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지난 1년 여 기간 동안, 생업조차 뒤로한 채 홈플러스 서울 합정점 개점 추진을 결사 저지하고 있는 망원시장, 월드컵시장 상인들은 “반(反)상생 부분에 있어서 홈플러스가 세계 최고”라며, 쌓인 울분을 감추지 않았다.
장사도 접고 거리 집회
대중소기업 상생을 위한 유통산업발전협의회가 열리던 날 11시, 서울 마포구 합정역 50m 거리의 홈플러스 합정점 입점 예정지 앞에서는 ‘입점 결사반대 결의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날 참석한 참석자 400여 명 중 대부분은 이 지점에서 700m 거리의 월드컵 시장과 망원시장 상인들이었다. 이들은 아예 하루 장사를 작파한 채 집회에 참석했다. 현재 월드컵 시장에는 50여 곳의 점포가, 망원시장에는 100여 곳의 점포가 영업 중이다.
이들은 하나 같이 마포구는 ‘홈플러스구’라며 언성을 높였다. 현재 마포구에는 유달리 홈플러스 점포들이 많이 몰려 있다. 망원시장에서 1km 남짓 떨어진 곳에서는 홈플러스 상암점이 성업 중이다. 규모가 6천 평 이상 되는 이곳은 홈플러스 전국 매장 중 매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또 망원시장 코 앞 망원역 바로 앞에는 홈플러스 계열 SSM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역시 성업 중이다. 이 외에도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두 점포가 인근 지역에 들어서 있다. 여기에 홈플러스는 또 다시 합정역 역세권에 약 4천 평형대의 대형 마트 개점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합정점 들어서면 사망선고”
망원시장에서 ‘서민구판장’이라는 수퍼를 운영하고 있는 김정심씨는 “홈플러스는 정말 상도의를 모르는 회사”라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도 10여 년 전 망원시장에서 개점할 때 “시장내 다른 점포들과의 품목이 겹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했다”라고 말했다. 시장내 과일점이나 야채 품목들이 겹치지 않도록 공산품 위주로 품목을 꾸렸다는 것이다.
그는 “홈플러스 상암점 개점 후 상암동, 응암동, 성산동, 응암동, 능곡 일대에서 오던 손님들을 홈플러스에서 다 채가고 있어서, 그 후 손님이 30% 이상 줄었다”며, “만일 합정점마저 오픈하면, 아예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대기업들이 시내 한 복판에 계속 들어오면, 인근 상인들이 다 죽게 되고, 그러고 나면 이제 10년 20년 후에 우리 후대들은 정말 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역시 망원시장에서 약 20여년째 양품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50대 한 여성 점주는 “전통시장은 대형마트에 비해 확실히 물건값이 싸고, 품질도 좋지만 나이든 분들이나 많이 찾는 반면, 씀씀이가 어느 정도 있는 30-40대 주부들은 외면이 화려한 대기업 마트들을 이용하게 마련”이라며 “홈플러스 합정점이 들어서면, 우리는 끝내 문을 닫아야 할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월드컵 시장에서 지난 85년부터 27년째 커텐점을 운영하고 있다고 밝힌 반석병씨는 “예전에는 미싱을 3대나 두고 영업을 했을 정도로 가게가 잘 됐지만, 홈플러스 상암점 때문에 매출이 대폭 준 데다가 인터넷 쇼핑, 홈쇼핑을 통해 고객을 뺏기고 있어서, 기존에 비해 매출이 70%나 줄었다”며, “현재도 노후 대책은 전혀 돼 있지도 않은 상황에서 하루하루 먹고 살기마저 힘든데, 만일 합정점까지 들어서면 우리에게는 사망선고”라며 격앙된 표정으로 말했다.
월드컵시장상인회 홍지광 이사장은 “이번에 합정점 홈플러스가 또 다시 개점하게 되면 저희들은 30%의 매출이 감소되기 때문에 정말로 불가피하게 업종변경이나 폐업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실정”이라고 힘줘 말했다.
