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만 되면 달려드는 대기업! 누가 말려주나!

“대기업 MRO는 재벌공화국의 퇴행적 모습의 한 단면이다”
한국산업용재협회(이하, 협회) 허부영 이사는 말한다. 그는 이어 “재벌들은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공구 및 사무용품을, 자신들이 만든 유통업체를 통해서 구입하고, 자신들이 투자해 만든 룸살롱에서 손님을 접대하고자 한다”라면서, “이렇게 해서 관련업계가 다 사라지고, 결국 재벌들 자신들만 살아남으면 과연 그 체제가 얼마나 존속될 것 같은가”라고 반문했다. 대기업 MRO란 기업체나 공공기관에서 필요로 하는 소모성 자재의 구매와 관리를 대행하는 대기업 계열의 유통업체를 말한다.



지난 1995년 WTO(세계무역기구)의 GATS 체제가 출범한 이후, 우리나라 소매업계에 불어 닥친 대기업 대형마트 그리고 SSM(기업형 슈퍼마켓) 광풍은 국내 소매업계를 쑥대밭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거기에다 지난 2000년부터 시작된 대기업MRO는 10여년 만에 급속도로 국내 중소도매업계 시장을 잠식하며, 관련업계를 사지로 몰고 있다.

5년여 간의 사이를 두고 대기업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중산층과 서민들이 차지하고 있는 양대 시장을 싹쓸이해 가고 있다.

9년간 슈퍼 31,500여개 감소
대기업 MRO보다 5년 일찍 시작된 대기업 대형 마트들은 실제로 슈퍼 및 시장들의 생존을 심각하게 위협해왔다. 2000년 162개 점포에서 11.2조원의 매출을 올린 국내 대형마트는, 2008년에는 385개 점포에서 29.9조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10년 새에 거의 3배의 매출 신장을 기록했고, 그만큼 재래시장 및 슈퍼는 매출 감소를 기록할 수밖에 없었다.

비슷한 기간의 중소기업청 통계에서도 이러한 사실은 여실히 드러난다. 2001년 11만 685개였던 슈퍼마켓이 2009년 7만9,200개(추정)로 9년간 28%나 감소했다.
또 2008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99년 46조원에 이르렀던 재래시장 매출이 2007년27조원으로 41% 하락한 반면, 대형마트는 99년 8조원이었던 매출이 2007년 28.3조원으로 무려 253% 폭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이 정면으로 겹치기 때문에, 슈퍼나 시장의 매출이 대기업 대형마트 쪽으로 옮아간 풍선효과인 셈이다. 여기에 대기업들은 SSM마저 출점을 강행해, 2001년 202개였던 SSM이 2010년 787개까지 불어나 골목 어귀에서 정면으로 슈퍼와 재래시장을 고사시켜가고 있다.

대기업 MRO 업체로 인한 매출감소 심각
그렇다면 이보다 5년 늦게 영업을 시작한 대기업 MRO 업체들은 중소규모 도매업체 시장을 얼마나 잠식해 들어가고 있을까. 2001년 3조7천억원을 기록한 대기업 MRO사들은 2009년 21조원의 매출을 기록해 연평균 34.5%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에 대해 산업용재협회가 지난 해 3월과11월 2차에 걸쳐, 전국 10여만 개에 이르는 산업용재업체 중 400개사를 샘플링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최근 3년간 해당 회사들이 25%의 매출 감소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소상공인신문사가 청계천 상가를 르포하면서 파악한 결과에서도, 관련업체들 이 대부분 심각한 매출 감소를 겪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빈 점포들이 빠르게 늘고 있고, 택배업체들도 최근 몇 년 사이에 30%의 매출이 줄 정도로 상권의 침체가 눈에 띄게 확산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2-3년 사이에 더 많은 점포들이 폐업할 것으로 예상할 만큼 일부 상인들의 위기감은 상당했다.

땅 짚고 헤엄치기 식 대기업 MRO
돈이 된다 싶으면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달려드는 국내 대기업 문화에 대해, 일본의 베어링 제조업체 NSK 한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꼬집었다. “일본 대기업들은 스스로 부가가치를 창출해 새 사업을 벌이는 경우는 많지만, 한국 대기업처럼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이미 형성돼 있는 다른 시장에 뛰어들지 않는다”며 “이것은 상도의의 문제이며, 만일 신규 사업을 벌이고자 한다면,이미 형성돼 있는 상권을 존중하면서 차별화된 새로운 아이템으로 도전하는 게 마땅한 게 아닌 가”하고 덧붙였다.

