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제도는 지난해 제조업 업종 및 품목 선정에 이어 올해는 서비스 유통업도 지정 작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소상공인들의 입장에서는 사업 진척이 한없이 더디기만 하다. 제조업은 3차에 걸쳐 업종 및 품목 지정이라도 돼 있지만, 그보다 더 열악한 서비스 유통업계의 경우에는 이제 겨우 신청서 접수를 시작했다. 추석과 연말 대선 정국을 감안할 때 연내 지정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현행 동반위 가이드 라인은 외형적 형평성으로 위장한 채 지나치게 대기업에 편향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소상공인 업종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동반성장위원회가 지난 달 23일부터 서비스 분야 중소기업 적합업종 신청을 받고 있으나, 접수율은 형편없이 낮다. 각 단체들이 신청서 준비에 부담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신청서 작성을 더욱 설득력있게 작성해야 적합업종 선정에 유리할 것이라 생각하고는 있지만, 막상 자체내의 연구 조사역량이 충분하지 않아 만족할만큼 신청서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제조업 분야는 기본적으로 업종별 조직화가 잘 돼 있고, 규모화가 돼 있기 때문에 적합업종 신청을 위한 기본적 물적 토대가 형성돼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서비스 분야는 업종은 많지만, 워낙 토대 자체가 열악해 조직화 정도가 매우 미약한 실정이다. 더욱이 서비스 분야는 사단법인이나 조합 형태로 법적 근거를 갖고 있기보다 대부분 임의단체로 조직화돼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동반위는 이같은 임의 단체에는 적합업종 신청 자격을 주지 않기로 이미 방향을 정한 상태다.
또 이런 단체들은 설혹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기본적으로 정보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이 같은 적합업종 제도를 추진하고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고 지날 수 있다. 이래저래 서비스 분야의 경우는 얼마나 신청이 들어올지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이를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서비스업 적합업종 지정에 있어서는 최소한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확보돼야 한다.
첫째, 도매업도 대상에 포함시켜 달라.
식자재, 계란, 산업용재 등의 도매업은 심각한 경영위기를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동반위가 서비스업종 적합업종 지정 대상에서 도매업 분야를 후 순위로 미룬 것은 현실을 이면한 처사다.
이와 관련 식자재 업체들이 아우성이다. 식품 대기업 ㈜대상이 베스트코라는 식자재 분야 전문 매장을 전국적으로 확대하면서 인근 식자재 도매업자들이 생사의 기로에 몰리고 있다. 또 이마트에서 운영하는 창고형 매장 트레이더스와 롯데의 창고형 매장 빅마켓도 식자재 업체들에게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계란 유통업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CJ, 풀무원 등 업체들은 자본력과 브랜드를 내세워, 최근 수년 사이 전체 시장 중 최소 30% 이상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앞으로 2-3년내 최소 50%까지 시장을 넓혀 가리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 업종에 종사하는 2,000여 영세업체의 존망이 걸려있다.
소모성 자재 도매업 분야도 심각하다. 한국안전보호구연합회 채두병 회장은 “청계천 상가를 돌아보면 안다”며 “차제에 소모성 자재 분야를 적합업종으로 지정해 대기업 MRO업체들이 사업에서 손을 떼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반위는 도매업보다 형편이 어려운 생계형 업종에 우선 집중하자는 논리이다. 하지만 일단 대기업에 잠식된 시장을 되돌리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볼 때 동반위의 주장은 현재의 영세 도매업계의 현실을 도외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둘째, 서비스 분야 경쟁력 평가 항목은 삭제돼야 한다.
지난달 23일 발표된 서비스 분야 적합업종 신청서를 보면 ‘업종 품목의 서비스 경쟁력 수준’이라는 항목이 있다. 이 항목은 소상공인의 조직화 수준, 서비스별 대기업과 소상공인의 가격 수준, 대중소기업간 서비스 및 AS의 품질 수준, 교육훈련 참가 비율, 연구개발 및 시설 투자, 적합업종 품목 지정기간 동안 경쟁력 확보 가능 여부 등의 하위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또 ‘업종 품목 시장규모 추이’라는 항목을 보면 대중소기업간 1인당 생산성 비교 항목이 나열돼 있다. 이 것은 종업원 수 대비 매출액, 점포면적 대비 매출액을 통해 비교한다. 이러한 항목들은 대부분 대기업들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는 항목들이다.
대량 판매를 기본으로 하는 대기업들이 공급받는 각종 서비스 및 원료의 공급가가 저렴할 수 밖에 없다. 이러기 때문에 서비스별 가격 수준을 갖고, 대중소기업간 경쟁력 차이를 대비할 순 없다. 종업원 수 대비 매출액, 점포면적 대비 매출액 수준 비교라는 항목도 마찬가지다. 대기업 점포의 경우 가격 경쟁력이 있기 때문에 당연히 단위 당 매출액이 높을 수 밖에 없다. 더불어 똑 같은 서비스라도 대기업이 하면 달라 보이고 더 우월해 보이기 때문에 대기업 브랜드의 파워가 매출액 성장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앞선 경영 노하우, 강한 교육 능력, 그리고 유능한 인재 투입 능력과 같이 대기업과 소상공인간 경쟁력은 비교 대상 자체가 되지 않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또 소상공인 조직화와 교육 참가 항목 등도 마찬가지다.
