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31일 서울 홍대앞의 리치몬드 제과점 입구에 폐업 알림판이 나붙었다. 그 후 이 자리에는 롯데리아가 운영하는 커피전문점 엔제리너스 커피가 들어섰다. 확인 결과 롯데 측은 리치몬드의 계약기간이 만료되기 훨씬 전에, 임대료를 대폭 높여 계약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원래 1층만 썼던 리치몬드의 임대료는 월 1,100만원이었다. 그런데 수년 전 모 프렌차이즈 제과점 업체가 건물주를 만나고 간 후 월 2,200만원으로 올랐다. 결정적으로 리치몬드가 손을 털게 된 것은 롯데 측이 왔다 간 후 임대료가 6천만 원대로 무려 3배나 올랐기 때문이었다.
도처에서 비슷한 피해 사례가 들려온다. 서울 답신리동의 한 동네 빵집, 인근에서는 잘 되기로 유명한 집이었다. 그런데 계약 종료 전 언제부턴가 건물 주인이 가게세를 배 이상 올려달라고 했다. 할 수 없이 가게를 접고 나왔는데, 그 자리에 대기업 프랜차이즈 제과점이 들어섰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업체가 잘 써먹는 수법이다. 임대료가 올라도 회사 입장에서는 별 문제가 없다. 올린 임대료 만큼 새로운 가맹점의 투자비를 늘려 잡으면 되기 때문이다.
이통사 포인트제 제휴 큰 역할
파리바게뜨 빵집이 성업하게 된 데는 이동통신사와의 포인트제 제휴가 큰 역할을 했다. 이 제휴카드는 애초 20-40%까지 할인이 가능했다. 현재는 포인트 할인율이 10%로 내려가 있다. 그 중 통신사가 5%, 빠리바게트 본사가 2.5%, 점주 2.5%씩 부담하고 있다. 게다가 SPC그룹 계열사 포인트 카드인 ‘해피카드’로 추가 5% 적립을 받는다.
소비자들에게는 이 같은 포인트제 할인이 굉장한 매력이다. 하지만 통신사들은 동네빵집에 대해 포인트제 적용을 해주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이 포인트 할인제도는 프랜차이즈 제과점 급성장의 가장 주요한 요인이 됐다.
반면 빵 맛은 수제빵인 동네빵집 빵맛이 훨씬 낫다. 프랜차이즈 빵은 대부분 공장에서 1-2일 전에 만들어져서 공급되거나, 냉동된 채로 공급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포인트제가 되지 않는 동네빵집들은 프랜차이즈 제과점에 고객들을 다 뺏기고 있다.
수제빵집 고사할 것인가
이 추세로 가면 수년 내에 우리나라 수제 빵집은 거의 발견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현재 동네빵집은 4천개에 불과하다. 반면 대기업 제과점은 파리바게뜨 3,000개, 뚜레주르 1400개, 대형마트 빵집 1000개 등 대기업 제과점 5400개로 숫자가 역전됐다. 더욱이 이들 프랜차이즈 제과점은 이제 요지마다 선점하고 있어서, 남아있는 동네 빵집들은 언제 망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현재 프랜차이즈 가맹점들은 본사의 우격다짐에 의해 가맹점으로 갈아탄 가맹점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만일 정부가 나서서 프랜차이즈 본사의 잘못된 횡포를 바로잡아 준다면, 대부분 예전의 동네빵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가맹점들이 부지기수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마진율뿐 아니라 프랜차이즈 본사의 횡포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5년만에 한번씩 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파리바게뜨의 리뉴얼 규정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이로 인해 가맹점주도 피해자로 전락하고 있다.
시급히 대안을 모색할 때
아울러 정부의 창업 컨설팅 과정에서 이러한 프랜차이즈 업체들의 문제점이 제대로 창업 희망자들에게 알려질 수 있도록 정부도 노력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창업했다가 피해를 보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러한 사람들이 줄을 서 있기 때문에 프랜차이즈 본사는 기존 가맹점주들에 대한 압박을 더욱 거칠게 하기 마련이다. “하고 싶지 않으면 그만 둬라. 할 사람들은 줄을 서 있다”는 식이다.
또 대한제과협회는 프랜차이즈 본사가 이격거리를 준수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500m의 거리를 두자는 신사협정을 업계 차원에서 맺고 준수하자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제빵업계의 정상화를 위해 정부와 업계가 머리를 모으고 비상한 대책을 세워야 할 때다.
