속성과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합은 또 대리운전 기사의 신분증을 발급해 시민들의 신뢰도를 확보함과 동시에 실명제 정착을 통해 대리운전의 서비스 질을 향상시킨다는 계획이다. 이밖에도 조합은 대리운전 관련 교통사고 상담전화(1688-8232)를 지역 밀착형으로 확대시키는 한편 타 협동조합과의 네트워크 구축, 카쉐어링 연계 서비스 구축 등의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한편 이 본부장은 “우리 조합을 포함해 사회적 약자들이 만든 조합의 자생력 강화를 위해선 정부의 적극적인 금융지원이나 세제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창수 이사장 “권리 찾고자 조합 설립”
대리운전 기사들은 자신의 의지대로 선택한 직업이 아니다. 폐업, 실직 등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로 최하위 계층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약자들이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리운전프로그램 개발사와 콜대행업체는 본인들의 잇속만을 챙기기 위해 고액의 수수료, 가격 출혈 경쟁, 보험료 횡령, 부조리한 벌금 정책, 일방적인 배차 제한 등으로 대리운전 기사들을 착취하고 있는 것이다. 또 사회적 약자란 신분을 이유로 깔보고 무시하는 사회적 인식이 전국 12만 대리운전 기사들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겨주고 있다. 대리운전프로그램 개발사와 콜대행업체만 살찌우는 구조적 폐단을 막는 동시에 대리운전 기사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 차원에서 협동조합을 만들게 되었다.
김영욱 기자 sbnews777@naver.com
관리자 @
<저작권자 © 소상공인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