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와 SSM에 이어 창고형 할인매장도 서서히 골목상권을 잠식해 들어오고 있다. 창고형 할인매장들은 ‘영업형태나 고객층이 대형마트나 SSM의 그것과 달라 골목상권 침탈이 별로 없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신규진입이나 매장 확충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형마트나 SSM은 최근 규제가 강화되고 서로 경쟁도 치열해 신장세가 주춤거린다. 이를 타개하고자 대기업 유통업체들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창고형 할인매장을 선택하고 나선 것이다. 유통시장을 완전 장악하기 위한 우회전략이다.

그 결과 전국 곳곳에서 기존 중소상인들과 충돌도 빚고 있다. 특히 자영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도매시장에 그 여파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모두 3개 업체가 운영 중

현재 국내 창고형 할인매장은 모두 3개 업체가 운영 중이다. 코스트코 홀세일, 이마트 트레이더스 그리고 지난 6월 28일 첫 점포를 연 롯데마트 빅마켓 등이다. 이 가운데 코스트코와 롯데마트 빅마켓은 회원제이고, 이마트 트레이더스는 비회원제이다.

미국계 유통기업인 코스트코는 지난 1994년 서울 양평동에 프라이스클럽이라는 이름으로 첫 개점했다. 현재 서울 양평, 양재, 상봉, 대구, 대전, 일산, 부산 등 전국에 7개점을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회원제 할인매장의 대표격으로 독점적 지위를 누려왔다. 불만상품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전액 환불해 주는 상품보증제와, 불만회원에게는 언제든지 연회비를 전액 환불해 주는 회원보증제를 통해 차별화 했다.

이마트 트레이더스는 2010년 11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구성점을 시작으로 현재 인천 송림, 대전 월평, 부산 서면, 대구 비산, 안산 신길 등 총 6개 매장이 운영 중이다. 잘 안팔리는 상품들은 과감히 매장에서 철수시켜 핵심 품목 5000~6000여 가지만 취급한다.

가장 후발 주자인 롯데마트 빅마켓은 지난 7월 28일 기존 롯데마트 서울 금천점을 리뉴얼하여 첫 점포를 오픈했다. 취급 상품은 어떤 것이라도 대형마트보다 저렴한 수준으로 판매한다는 전략이다. 판매상품은 상품군내 최고 인기상품 등 핵심 상품을 중심으로 압축해 3000여개 정도를 취급한다. 기존 대형마트에서 보기 힘들었던 해외 유명상품도 직수입, 병행수입 등을 통해 가격을 낮춰 45개국 1000여 상품을 내놓고 있다.

회원제 연회비 35,000원

롯데 빅마켓의 연회비는 일반 개인 회원이 3만5000원, 비즈니스 회원이 3만원이다. 대량구매가 많은 소비자들은 ‘회비를 내도 결국 이익’이라고 생각에 개장과 동시에 대거 몰려 연일 장사진을 이루었다고 매스컴을 오르내렸다.

롯데마트는 지난 7월 30일 빅마켓이 오픈 한 달만에 회원수 8만5000명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연회비만 이미 30억원에 육박한다. 당초 연내 10만명 회원 모집 목표가 일력 조기달성될 것으로 롯데측은 전망했다. 한 달 간 누적 방문고객은 약 20만명, 고객 1인당 구매단가는 8만~9만원으로 확인됐다. 이는 롯데마트 일반매장의 2배 수준에 이른다. 빅마켓의 오픈 한 달 간 매출액도 100억원을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마트 측은 소비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고객 편의시설을 확대하고 조리식품의 입맛을 짜지 않게 만드는 등 외국계 할인점과 차별화한 것이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키즈카페, 페밀리레스토랑, 어린이극장, 동물병원, 경정비코너 등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추었다. 방문 고객의 약 40%가 편의시설을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매출 규모도 전체 매출의 약 7%를 차지했다. 롯데마트 일반 매장의 2배에 가까운 실적이다. 롯데마트는 9월쯤 빅마켓 2호점인 화성점을 개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로 가격경쟁도 치열