파리바게뜨에 우는 동네빵집 사례 1
우리 가게 때문에 옆의 빵집 3곳이 문을 닫았다
코 앞 가맹점 낸다는 협박에 시달렸던 이 모씨의 경우
“개점 5년 만에 나 또한 거리로 나 앉을 판”
수원 시내 모처에서 현재 파리바게뜨 빵집을 운영하는 이 모씨는 빵집만 20여 년을 해오고 있다. 그런데 8년 전 이 씨의 빵집 인근에 파리바게뜨가 들어서는 바람에 매출이 급감했다. 월 2백만- 3백만 원씩 적자가 날 무렵 파리바게뜨 직원이 찾아오더니, 자신들의 브랜드로 갈아탈 것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만약 이를 거부하면 20m 전방 수퍼마켓 자리에 파리바게뜨 빵집을 열겠다고 위협했다. 할 수 없이 이 씨는 4년 전 가맹비 1천만원, 인테리어비 1억 8천만원을 들여 파리바게뜨로 간판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나마 애초 쓰던 빵기계를 계속 써서 그렇지, 기계 구입비만 몇 천 만원이 더 들어갈 뻔 했다. 또 이씨는 기존 영업을 하던 가게에서 신규 개점을 했기 때문에 초두 비용이 적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권리금이네 뭐네 모두 합해 6억원은 족히 들었을 것이다.
60%에 이르는 빵 재료비
양상추 밤 계란 등 제과제빵 재료도 본사로부터 구매해야 하는데, 단가가 시중가보다 훨씬 비싸다. 전체 공급량의 70~80%에 이르는 단과자(일반 빵) 종류는 대부분 1-2일 전 본사 공장에서 만든 완제품으로 들어오고, 패스츄리빵(도넛이나 채소재료빵 등)은 냉동상태로 빚어져 들어온다. 냉동상태로 들어온 빵은 바로 냉동실에 들어갔다가, 그 때 그 때 해빙한 다음 구워서 진열한다. 그런데 본사에 지불하는 빵 공급 비용이 전체 매출의 평균 60%에 이른다.
처음 개점할 때 본사는 전체 매출 대비 마진율이 12% 정도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씨의 경우는 일일 매출 300만원에 이르지만, 임대료, 인건비, 빵 공급 비용, 빵 버리는 비용, 포인트비 부담비용 등 모든 비용을 제하면, 순 이익률이 5%에 불과하다. 그래도 그의 경우는 전체 파리바게뜨 가맹점 순위 5% 안에 드는 것으로 보고 있다.
리뉴얼하면 남는 게 없는 장사
이로 인해 인터넷에 ‘파리바게뜨 매물’이라고 치면 수도 없이 많은 매물이 나돈다. 이씨는 현재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다. 본사 직원이 찾아와 현재의 20평형 매장을 옆 가게까지 확장해 리뉴얼을 전체적으로 다시 하기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5년마다 한번씩 리뉴얼 하는 것은 거의 의무사항이다. 이씨는 셈을 해본다. 매달 5%가 남는데 생활비 등을 빼고 2%씩을 저축한다 해도 5년 만에 한번씩 하는 리뉴얼 비용을 대지 못할 것이라는 셈범이 금방 나온다. 하지만 장사를 계속 하려면 본사의 요구를 따르지 않을 수 없다.
본사에 밉보이면, 바로 코 앞에 더 큰 매장을 내는 게 본사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올 6월까지가 기한인데, 결국 매장을 내놓아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내놓는 것도 문제다. 본사에 내놓으면 매물 비용을 제대로 쳐주지 않는다. 권리금이 헐값으로 내려가기 때문이다. 많이 잡아 2억 5천만원 정도 받고 나가면, 지금 시세로는 또 다시 빵집을 내기 어렵다. 돈도 작을 뿐 아니라 웬만한 자리에는 파리바게뜨나 뚜레주르 때문에 낼 자리가 없다.
본사만 꿩 먹고 알 먹고
지난 4년여 동안을 돌아보면 본사만 좋은 일 시킨 게 분명하다. 처음 1억 8천여 만원에 이르는 인테리어 비용도 여타 인테리어 업체를 이용하면 그 반 값이면 충분해 보인다. 빵 공급비용도 엄청 남겨 먹은 셈이고, 매장을 내놓으면 후임자로부터 권리금부터 시작하여, 리뉴얼 비용, 프랜차이즈 가입 비용 등을 또 받을 것이기 때문에 본사는 전혀 손해날 게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리바게뜨 가맹점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줄을 섰다. 하지만 이들은 결국 소모품에 불과하다.