현재 대기업 MRO가 가장 비난을 받는 대목은 그 시스템 자체가 갖고 있는 도덕적해이 때문이다. 그들은 사업을 벌이면서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과 같은 개념은 전혀 갖고 있지 않다. 지난 해 MRO 사업부분에서
2조5천억원의 매출을 올린 LG 그룹 계열MRO 사인 서브원의 직원은 400명을 약간 웃돈다. 이렇게 작은 숫자의 인원으로 어떻게 그 같은 천문학적인 매출을 올리고 있는가.

이 회사 직원들이 주로 하는 일은 인터넷에 주문이 뜨면, 해당 품목을 취급하는 중소유통업체에 인터넷이나 전화상으로 연결하는 일이다. 그리고 제품에 하자가 있거나, A/S가 나오면 역시 전화상으로 납품업체에 해결을 주문한다. 그리고 앉아서 2-7% 고율의 수수료를 챙긴다.

또한 처음부터 이들은 굉장한 배경을 업고 사업을 시작한다. 이미 친인척이나 계열사로 연결돼 있는 그룹사로부터 상당한 구매처를 확보해 두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들은 충분한 압력을 행사해 그룹의 1차 협력
업체는 물론 2,3차 협력업체까지 고객사가 되도록 만든다.

제조업체들도 피해 사정권
이 와중에서 경쟁질서는 찾으려야 찾을 수 없게 된다. 처음부터 배경과 혈연 ,그리고 자본력에 두터운 거래처까지 등에 업고 나타난 대기업 MRO들과 대등한 경쟁을 펼칠 수 있는 중소 유통업체들은 찾을 수 없
다. 그 속에서 대다수 중소 유통업체들은 여타의 대기업, 공공기관, 또 중소기업체들과의 경쟁관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그럼 대기업 MRO가 유통경로 상에서 어떻게 자신의 이윤추구를 하게 되는가. 기존 소모성자재의 유통경로는 생산업체->1차 대규모 유통업체-> 2,3차 중소규모 유통업체->구매회사의 경로를 거친다. 한데 대기업 MRO가 구매회사 앞에 한 단계 더 차지하기 때문에 MRO 회사는 비용관리에 부담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그 비용을 낮추면서 이윤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대기업 MRO는 2,3차 중소유통업체를 통하지 않고, 1차 대규모 유통업체와 직거래를 하게 된다. 또 심지어 제조사들과의 직거래를 시도하거나, PB(자사브랜드) 제품 제조에 뛰어들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다수의 2,3차 중소유통업체가 심한 타격을 입게 되며, 1차 대규모 유통업체는 물론 국내 다수의 제조업체들까지 피해를 입게 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일부 MRO 사들이 벌써 중국에 넘어가 제조업 파트너를 물색 중이라는 설이 파다하다. 그들이 중국 제조업체와 손잡고 주문자 상표 생산 방식(OEM)으로 대기업 브랜드를 붙여 공구나 베어링, 문구 등 소모성 자재들을 들여와 국내에 시판하면, 그 파장은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 브랜드를 앞세워 사후 관리까지 보장하게 되면 구매 회사나 소비자들의 구매심리를 크게 자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국내 제조업 기반도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유통을 쥐게 되면 생산을 쥐락펴락하게 된다는 말이 현실로 드러나게 되는 순간이다. 최종적인 문제는 독과점의 폐해이다. “경쟁이 없어지는 순간 시장은 썩게 마련이다. 도매를 통해 유통되는 상품 및 서비스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산업용재의 질이 떨어지면, 국내 기업체 제조 환경도 수준이 떨어지는 악순환을 맞게 될 것”이라고 산업용재협회 허 이사는 경고한다.

창고형 매장의 위력
여기에 대기업 MRO들이 전자상거래에 머물지 않고 창고형 매장 업에까지 뛰어들고 있어서, 그 파장이 심각하다. 이미 서브원은 창원에 대규모 창고형 공구매장을 개설하고, 영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KCC의 창
고형 매장은 인천과 목포에서 성업 중이다.

코오롱 KeP의 7개에 이르는 유통센터에서도 알게 모르게 도소매 유통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여타의 대기업 MRO 사들도 창고형 매장에 대한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고 볼 때, 이들이 창고형 매장 업에 뛰어드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미 신세계 이마트가 도매업 신고를 하고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전자상거래를 통한 대기업 MRO와는 달리, 소모성 자재 창고형 매장은 더욱 직접적으로 중소도매업체들을 옥죌 수 있다. 이것은 이미 슈퍼, 시장상인 등 소매점들에 대한 대형마트 및 SSM의 위력에서 그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다.

잘못하다가는 이 나라에 몇 개의 소수 독과점 대기업들의 깃발만 나부끼고, 대다수 중소기업체들은 싹쓸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커지고 있다.

소상공인신문  ihjung81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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