빅마켓 오픈에 따라, 회원제 할인점들의 가격경쟁이 치열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동안 대형마트의 성장세가 주춤한 와중에도 코스트코는 독점적 호황을 누렸다. 2010년 9월부터 2011년 8월까지의 매출액은 2조863억원.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1308억원, 1034억원이나 된다. 전년 대비 무려 30% 넘게 성장했다. 또 이 기간 매출액 2조863억원을 전국 매장 수 7개로 나눠보면 매장당 매출액도 3000억원에 이른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형마트인 이마트가 지난해 말 기준 전국 매장당(139개) 매출액이 1000억원에 미치지 못한 것을 감안할 때 회원제 할인점인 코스트코의 경쟁력은 가히 위협적이다.

이런 코스트코가 최근 롯데마트의 빅마켓 선전에 자극받아 가격 인하에 나섰다. 서로가 라면, 콜라, 소주 등 대표 품목의 가격을 상대방보다 10원이라도 낮추려고 안간힘이다.

지난 7월 4일 현재 빅마켓은 신라면 1박스(30개)를 1만2480원에, 코스트코는 1만2490원에 각각 팔고 있다. 빅마켓이 10원 싸다. 두 업체 모두 1주일 전인 6월 27일보다 가격을 3300원씩 내렸다. 칠성사이다(1.5L들이 6개)도 1주일 사이에 가격을 10%씩 낮췄다.

빅마켓은 개점 당시 농심 신라면 30개짜리 1박스의 가격을 15,690원으로 책정했다. 주변의 대형마트보다 조금 저렴했다. 그런데 코스트코가 빅마켓에 대응하기 위해 가격을 더 내리자 빅마켓도 이에 질세라 10,390원으로 추가 인하했다. 개점 당시 가격과 비교해 무려 33.8%낮아진 것이다.

인기상품인 세제 다우니 에이프릴 프레쉬(3.06L)는 13,800원에서 10,590원으로 23.3% 내렸고, 세타필 크림(566g)은 17,990원에서 12,390원으로 31.1% 인하했다. 또 여름철 성수기를 맞은 음료수의 가격도 2%에서 10%가량 경쟁적으로 인하했다.

롯데가 병행수입 등을 통해 코스트코를 벤치마킹 하는데다, ‘토종 회원제 할인점’이란 점을 앞세워 매장 내부에 다양한 편의시설은 확보하는 등 공격적 확장에 나서고 있어 코스트코로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빅마켓 금천점만 해도 개장과 동시에 서울 서남부와 수도권 일대의 코스트코 고객 상당수를 흡수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국형 매장 차별화도

이마트 트레이더스도 차별화 전략에 나섰다. 충남 아산에 진정한 의미의 한국형 창고형 할인점 트레이더스 7호점 천안아산점을 오픈하고 창고형 할인점 사업을 본격화할 것을 선언하고 나섰다. 이마트는 지난 7월 25일 ‘트레이더스’ 천안아산점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천안아산점은 이마트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국형 창고형 할인점의 표준모델을 만들었고, 이를 통해 이마트와 또 다른 쇼핑의 가치를 소비자들에게 제공할 것”이라며 “천안아산점을 시작으로 한국식 창고형 할인점 사업을 본격화한다”고 밝혔다. 롯데마트의 ‘빅마켓’을 겨냥한 것이다.

비회원제로 운영되는 트레이더스지만 가격 경쟁력에서는 회원제 할인점보다 자신이 있다는 얘기다. 이마트 트레이더스는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4000여 개 품목으로 판매품목을 재정비하고, 상품 진열과 매장 운영에 드는 비용을 최소화하는 한편, 상품구매도 이마트와 손잡고 가격 협상력을 높이게 되면 회원제 할인점보다 가격을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같은 상권에서 일반 대형마트보다 7~15%, 회원제 할인점보다 3~5% 저렴한 가격을 제시한다는 게 이마트의 방침이다.

