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경제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유통산업발전협의회(이하 유통협의회)가 출범과 동시에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유통산업발전협의회는 지식경제부 장관을 비롯한 정부 인사들과 대형 유통업체 대표자, 그리고 재래시장 및 수퍼업계 대표자들이 참여해 지난 15일 발족한 협의체다.
대형 및 소형 유통업계 첫 협의체
여기에는 한국체인스토어협회 이승한 회장, 홈플러스 왕효석 대표이사를 비롯해, 이마트, 롯데쇼핑 대표자들이 참여하고 있고, SSM 업체들 중 GS리테일, 롯데슈퍼, 에브리데이리테일 대표가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소상공인 업계에서는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김경배 회장, 전국시장상인연합회 진병호 회장이 참여했다.
이 날 발족식날 유통협의회는 홍석우 장관을 임시 의장으로 선임한 가운데 주2일 자율 휴무와 인구 30만 이하 도시의 대형마트 입점 자제, 인구 10만 이하 도시의 SSM 입점 자제와 같은 사항을 합의사항으로 통과시켰다. 그리고 이 후 실무협의회와 사무국 구성방안은 물론 유통협의회를 발전시켜 법인화에까지 이르게 한다는 장기적인 계획까지 논의됐다.
소상공인 요구에 ‘모르쇠’
하지만 이 날 이와는 별도로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법안 소위원회에서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여야 합의로 전격 통과돼 위와 같은 유통협의회 출범의 의미를 퇴색시켜 버렸다.
왜냐하면 개정안의 내용이 유통협의회 논의 수준보다 한 단계 높았기 때문이었다. 이 개정안은 기존 월 2회의 의무휴업일을 월 3회로 늘리고, 영업시간도 기존 오전 8시에서 밤 12시까지 영업할 수 있었던 것을, 오전 10시에서 밤 10시로 단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에 새로 대형 유통업체가 개점을 하고자 할 경우, 사전 영향 평가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했고, 입점 예고제를 규정했다. 더불어 이를 위반할 경우 1억원의 벌금을 내도록 하여 실행력을 높였다. 이러한 법이 통과되자, 애초 유통협의회의 한축으로 참여했던 전국시장상인연합회도 탈퇴를 선언해 유통협의회의 모양새마저 상징성이 반감됐다.
이 과정을 놓고 소상공인업계는 이 협의체가 처음부터 한계를 갖고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경제 민주화가 시대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의무휴업일을 늘려야 한다는 것은 이미 여야간 깊은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인구 30만 이하 도시에 대형 유통업체의 신규입점을 금지하도록 한다는 것은 여당 대선 후보의 대표적인 공약 사항이기도 했다. 더불어 현재에도 홈플러스가 합정점 개점을 강행하려 하는 등 계속 확산일로에 있는 대기업 마트들로 인해 소상공인 업계를 중심으로 여론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유통협의체는 필요하다
그렇다면 뒤늦게서야 발족되는 유통협의회가 그 존재 의미를 내세우기 위해서는 이러한 새로운 흐름과 소상공인 업계의 절실한 요구를 일정정도 반영한 한 단계 높은 수준에서의 협의가 추진됐어야 한다. 그런데 정작 발족된 유통협의회의 협의수준은 당면한 정치권의 흐름 및 소상공인업계의 요구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도리어 그에 역행하는 협의수준을 보여줬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상호간 갈등이 클수록 서로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협의체가 진즉부터 절실했다는 주장도 있어서 향후 유통협의회의 행보가 주목된다. 아울러 홈플러스 이승한 회장이 홈플러스 합정점 등의 개점을 유통협의회에서 논의하겠다고 밝히고 나와, 그 여하에 따라 유통협의회의 존재감도 판명될 것으로 전망된다.
장영환 기자 sbnews7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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