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유통업 분야에서 적합업종이 선정되는 과정에는 지난해 제조업의 경우가 많은 참고가 될 것이다. 당시 대기업들이 적합업종 선정과정에서 어떻게 대응해왔나를 살펴보는 이유다.
시장규모 이견 팽팽
적합업종 선정과정은 지난해 4월 동반성장위원회의 ‘중소기업 적합품목 가이드라인’ 설정작업에서부터 난항을 겪었다. 주요 사안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대표들의 의견이 크게 엇갈렸기 때문이다. 당초 동반성장위는 중기 적합품목 1단계 가이드라인으로 시장규모(출하량 기준) 1000억∼1조5000억 원의 품목을 제시했다.
전경련을 비롯한 경제단체는 곧바로 ‘중소기업에 적합한 시장 규모’ 등 16개 항목에서 가이드라인의 수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동반위의 가이드라인이 중소기업 사업영역 보호에만 치중해 중소기업의 자생력을 약화시킬 소지가 있으며, 획일적인 선정기준은 시장현실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소비자나 협력업체 등 이해관계자의 권익을 침해하는 부분이 있다는 게 이유다.
이들은 먼저 중소기업에 적합한 시장규모를 가이드라인이 제시한 출하액 기준 1조5000억원 이하에서 제조업 평균 출하액인 5500억 원으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대기업이 생산하는 디지털카메라, 엘리베이터, 에어컨, 김치냉장고, 초콜릿, 소주, 라면 등은 시장 출하규모가 1조5000억원 이하인데, 출하액 상한을 1조5000억원으로 잡으면 이들 품목이 중소기업에 적합한 시장규모 안으로 들어가 버려 대기업이 이들 제품을 더 이상 생산할 수 없게 되는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또 중소기업 판정기준을 가이드라인 안인 사업장별 상시종사자수(300인 미만) 기준에서 기업별 상시종사자수(300인 미만) 기준으로 바꿔줄 것을 요청했다. 어떤 기업이 중소기업인지 아닌지를 기업별이 아닌 사업장별로 판정하면 대기업 사업장이 중소기업으로 둔갑해 대기업 근로자의 생산성과 종사자수가 중소기업 통계에 합산되는 오류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게 이유다.
이밖에 경제단체들은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은 대기업의 생산제한범위에서 제외하자도 건의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협력해 완제품을 생산쪾판매하는 OEM까지 제한하면 현재 대기업에 납품하는 협력업체는 판로가 막혀 매출이 줄게 되며, 이는 대기업과 협력업체가 함께 경쟁력을 높이자는 동반성장 본래 취지에도 어긋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타당성 분석 보고서도
전경련은 1차 적합업종 선정 직후인 지난해 9월 26일 ‘주요 품목의 중소기업적합업종 타당성 분석 보고서’를 내고, 레미콘·금형·두부·데스크톱PC·유리식기·재생타이어 등 6개 품목은 중소기업 적합업종에서 제외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가 제시한 근거를 보자.
레미콘 시장은 중소 레미콘 업체가 생산을 독점하기에 레미콘 시장의 규모가 너무 크고 사업 전환도 어려워 연쇄도산이 우려되고, 또 이미 대기업이 레미콘 시장에 진출해 기술혁신과 시장확대를 선도해 왔으며, 앞으로도 초고층ㆍ대형화 추세에 따라 기술경쟁력을 더욱 높일 필요가 있기 때문에 대기업의 지속적인 사업영위가 필요하다는 주장했다.
금형은 이미 시장에 의해 대쪾중소기업간 역할이 분담돼 있고, 대기업은 협력사에게 금형기술 이전쪾교육 지원 등의 기술협력으로 동반성장을 추진해 왔으며, 앞으로도 대기업 주도로 기술개발을 지속하여 국제경쟁력을 높여야 하고, 품질쪾디자인 등 제품경쟁력 확보를 위해 핵심금형은 대기업이 직접 담당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보고서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금형의 90% 이상을 중소기업에서 구매하며, 신기술을 적용하는 부품 중심으로 금형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1,000억원이 넘는 금형기술센터를 운용하거나 설립을 추진 중이라는 사실을 예시했다.
