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식자재 유통시장은 2005년 이후 연평균 10% 이상의 큰 성장률을 보이며 2010년 기준 시장규모가 86조1000억원에 달했다. 나홀로 가구 늘고 여성들의 사회 진출 증가로 외식산업이 급격히 발전하고 있으며, 냄비에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되는 가정편이식품도 급성장하고 있는 덕이다. 인구구조의 변화와 함께, 편의성을 추구하는 식품 소비 트렌드 변화 등이 시장 성장을 견인하고 있는 것이다.
아워홈, CJ프레시웨이, 신세계푸드, 현대그린푸드, 삼성에버랜드 등 상위 5개사의 지난해 합산 매출은 2010년보다 33%나 증가했다.
청정원이라는 우월한 브랜드로 시장 입지가 탄탄한 대상 같은 대기업이 지역 상인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식자재 시장을 적극 공략하는 이유는 한마디로 이 시장이 앞으로 크게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식자재 시장이 대기업이 진출하지 않은 몇 안되는 황금시장’이라는 판단들이 여의도 증권가를 떠돌았다. 이미 시장에 진출한 기업들이 하루가 다르게 매출을 신장시키고 있는 것도 대기업들이 유혹을 느끼는 이유다.
무주공산에 깃발 꽂기
시장은 급성장하고 있는데, 공급은 기존 영세상에 의존하고 있다 보니, 자본력과 영업조직망을 제대로 갖추고 있고, 식품사업 분야에서 수십년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는 대상 같은 대기업으로서는 무주공산에 깃발 꽂기나 다름없는 사업인 셈이다.
현재 국내 식자재 유통시장을 보면, CJ프레시웨이·LG아워홈 등 5~6개 대기업의 시장 점유율은 3%도 채 안된다. 중소 식자재 업체들이 97%를 넘게 차지하는 이 시장은 대상 베스트코 입장에선 전인미답의 처녀림이다.
현재 국내 식자재 시장은 중소 도매업체가 90% 이상을 차지하며 재래식 영업형태를 못벗어나고 있어 효율성이 낮고 물류 인프라와 식품 위생이 취약한 게 사실이다. 특히 정부에서 식품위생과 거래 투명성을 강화하고 있어 경쟁력을 갖춘 기업형 업체들의 성장 잠재력이 더 돋보일 그런 시장이다.
게다가 한미FTA 이후 시스코 같은 선진 식자재 대기업들도 국내 시장을 노리고 있고, 이에 맞서 그나마 이 시장에서 국내자본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경쟁력을 갖춘 국내 대기업이 시장을 선도할 수밖에 없다는 명분마저 내세울 수 있다.
B2C 시장까지 손을 뻗어
현재 식자재 유통을 하고 있는 대기업은 아워홈, CJ프레시웨이, 삼성에버랜드, 신세계푸드, 현대그린푸드 등이다. 최근에는 대상, 롯데삼강, 사조그룹도 뛰어들었다. 그런데 식자재 시장 진출 대기업 가운데 대상이 유독 지역상인의 반발을 사는 이유는 B2B 시장뿐 아니라 B2C 시장까지 손을 뻗쳤기 때문이다.
대상이 주력하는 업태인 식자재 마트는 대형마트나 SSM과 달리 유통산업발전법 규제 대상이 아니다. 다른 대기업들도 이같은 법적 허점을 노려 B2C 시장에 경쟁적으로 시장에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 결국 빵집·슈퍼마켓처럼 지역 상권이 대기업 자본력에 무너지는 상황을 재연될 것이다.
식자재 시장은 B2B와 B2C로 나뉜다. 외식업체, 급식업체 등을 대상으로 하는 B2B 시장은 전체시장에서 갖는 비중이 27.8%(23조9000억원)다. 이에 반해 일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신선 편이식품 등을 거래하는 B2C 시장은 72.2%(62조2000억원)에 이른다. 대부분의 영세상인들이 생계를 이어 가는 곳이다.
식자재 유통시장은 지금까지 중소 도소매 업체들이 시장의 97.8%를 차지할 만큼 다수의 영세 중소업체들이 중심이 된 대표적인 서민 생계형 시장구조다. 또한 영세 외식업체 대부분이 주문 자체가 표준화돼 있지 않고 소량구매를 하는 터라 중소 식자재업체를 통해 식자재를 공급받아온 게 그동안의 관행이었다.
그런데 대상 베스트코는 식당 주인들을 대상으로 한 현장 소매판매 시장까지 잠식해 오니 반발이 거셀 수밖에 없다.
