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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유홍식(수제화 명장 1호)“무한한 창의…‘수제화’는 세상 최고의 직업”
소상공인신문 | 승인 2017.02.19 22:07

내년에 ‘수제화 개인전’, “한 켤레 한 켤레가 꿈과 사유의 산물”…

유홍식 명장은 올해로 57년째다. 13살 때 무작정 상경, 먼 친척의 가게에서 ‘구두’를 직업으로 삼은 이후 세월이다. 어릴 때부터 적성에도 맞아서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수제화’만을 고집했다. 돌이켜보면 후회없는 인생을 살았다. 그래서 평소 “다시 태어나도 이 직업을 택하겠다”고 되뇌곤 한다.
“나만의 무진장한 창조와 상상이 가능한 직업입니다. 누구 간섭따윈 받을 필요도 없고…. 모든 기쁨과 고통, 보람과 시련도 나 하기에 달렸죠. 세상에 이런 멋있는 직업이 어딨어요?”
그래서 지금 다시 그 ‘후회없는 세월’을 복기해보고픈 생각이다. 내년에 그 세월을 되돌아보는, 국내 초유의 ‘수제화 개인전’을 여는 것도 그 때문이다. 수제화를 테마로 한 개인전은 드물다기보다 세계적으로도 보기 힘든 일이다. 하긴 그의 수제화 인생 자체가 좀체 보기 힘든 도전과, 그것이 엮어낸 스토리텔링의 연속이다.

유홍식 명장

‘수제화 인생’ 자체가 드라마틱한 스토리텔링
유 명장은 ‘개성’과 ‘창의’를 천금처럼 여긴다. 성수동 수제화거리 초입, 7번 부스가 그의 작업 공간 ‘드림’(Dream)이다. 그 작은 공간 ‘드림’에서 그는 늘 무한한 꿈을 꾼다. 세상에서 하나뿐인 상상과 사유를 구두 한 켤레, 한 켤레마다 쏟아붓는다. 남과 똑같은 구두를 만드는 건 결코 있을 수 없다.
그는 “하다못해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거나, 길을 걸어갈 때나 오로지 생각은 ‘디자인’뿐”이라고 했다. “이탈리아 기술이 세계 최고? 턱도 없는 소리”라고 반문하며, “걔네들이 못만드는 제품, 내가 만든다”는 자존감도 확고하다.
실제 유 명장의 수제화는 명품을 뛰어넘는 ‘작품’이다. 한땀한땀 신기에 가까운 명장의 손놀림이 어우러진 작품이다. 정밀한 이음새나 마름질 하나하나엔 관성과 타성에 대한 저항이 실려있고, 새로운 것에 대한 궁리와 고뇌가 담겨있다. 그래서 그가 만든 것은 곧 ‘예술’이다. 그렇게 만든 그의 수제화 한 켤레, 한 켤레는 ‘예술’이자, 60년 장인의 삶에 대한 고백이며, 오래 숙성된 영혼의 그릇이다.

‘명품’을 뛰어넘는 ‘작품’ 창조
그런 만큼 유 명장의 수제화는 결코 가볍게 팔리지 않는다. 나름대로 심미안을 갖춘, 장인의 혼을 알아볼 줄 아는 고객들만이 찾는다. 한 눈에 봐도 ‘비싸보이고, 있어보이는’ 신발이 그의 작업실을 빼곡이 채우고 있다.
그런 만큼 인생과 직업에 대한 그의 태도는 무척이나 선명하다. 선명하다 못해 단호하다.
“자신의 직업을 무시해선 끝을 못봅니다. 힘들게 고생하면서도 스스로를 ‘구두쟁이’로 홀대하면 결국 회한만 남을 뿐이죠. 어떤 직업이든 ‘내가 하는 일이 최고’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유 명장은 “그래야 끝을 보고, 마침내 성취를 이룬다”며 수제화 분야는 특히 그렇다고 했다.
그는 ‘국민학교 졸업’이다. 하지만 자신의 프로필에 결코 스스럼없다. 대학에 강의도 종종 나간다. 그 어떤 지식이나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직업적 내공과 삶의 가치를 후예들에게 전수하곤 한다.