그가 파리바게뜨로 갈아탄 후 인근 빵집 3곳이 문을 닫았다. 지하철 역 출구마다 파리바게뜨가 개점하는 바람에 추가로 네 곳 포함 모두 7곳의 빵집이 없어졌다. 파리바게뜨 공화국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파리바게뜨에 우는 동네빵집 사례 2
6년 만에 다시 만난 파리바게뜨와의 악연
부산에서 만난 파리바게뜨, 서울에서 다시 만나다
서울 동작구 상도 2동 덴마크제과점 임형회 사장은 제빵업만 33년 경력이다. 10년 정도 제과회사에서 근무하다가 91년 독립했다. 처음에는 부산 두실역 부근에 가게를 냈다. 이 일대는 10여 곳의 동네 빵집들이 영업을 하고 있었지만, 모두 규모가 그만그만한지라 서로 선의의 경쟁 속에서도 먹고살 만 했다.
부산 두실역에서 결국 쫓겨나
그러던 중 파리바게뜨가 입성했다. 그나마 경쟁력이 있던 임사장 제과점과 파리바게뜨만 남고 나머지 빵집들은 모두 폐업했다. 그러던 중 인근에 40평대 대형 빵집 들어섰고, 결국 임사장은 부산 가게를 접고, 지난 2006년 지금의 서울 상도동으로 생업터전을 옮겼다. 중고 기계를 구입하고, 보증금도 들지 않는 곳에 터를 잡아 나름 알차게 운영해 왔다.
그런데 파리바게뜨 직원이라는 사람들이 나타나 자꾸 가맹점으로 가입하라는 것이었다. 그들이 내세운 평균 매출에 마진율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들어맞지 않았다. 못한다고 했더니, 언뜻 ‘그럼 바로 옆에 내야겠군’라고 혼잣말처럼 하고 나갔다. 그러고 나서 얼마 있지 않아 건너편 이불점과 비디오 가게를 내보내고 떡 하니 개점을 해 버렸다. 2차선 도로 건너편이니 불과 20m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다.
서울서 다시 만난 파리바게뜨
참으로 기막힌 악연이다. 6년 터울을 두고 두 번씩이나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 상대다. 경력으로나 기술력이나 마케팅 능력이나 절대로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 하지만 대기업 브랜드하고는 경쟁이 되지 않는 게 있다. 바로 포인트제다.
고객들은 통신사나 카드사 포인트를 활용하면 10%를 싸게 살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또 파리바게뜨는 해피 카드 제도를 하나 더 운영한다. 배스킨라빈스, 던킨 도너츠 등 동종 계열사 카드를 말하는데, 이 카드를 통해 5%를 더 싸게 구입할 수 있다.
맛으로 보면 프랜차이즈 빵은 사실 경쟁이 안된다. 수제빵과 기성빵 또는 냉동빵의 관계이니 말이다. 그러나 고객들은 이것을 모른다. 매스컴을 통해서 접하는 브랜드, 또 포인트의 이점 때문에 그 쪽으로 몰려가기 바쁘다.
기술자 3명 포함 5명 내보내
“현재 계속 적자 상태입니다. 기존의 기술자 3명, 아르바이트 2명을 내보내고 우리 부부가 연중 무휴로 일하면서 버티고 있지요. 아이들이나마 다 키워서 크게 들어가는 돈이 없어서 그나마 버티고 있는 겁니다.”
바로 인근에 두 곳의 빵집이 더 있는데 이들도 풍전등화의 상황이다. 8년 전 2천여 세대 아파트 상가에 오픈한 신라명가도 머지 않아 문을 닫을 거라는 말을 들었다. 6년 전 부산 두실역의 상황이 다시 반복될 게 분명하다.
그런데 정부는 몇 년전 파리바게뜨에게 일자리 우수기업 상을 주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그러나 이 곳에 파리바게뜨 하나가 들어서는 바람에 덴마크 제과점에서만 이미 5명의 일자리가 줄었다. 신라명과와 또 그 옆 빵집이 문을 닫으면 얼마나 일자리가 줄게 될까. 가까이 상도역 1번, 5번 출구 앞에도 파리바게뜨가 자리잡고 있다. 머지 않아 이 곳 또한 부산 두실역처럼 파리바게뜨 깃발만 나부끼게 되지 않을까 예상된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재벌 제과점이 줄줄이 사업철수를 발표했다. 하지만 재벌 제과점은 동네빵집과는 크게 부딪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사업을 접으면 파리바게뜨나 뚜레주르, 그리고 대기업 마트 제과점만 좋아진다. 그들의 빈 자리를 이들이 채울 것이기 때문이다.
관리자 ihjung@sb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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