또 트레이더스에서만 판매하는 단독 상품 비율도 85%로 높여 상품의 차별성을 높이고, 기존 이마트 트레이더스 6개점에도 이를 적용해 3·4분기 내로 상품을 전면 교체한다는 방침이다. 트레이더스 전 점포의 상품 구성을 천안아산점과 같은 형태로 바꿔 한국식 할인점 사업을 본격적으로 펼칠 계획이다.

이마트와 롯데마트에 이어 이랜드까지 창고형 할인점 사업에 가세할 전망이다. 이랜드리테일은 최근 뉴코아아울렛 인천점 지하1층을 창고형 매장으로 재단장해, 시범판매를 시행 중이다. 연내 야탑점과 평촌점까지 총 3개 점포를 창고형으로 리뉴얼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훨씬 효과적이란 판단

대형마트들이 창고형 할인점 확장에 열을 올리는 것은 대형마트의 성장세가 이미 한계에 이르렀다는 판단에서다.

게다가 중소상공인들의 지속적 생존권 투쟁으로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이나 대중소기업상생협력촉진법(상생법) 등이 시행돼 대형마트의 신규 출점이 예전처럼 만만치 않은 데다가 영업시간 제한 등 각종 규제가 점차 확산되는 추세에 있다.

대기업 유통업체들은 골치 아프게 인근 중소상인과의 마찰을 빚느니, 차라리 기존 매장을 창고형 할인매장으로 전환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란 판단이다.

특히 기존 대형마트 매장 가운데 동일상권 내 경쟁업체보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매장이나 매장이 오래돼 새로 리뉴얼이 해야할 매장은 ‘창고형 할인점’전환 우선 순위다.

이마트 트레이더스 용인 구성점이나 인천 송림점, 대전 월평점, 부산 서면점, 대구 비산점 등은 기존 이마트가 전환한 경우다. 롯데 빅마켓 2호점으로 예정된 경기 화성점도 롯데마트 화성점을 전환해 오픈하는 케이스다. 8년 전 개점한 이 매장은 리뉴얼도 해야 하지만, 지역 후발주자인 이마트 동탄점이나 홈플러스 향남점 등과의 경쟁을 위해서도 변신의 길을 택했다.

이마트 트레이더스 매장 가운데 매출이 낮은 기존 대형마트 매장을 창고형 할인점으로 전환해 매출이 2배 이상 올라간 곳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매시장을 초토화 할 것

자본과 조직력, 경영 노하우 등을 앞세운 창고형 할인점들의 이같은 공세에 결국 중소상인들만 죽어난다. SSM이 골목 영세상인을 위협했다면, 회원제 할인점은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한 도매시장을 초토화 할 것이다.

실제 이마트 트레이더스 부산 서면점은 지역 중소 상인단체들의 거센 반발로 지난해 말 중소기업청이 사업조정 대상으로 지정했다. 이마트 트레이더스는 현재는 사업조정 개시결정 취소 청구 소송에서 승소해 영업을 재개했지만 향후 창고형 할인매장과 지역 중소상인들의 갈등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사실 이 소송은 창고형 할인매장들의 확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마트는 이마트 트레이더스 부산서면점이 사업조정 대상으로 지정되자 곧바로 사업조정 개시결정을 취소해달라며 중소기업청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7월 20일 이 건에 대해 원고 승소를 판결을 내렸던 것이다.

당시 재판부는 대형마트가 기존 매장을 창고형 매장으로 전환해도 지역 도매상 경영에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사업조정 대상이 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로 당장은 법적 논란을 비껴가게 되었지만 현안이 완전 해결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부터 시작이 될 수도 있다. 창고형 할인매장이 새로운 ‘전쟁터’로 부각될 것인가.

