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 삼성 현대 롯데 비씨 등 5개 전업계 카드사들은 29일 현대차의 수수료율 인하 요구를 받아들여 12월부터 적용한다고 밝혔다. 이들 카드사들은 고객들이 현대차를 카드로 구매할 때 현대자동차에 부과하는 가맹점 수수료를 신용카드는 1.75%에서 1.7%로, 체크카드는 1.5%에서 1.0%로 낮춰주기로 했다.

현대차 요구에 카드사 굴복

국내 자동차 판매의 80%에 이르는 현대차 앞에 카드사들이 백기를 든 것이다. 현대차는 가맹점 계약 갱신을 앞두고 지난 6월 카드사들에 일제히 공문을 보내 동일한 내용의 가맹점 수수료 인하를 요구했고, 끝내 위 5개 카드사는 원안 그대로 현대차의 요구를 수용했다.

반면 예외적으로 국민카드가 이에 대해 반발하자, 현대차는 10월 가맹점 계약기간 종료와 동시에 국민카드와의 계약 연장을 거부했다. 이에 따라 국민카드 회원들은 지난 달 4일부터 현대·기아차를 살 때 국민카드를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코너에 몰린 국민카드는 사후 협상을 벌여 결국 현대차의 요구를 수용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약자에게는 강한 카드사들

이에 대해 그 동안 카드사들에 대해 가맹점 수수료 인하를 줄기차게 요구해오던 소상공인들이 격렬히 반발하고 나섰다. 전국소상공인단체연합회(회장 김경배, 이하 연합회) 최승재 사무총장은 “그 동안 소상공인들의 가맹점 수수료 인하 요구에 경영난 운운하며 수수료 인하 불가 입장을 견지해온 카드사들의 주장이 얼마나 허구였는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그는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강한 자본의 논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라고 밝히고, “결국 9조 원이라는 현대자동차 판매 시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카드사들이 굴복한 것이다. 반면 270만 소상공인들은 지난 09년에만 240조원의 카드 매출을 기록(09년 총 카드 소비액 370조 원의 65%)하고도 힘이 분산돼 있기 때문에 아직도 평균 3%의 고율의 수수료를 물고 있는 것”이라고 비통해 했다.

가맹점 처벌조항 철폐해야

이에 따라 소상공인들의 제도 개선 노력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신용카드가맹점은 신용카드로 거래한다는 이유로 신용카드 결제를 거절하거나 신용카드회원을 불리하게 대우하지 못한다”는 여신전문금융법(이하, 여전법) 제19조 제1항의 철폐를 강하게 요구할 전망이다.

최 총장은 “이 조항 때문에 사실상 영세 가맹점들은 좀더 수수료가 저렴한 카드사들의 카드를 가려받을 수 없게 돼 있다. 좀더 저렴한 수수료를 내거는 카드사들의 결제를 유도하려 해도 이 조항 때문에 법 위반이 돼 처벌을 받게 된다”라고 말했다.

여전법 70조 3항 4호는 이 조항을 근거로 가맹점들을 처벌할 수 있게 돼 있는데, 이 제도는 사실상 세계에 유래가 없는 제도이다. 정부는 2002년 과표 양성화 정책의 일환으로 이 제도를 도입했다. 이는 카드사들에게는 엄청난 혜택이, 영세 가맹점들에게는 심각한 경영난의 원인으로 기능했다.

지난 해 카드사 마케팅비 4.3조 원

이로 인해 카드사들은 가만히 앉아서 카드 가맹점의 가입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반면 카드 회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해마다 천문학적인 마케팅비를 지출하고 있다. 지난 해에만 4.3조 원을 마케팅비로 썼다. 마케팅 비용률(마케팅비용/카드 총수익)이 25.4%에 이른다. 별의별 인센티브에 심지어 연회비 면제까지 내세우며 회원확보에 혈안이 돼 있다. 만일 정부의 카드 가맹점 의무화 정책이 없었다면, 카드사들은 똑 같이 가맹점을 확보하기 위해 수수료 인하 경쟁에 각종 인센티브를 내걸고, 엄청난 영업비를 지출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런데 똑 같은 제도하에서도 대형 가맹점들은 강력한 협상력을 무기로 충분히 수수료를 인하시켜 왔다. 이번에 현대차가 국민카드를 예외적으로 거부할 수 있었던 것은 위의 여전법상 의무조항이 개별 카드사와의 가맹점 계약을 전제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도 저도 못하는 영세 가맹점들