전경련은 또 2006년 대기업이 두부시장에 진출하면서 두부의 위생 수준이 크게 향상됐다며 두부도 적합업종에서 제외하자고 건의했다. 중기 고유업종이었던 2005년에는 두부의 식품안전기준 위반비율이 15.8%였지만 2008년에는 5.4%로 크게 줄었다는 통계수치를 내놓았다.
재생타이어의 경우도, 재생타이어가 저탄소 친환경 제품으로 각광받으면서 글로벌 기업들이 재생타이어 사업을 확대하는 가운데 국내 대기업만 제한하는 것은 역차별이라고 주장했다.
데스크톱 PC도, 적합업종으로 선정되면 외국 PC 업체에 국내 컴퓨터 시장을 빼앗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국내 대기업의 데스크톱 PC 시장 점유율은 33.3%에 달하고 외국기업은 9% 수준이다.
데스크탑 PC 반려 품목으로
결국 동반성장위는 올해 1월 17일 데스크탑PC에 대해 ‘반려’품목으로 최종 판단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 LG전자 등 대기업들은 데스크탑PC를 계속 생산·판매할 수 있게 됐다. 당시 업계는 동반성장위의 이같은 결정에 대해 ‘대기업 달래기’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1차 16개 품목에 이어 동반성장위원회가 2차로 LED와 레미콘 등 25개 품목에 대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선정하자 이번에도 전경련 등 재계는 강력 반발했다. 특히 대기업은 일부 적합업종이 대중소기업간 대화와 협의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에서 위원회 권고로 선정돼 민간주도라는 동반성장 취지를 약화시켰다고 토로했다.
2차 발표에서는 LEDㆍ김치ㆍ어묵 등 16개 품목의 경우 대기업의 사업철수를, 두부ㆍ레미콘 등은 진입 및 확장 자제를 권고했다. 그러나 이들 품목은 애당초 대중소기업 간 이견이 큰 품목들이어서 더욱 논란이 거셌다. 상생은 고사하고 대-중소기업 간 갈등만 부추기는 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왔다. 특히 김치ㆍ두부 등 이미 확고한 사업기반을 구축해놓은 대기업들의 경우 생존권 보호 차원에서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반대를 촉구하는 집회를 계획하기도 했다.
중견기업도 불만 끊이지 않아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과 관련해 중견기업들의 경우도 눈여겨 봐야하는 대목이다. 중견기업들은 직원 수가 300명 이상이라는 이유만으로 대기업으로 분류된 것에 특히 유감이다. 이들은 중견기업을 대기업과 같은 위치에 포함시키는 것은 재고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식품업계의 경우, 중소기업기본법에 걸려 대기업으로 분류되는 바람에 간장 등 주력 제품에서 더 이상 사업확장을 할 수 없게 된 샘표식품, 신송식품 등을 최대 피해자로 지목했다.
중견기업들의 경우 이제 막 중소기업을 졸업하고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기업이 다수 포함돼 있다. 중견기업들은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가 특정 중소기업의 이익만을 위한 제도로 변질돼 중견기업과 우량 중소기업의 피해가 증가할 것을 우려했다. 적합업종 제도가 진입규제를 강화하고 중견기업의 경영환경을 악화시켜 해당 산업의 성장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더욱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역할분담을 통한 상생을 도모하려는 적합업종 제도가 대기업도 아닌 중견기업들에게 오히려 피해를 입히고 있다면,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진다.
이들은 국가경제구조 전체를 두고 볼 때, 적합업종 선정에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중견기업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들도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중견기업은 완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다른 기업들에게서 중간재를 구매해 사용하기 마련인데, 중견기업이 사업을 축소할 경우 이 기업과 협력관계에 있는 중소기업과 중견기업들도 거래 축소로 인한 불똥이 튈 것은 자명하다는 말이다.
전인철 기자 sbnews777@naver.com
관리자 ihjung@sb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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