울산지역 중소상인들도 최근 코스트코의 영업 준비를 막기 위해 팔을 걷었다. 지난 8월 3일 울산슈퍼마켓협동조합 등이 주축이 된 중소상인연합회는 북구 진장유통단지에 들어설 코스트코의 영업 준비를 막아달라는 요청서를 중소기업청에 전달했다.

연합회 측은 “지난 2월 코스트코를 상대로 사업조정을 신청해 현재 자율조정을 진행하고 있는데, 코스트코는 사업조정 기간을 무시한 채, 9월 개점을 목표로 실내장식 갖추고 회원, 판매원 등을 모집하는 등 모집 등을 펼치고 있다”며 “이같이 조정기간을 무시하는 행위에 대해 사업개시 일시 정지 처분을 내려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이 일과 관련, 윤종오 울산 북구청장은 직권남용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기도 했다. 행정심판위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았다는 게 그 이유다. 현재 코스트코 울산점은 준공을 앞두고 있다.

코스트코, 이케아 결사 반대

안양 등 수도권 서남부 소상공인과 시장 상인들도 9월로 예정된 광명 역세권의 코스트코 입점과 2014년 예정인 다국적 유통기업 이케아 입점을 저지하기 위한 움직임을 펼쳤다.

광명·군포·안양·의왕 4개 지역 18개 상인단체로 구성된 ‘광명입점저지대책위원회’는 지난 7월 12일에 광명시청 앞에서 코스트코·이케아 입점저지 총궐기대회를 열고, “전통시장과 지역 골목상권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광명시가 일방적으로 사업을 추진했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광명시의회 문현수(통합진보당) 시의원도 시정 질의에서 “코스트코와 이케아가 광명역세권에 입점함에 따라 지역중소상공인들이 막대한 피해를 보게 됐다”며 “외국계 대형유통업체를 입점시켜 놓고서 상생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광명시를 질타했다.

KTX광명역 도시지원시설 부지에 개점 예정인 코스트코는 현재 막바지 공사를 진행 중이다. 매장면적은 3만3964㎡(1만270평)로 철도시설관리공단과 30년 임대차계약을 맺었다. 광명점이 완공되면 코스트코는 서울 양평동의 본사까지 광명으로 이전할 계획이라 한다.

한편 세계 최대 홈퍼니싱 기업인 이케아는 2014년까지 면적 7만8198㎡(2만3650평) 규모의 매장을 건립하여, 가구뿐 아니라 냅킨, 주방용품, 침구류, 신발 등 실내 인테리어에 필요한 모든 잡화를 판매할 계획이다.

회원제 창고형 할인점이란?

회원제 창고형 할인점 (Membership Wholesale Club)이란 연회비를 내는 회원들을 대상으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상품을 판매하는 창고형 대형마트를 말한다.

최근 경기 침체로 저가 수요가 늘어난 데다 은퇴한 베이비부머 세대가 자영업자로 전환하면서 이들의 구매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어 시장이 점점 더 커질 것이라 전망되고 있다.

기존의 현대식 대형마트들처럼 쾌적한 쇼핑환경이나 친절한 서비스보다는, 내부 인테리어를 최소화하고 대량 묶음판매를 통한 초저가 판매 전략을 쓴다.

회원들의 충성도도 상대적으로 높고, 회원을 많이 확보하면 연회비 수입이 늘어나고, 그만큼 상품 가격을 더 내릴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대량구매를 선호하는 소비자들로서도 가격 메리트가 충분히 있다고 분석된다.

특히 ‘토종’ 창고형 할인점들은 오랜 기간 유통사업을 펼쳐온 덕에 국내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는 유통채널 운영 노하우가 풍부하다는 강점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키즈까페나 식당 등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춰 ‘한곳에서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원스톱 시스템을 내세우며 주말 가족 단위의 고객들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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