결국 경쟁력과 관련한 신청서 항목은 삭제될 필요가 있다.
셋째, 경쟁력 강화 위해서는 대기업부터 철수시켜라.
진정한 경쟁력 강화의 최소한의 조건은 시장기능의 회복이다. 도토리 키재기 식이라면 서로 키를 더 키우기 위해 노력하게 마련이다. 한데 여기에 상수리 열매를 몇 개 떨어뜨리면 도토리들은 더 키를 키우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게 된다. 애초부터 경쟁이 불가능함을 알기 때문이다.
소상공인들은 “대기업들이 골목상권에 진입하기 전만 해도 한번 해볼 만한 여지가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즉 골목상권 내에 나름대로 시장경쟁의 룰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때에는 잘되는 점포의 비결이 있었다. 무조건 친절하고,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부지런히 일하고, 좋은 상품을 남보다 빨리 갖다 놓으면 살아남는다는 공식이 통했다. 저절로 서비스 경쟁에 불이 붙는 것이다.
넷째, 가장 확실한 가이드라인은 소상공인의 피해 수준이다.
현재 동반위와 정부가 해야 할 가장 큰 과제는 골목상권에 시장기능을 회복해 주는 것이다.
이미 대기업들에 의해 골목상권의 시장잠식이 심각하게 이뤄진 상태라면, 최대한 빨리 골목상권의 시장기능이 회복되도록 적합업종 지정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 동반위가 중소기업 적합업종 전담 실태조사 기관을 선정하게 되면 그 기관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업이, 바로 이같은 골목상권 피해 조사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여하에 따라 골목상권 피해가 큰 품목일수록 되도록 빨리 적합업종으로 지정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소상공인 단체에도 신청자격 부여해야 한다.
동반위는 적합업종 선정 신청 자격을 해당 업종 업체가 참여하고 있는 법적 단체로 못박고 있다. 이를 전향적으로 개정해야 한다. 해당 업종에 피해가 있다면 임의단체도 지정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고, 아울러 소상공인 연합 단체로 하여금 신청을 대행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해당 분야에 얼마나 피해가 큰지를 가려내는 게 이 사업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현재의 소상공인 업종 중 조직이 돼있는 곳은 여건이 낫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조직마저 돼 있지 않은 업종은 그 만큼 더 형편이 열악한 업종이 분명하다.
여섯째, 적합업종 지정 이후에도 상호 공존을 위한 틀을 모색해야 한다.
적합업종 지정 이후 대기업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 독일과 프랑스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독일 함부르크에는 8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재래시장이 즐비한 인구 170만 명의 대도시이다. 하지만 사전 영향 조사 결과, 기존 업계에 10% 이상의 매출 감소가 예상되면 대형마트는 입점을 못하게 돼 있다.
인구 215만 명의 파리시에는 아직껏 시내 중심가에 대형마트가 없다. 700년 이상된 재래시장을 비롯해 120개의 중소 재래시장들이 성업 중이다. 프랑스에는 대형마트가 1,000여개가 있지만, 대부분 도심 외곽에 자리잡고 있어서 재래시장과 상생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일본계 베어링 업체인 NSK 한국 지사 관계자는 국내 대기업 MRO 사들이 베어링과 산업공구마저 판매하는 것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일본 대기업들 사이에서는 생각도 못할 수준이라는 것이다.
적합업종 지정만이 능사가 아니라, 사회 저변에 대중소기업이 공존할 수 있는 제도와 환경 조성이 급선무다.
일곱째, 중견기업과 공공기관에도 적용해야 한다.
유장희 동반성장위원장은 지난 7월 18일 기자간담회에서 “시장 점유율, 골목상권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중견기업과 공공기관에도 서비스업 중기 적합 업종 지정을 적용하는 방안을 실무위원회에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소기업중앙회 자료에 따르면 중기 적합 업종 대상 서비스업을 영위하는 주요 중견기업은 동아오츠카(자동판매기 운영), SPC(제과점), 풀무원(계란 소매), 한국타이어(자동차 정비) 등이다. 코레일유통(꽃배달·자동판매기 운영), 우체국(꽃배달), 재향군인회(상조), 한국교직원공제회(상조·문구 유통) 등 공공기관 및 단체도 서비스업에 진출해 있다.
영세 서비스업체들에 있어서는 중견기업이나 공공기관이 해당 업종에 파고 들 경우 더 무서움을 느낀다. 중견기업의 전문성과 공공기관의 네트워크의 영향력이 가공할 위력을 떨치기 때문이다.
여덟째, 적합업종 조사연구 비용은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
영세한 대부분의 소상공인 단체들은 대기업 시장잠식에 따른 피해상황은 뚜렷하더라도 돈이 없어 이를 입증할 조사연구 인력 확보가 여의치 않다. 현재 동반위가 자체 요역비로 책정하고 있는, 한 업종당 조사 용역비도 1,500만원이다. 제조업 경우의 두배 이상이다. 이런 면에서 개개 소상공인 단체에서 자체 조사를 한다는 것은 꿈도 꾸기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중소기업청과 소상공인진흥원은 관련 소상공인 단체나 연합회 등에 재원을 지원해 조사연구가 이뤄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실제 평가 과정에서 대기업이 제시하는 근거와 논리에 의해 판단이 오도될 가능성이 크다.
(이상, 상세 내용은 본보 11호 16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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