재래시장 인근에 마트를 만들어 식당주인이나 가정주부들이 직접 현장에서 최대 20%나 싼 가격에 살 수 있도록 하고 있으니, 기존 상인들로서는 분통이 터질 일이다.
배달형 도매유통을 위주로 영업하는, 국내 식자재 B2B 시장 1위인 CJ프레시웨이를 두고는 상인들이 크게 반발하진 않는다는 점과 대비된다.
“우리는 시장합리화 선도”
이에 대해 대상 베스트코 측의 논리는 따로 있다. 대상 측은 자신들이 다양한 신제품을 출시해도 중간 도매상인들을 거치면 제대로 홍보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외식업체들에 보다 폭넓은 선택의 기회를 주기 위해 마트를 세운 것이라 주장한다. 자신들의 사업 대상은 사업자 등록을 낸 모든 외식업체 사업자인데, 자신들의 B2C 영업형태는 매년 식당들의 10% 이상이 문을 닫는 어려운 상황에서 식자재의 유통 마진을 줄이고 획기적인 신제품을 제공해 영세 음식점을 간접적으로라도 지원한다는 주장이다.
60만 명에 육박하는 외식업체 업주들을 위하고, 시장합리화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앞장서 시장변혁을 주도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는 억지다. 식당 업주들을 위해 식자재 상인들이 희생되어도 좋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또 시장은 돈과 힘을 앞세운 대기업의 어거지로 변화되는 게 아니다. 그럴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미국에 비해 20년 정도 뒤져
세계 식자재 시장의 선진화를 이끌고 있는 미국에서 이 시장이 산업화 된 시점은 1980년대 후반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식자재 유통 업체인 시스코의 매출액은 1986년부터 1989년까지 3년 사이에 35억달러에서 70억달러로 두 배나 급증했다.
그런데 시스코의 매출 급성장이 이뤄진 1987년의 각종 경제지표와 우리나라의 2008년 경제지표가 매우 유사하다. 1인당 GDP는 미국이 1만9524달러, 한국이 1만9504달러, 식료품비 중 외식비 비중은 미국이 43%, 한국이 46%다. 또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은 미국이 56%, 한국이 50%였다.
이같이 대략적으로 살펴볼 때, 우리나라의 식자재 유통시장의 산업화는 미국보다 20년 정도 뒤쳐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 즉 한국의 현재 상황이 식자재 유통시장의 산업화 초기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명박 정부 들어 우리 정부는 한식세계화 사업과 연계한 식재료 수출 확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물론 국내 식자재 유통업체들은 아직까지는 해외수출 사업을 본격적으로 전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K-POP 열풍이 K-FOOD의 세계화로 이어진다면, 국산 식재료의 수출도 신기원을 이룰 것이기에 국산 식자재 유통사업의 미래는 더욱 밝아질 것이다.
상생은 어려울 것인가
국내 시장도 급성장하고 있고, 해외시장 개척까지 내다보는 마당에, 돈과 힘을 가진 대기업이 단세포적으로 당장 눈앞의 시장쟁탈에 혈안이 되어야만 할까. 상생과 이를 통한 시너지 창출은 정녕 어려울 것인가.
대기업은 국가경제나 사회적 동반성장이라는 공동체적 과제에 대한 아무런 성찰없이 오로지 이윤만을 앞세운 시장뺏기에 급급하고, 영세성과 취약성을 면치 못한 채 하루하루 연명에만 매달리던 영세 상인들은 최소한의 생존권 확보를 위해 거리투쟁에 나섰다.
지금까지의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존 중소 유통업자들은 공공기관, 공기업, 산업체 등에 1일 1000식 이하 단체급식 사업을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지정해달라고 탄원하고 있다.
정부에선 소규모 단체급식업은 중소업체에 맡기고, 대기업은 유통업체나 식당에 공급하는 대규모 식자재 유통시장에 주력하는 방법을 대안으로 강구하는 중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대기업이 시장 진입을 했을 때 순기능도 고려하면서 대기업들의 시장 진출 범위를 제한하는 것이 이상적인 ‘상생안’이라고 입을 모은다. 어쩌면 이는 상식이다.
유통 설비 시스템을 개선하여 식자재 위생과 안전성을 확보하는 한편, 기존 관행을 탈피하여 거래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현안들이 시장합리화의 선결과제이리라. 이를 위해서는 대기업과 중소업체들과의 합의를 통한 시장 범위의 획정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는 동반성장의 핵심가치다. 대기업이 막대한 자금력으로 직소매 영업권까지 잠식한다면 결국 독과점으로 이어져 중소상공인은 더이상 설 자리가 없게 된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전인철 기자 sbnews777@naver.com
관리자 ihjung@sb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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