“젊은 후예를 양성하는게 절박한 과제”
하지만 국내 제화산업의 앞날에 대해 마냥 낙관만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걱정이 태산”이라고 했다. “이런 추세라면 5~10년 후를 장담할 수 없어요. 특히 젊은이들이 기피하고 있어 더욱 큰일입니다.
실제로 그는 젊은 문하생을 여럿 두고 기술을 전수하기도 했다. 그러나 10명 중 3명 정도만 주어진 과정을 겨우 마치곤 했다. 심지어는 약정한 도제 기간 종료일, 그 다음 날부터 종적을 감추는 경우도 왕왕 있다. “‘요즘 젊은이들’이라는 표현이 뭣하지만…요즘 젊은이들은 수제화 업종을 전형적인 3D업종으로 여기죠. 그렇다보니, 끝까지 참고 인내하며 제화기술을 연마하는 문하생들이 극히 드물어요”

“미지의 것에 대한 도전은 계속돼”
내년에 인사동에서 수제화 개인전을 예정하고 있는 유 명장은 그 때문에 몸과 마음이 더 바빠질 것 같다. 동양화가인 부인과 함께 여는 행사여서 설레기도 한다. 그의 부인은 35년 명성을 자랑하는 국전 화가다.
하지만 그는 어제 이전의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오랜 세월이 지났건만, 여전히 또 다른 ‘수제화 인생’을 꿈꾸며 상상의 나래를 편다. 여전히 ‘수제화’를 최고의 직업으로 꼽으며, 최고의 인생을 새롭게 그릴 생각이다. 다가오는 수제화 개인전은 그래서 회고와 상념이 결코 아니다. 과거와 현재의 창을 통한, 미지의 것에 대한 또 하나의  출사표다. 그래서 그는 “올봄, 내 생애에서 제일 바쁠 것”이라고 했다.

*** 인터뷰- 김영완 명장(동현제화 대표)
섬세한 손끝, 장인의 ‘아우라’ 번뜩여


지난해 10월 명장으로 추대된 김영완 명장은 딱히 남의 시선에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저 “나만 만들 수 있는 구두, 한 눈에 봐도 ‘내 것’이다 싶은 디자인만 바라보며 살아왔다”면서 “어떡하면 좋은 구두, 차별화된 나만의 구두를 만들까 고민했을 뿐”이라고 한다. 김 명장은 지난 40년을 그렇게 수제화와 더불어 살아왔다. 얄팍한 노하우보단, 진중한 ‘수제화’의 진리를 탐하며 그렇게 장인의 길을 걸어왔다.

김영완 명장

“마치 도자기 원리와도 같은 수제화 공법”
현재 그는 성수동 한켠의 공장에서 같은 업종의 장인, 기술자들과 함께 협업하며 일하고 있다. 공장 곳곳엔 가죽과 밑창 등 신발 소재들이 어지럽게 널려있고, 너나없이 일에 몰두한 사람들이 눈에 띈다. 김 명장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김 명장이 선보인 ‘작품’은 하나같이 독보적이다. 그 중에서도 박음질이나 이음새가 전혀 없는, 미려한 곡선으로 이어진 여성화가 대표적이다.
실밥이나 바느질의 흔적이라곤 없다. 마치 춤사위를 연상케하는 섬세한 휘어짐, 그리고 버선코와도 같은 곡선이 어우러진게 특징이다. 그래서 김 명장의 여성 수제화는 장인의 아우라를 한껏 발산한다. 한편으론 우리 기술에 대한 자존심도 대단하다. “다만 선진국에 비해서 ‘브랜드 파워’가 부족한게 약점”이라면서 “이를 위해선 차별화된 기술 연마와 함께 홍보와 마케팅, 유통 현대화 등도 필수 과제”라고 희망을 걸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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