이날 결의대회 참석자들 중에는 시장 점포에서 고용원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망원시장의 한 고기집에서 일하고 있다는 한 30대 초반의 젊은 사람은 “같이 일하는 동료와 함께 참석했다”며, “홈플러스가 입점하면, 우리들도 아마 일을 그만둬야 할 것”이라며 걱정했다.
홈플러스 상암점 경우를 봐도 알 수 있듯, 대형마트가 한번 들어서면 인근 10km 이내 시장 및 수퍼, 과일점, 세탁점, 고기집, 완구점, 문구점 등 골목상권은 사실상 초토화된다. 11월 22일에도 이곳 망원시장과 건너편 월드컵시장의 150여 개 점포는 해가 일찍 떨어지는 겨울 저녁을 촛불만 켜고 장사를 했다. 합정점 입점이 결국 전통시장 앞날을 깜깜하게 만들고 만다는 현실을 역설하는 촛불시위였다.
“단 한 가지도 못줄여”
홈플러스 합정점은 합정역 바로 앞에 4,296평 규모로, 2011년 1월 개설등록을 하고, 올해 8월 말 개점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시장 상인들의 반대에 부딪쳐 현재 개점이 잠정 보류된 상태다.
양 측은 지난 8월 이후 10여 차례 만나 상생안을 논의했지만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전통시장 상인 측은 홈플러스에 1차 식품(채소 등 신선식품)을 팔지 말 것을 제안했지만, 홈플러스는 “전체 매출의 30%를 차지하는 1차 식품 판매를 포기할 수는 없다”며 맞서고 있다.
홈플러스는 홍보 축소, 무료배달 않기, 담배를 보루로만 판매하는 방법 등을 제시했으나, 이미 대형마트의 무서움을 절감한 상인들로서는 이 정도 미봉책만으로는 생존권을 절대 지킬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자신도 망원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홈플러스 대책위원회 서정래 실무팀장은 “홈플러스는 단 한가지의 취급 품목도 줄일 수 없다고 버틴다”며 “10년, 20년을 내다보고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쪽으로 뜻을 모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마포지역 상인들은 최근 5년 새 홈플러스 상암점과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3곳이 들어서서 기존상권이 크게 위축된데다, 합정점까지 들어서면 생존권 자체가 위협받을 수 밖에 없다는 위기감에 중기청에 사업조정을 신청, 그동안 4차례나 자율협의를 거쳤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한 것이다.
한 발 물러난 것 맞나
홈플러스는 ‘유통산업발전협의회’ 출범을 앞둔 시점에서도 지난 10월 31일 중기청에 ‘합정점 오픈 알림’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보내는 등, 상생 의지를 의심케 하는 행태를 보여왔다. 이같은 행태는 중소상인들의 반발은 물론, 동종 업계의 불신마저 사기도 했다.
지난 10월 22일 대기업 유통업체들이 신규 출점을 자제하기로 발표한 지 하루 만에 서울 관악구청에 남현점 개설 등록 신청서를 제출해 빈축을 샀다. 오산 세교점은 홈플러스가 중소 상인과 유통산업발전협의회를 만들기로 협의한 날, 개설 등록을 신청해 비난을 산 곳이고, 지하 3층~지상 3층, 연면적 2만㎡ 규모의 경주 충효점도 11월 7일 점포 건축을 신청했다가 뒤늦게 그 사실이 드러났다. 경주시는 인구 27만여명의 중소도시로 신규출점 자제 지역에 해당한다.
이런 상황에서 홈플러스 이승한 회장은 지난 11월 20일 마포 합정점, 관악 남현점, 오산 세교점, 경주 충효점 등 새로운 점포 개점은 지식경제부가 추진하고 있는 유통산업발전협의회 차원의 논의에 붙일 수 있다고 밝히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전인철 기자 sbnews7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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