가맹점 계약을 아예 맺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떤 카드도 받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이미 카드 결제가 전 국민 사이에 생활화된 상황에서 영세 가맹점들은 가맹점 계약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전 카드사와의 카드 가맹점 계약을 맺지 않으면 안된다. 특정 카드사와의 가맹점 계약을 거부하기에는 해당 카드사 손님만 끊기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형 가맹점들은 다르다. 현대차의 경우에서 나타난 것처럼, 카드사들이 먼저 해당 가맹점들의 고객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가맹점 계약을 서두르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서 저절로 수수료율은 내려가게 돼 있다. 현재의 여전법 상의 독소조항 때문에 영세 가맹점들은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인 것이다.

급기야 연합회는 지난 달 23일 여전법 19조 1항에 대해 헌법 소원을 제기 했다. 연합회 고문변호사로 활동하면서 헌법소원 업무를 진행하고 있는 이민석 변호사에 따르면, “영업의 목적은 이윤의 확보이며, 상인은 손님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가맹점 수수료가 붙는 카드결제자와 그러한 수수료 부담이 없는 현금결제자는 이윤에서 차이가 있으므로 카드 결제를 거절하거나 차별적으로 대우하는 것은 시장경제의 원리상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라고 말하며, “이에 따라 여전법 제19조 제1항의 규정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영업의 자유에 대한 명백한 침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이미 카드 결제가 생활화된 마당에 과표 현실화라는 정책 목표는 이미 달성됐으며, 그러한 정책목표는 현금영수증 발급 제도를 통해 이 후에도 충분히 달성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이 같은 제도로 인해 가맹점들은 현금 고객에 대해 그에 상응하는 인센티브를 부여하려고 해도 안되게 돼 있다”라고 비판하고, “그렇게 되면 여전법상 카드고객을 차별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위반이 된다”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그는 “세계에서 유래없는 독소조항으로 헌법상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게 분명하기 때문에 헌법 소원은 헌법재판소에 의해 인용될 게 확실하다”라고 전망했다.

가맹점 단체 설립 제한도 철폐해야

아울러 소상공인업계는 여전법 18조의 2의 1항에 따라 연간 매출규모 9,600만원 이하의 가맹점만이 단체를 설립할 수 있게 한 제도를 철폐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한나라당 정태근 의원, 민주당 박병석 의원 등이 대표발의한 법안들이 국회에 다수 계류해 있다.

최 총장은 “여전법은 오로지 카드사와 대형가맹점들만을 위한 법이다. 영세 가맹점들의 단결권까지 차단하고 있다. 카드 가맹점 의무화 정책이 시행된 10여년 간 영세가맹점들은 대형 가맹점보다 근 두배에 이르는 평균 3%의 수수료율을 부담해 왔다. 이를 낮추기 위해, 여전법상의 여러 가지 독소조항이 빨리 철폐돼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연합회의 헌법소원을 계기로 영세 가맹점들의 교섭력을 키우기 위한 제도 개선 요구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한편 최 총장은 “한국주유소협회 등 연합회 산하 단체와 함께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합회가 추진하고 있는 설문 내용은 “카드 가맹점 수수료가 가장 높은 카드사 한 두 곳을 택해 일시적으로 가맹점 계약 해지 후 해당 카드사의 카드 결제를 거부하는 것”과 관련된 내용이다. 연합회는 다음 달 13일 설문조사 결과를 취합해 공개할 예정이며, 15일부터 해당 신용카드를 실제로 받지 않는 캠페인에 들어갈 예정이다.

관리자  ihjung@sb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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