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방치 속, 중소가맹점 평균 연 36% 고율 수수료 부담

2009년 총 카드 사용액은 할부구매 포함 373조 원이었다. 이는 전체 민간 소비지출의 58.9%에 이른다. 카드는 이제 현금 이상으로 더 중요한 화폐 기능을 하고 있다. 이같은 카드의 발급기관이 된 카드사들은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인다. 작년에는 2조 7243억원의 순이익을 올려 2009년 8600억원에 비해 46.1%의 증가세를 보였다.

그 중 태반이 가맹점 수수료다. 금융감독원의 2010년 신용카드사 카드수익 구조에 따르면 신용카드사의 수익((10조1천233억원) 중 가맹점수수료 비중이 60.5%(6조1천296억원)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맹점 수수료 비중은 2000년 11.2%에서 2003년 27.9%으로 계속 증가되어 오다가, 2007년 처음으로 60.5%를 차지한 이후 계속하여 60%를 유지되고 있다. 2003년 카드대란 이후 카드사들이 카드론, 현금서비스 등을 통한 이자 수입보다, 가맹점 수입에 집착하여 영업한 결과다.

그런데 신종 화폐의 기능을 계속 넓히고 있는 이 카드 화폐는 웬일인지 계속 법 통제 구역 밖에 머물고 있다. 소비자들이 무심코 카드를 쓸 때마다, 현금과는 달리 적으면 1.2%, 많으면 4.5%의 수수료가 카드사들에게 꼬박꼬박 들어간다. 이 수수료 수입이 카드 회사 수입의 60%를 넘고 있는 것이다.

법 영역 밖에 있는 카드사

하지만 정부는 한번도 카드 회사의 수수료 수준이 적정한지 조사해 본 적이 없다. 민간영역이라는 이유에서다. 카드 회사도 가맹점 수수료 원가 공개 운운하면, 언제나 “원가를 알려주고 장사하는 데가 어디 있나”하며 화살을 피해 왔다.

더구나 가맹점 수수료 영역은 전혀 경쟁이 먹히지 않는 완전 독점적 영역이다. 카드사 브랜드가 8개나 되지만 이들은 경쟁을 벌이지 않는다. 원래는 카드사들마다 가맹점을 확보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게 마련이다. 현재도 카드사들은 카드 회원 확보를 위해 저마다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그 과정에서 가맹점 수수료율도 시장 논리에 의해 현실적으로 내려가게 돼 있다.

정부, 카드사의 가맹점영업 면제

그런데 정부가 카드사들의 가맹점 영업을 면제해 주었다. 정부가 1998년부터 카드 가맹점 의무화 정책을 실시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가맹점 수수료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조절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렸다.

카드회사가 8개나 되지만, 각 회사마다 일방적으로 수수료를 책정해 놓아도, 아무런 견제를 받지 않게 됐다. 가맹점 의무화 정책으로 가맹점들은 아무리 수수료율이 높아도 거부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카드 수령을 거부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 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돼 있다(여신금융업법 70조).

더욱이 중소 자영업자들은 이 같은 가맹점 정책으로 가장 큰 부담을 지게 됐다. 대형 가맹점(1.2-2.0%)과는 달리 매월 세금 아닌 세금을 총매출의 평균 3%씩 카드사에 내고 있다. 정부의 카드 정책 때문에 전에 없던 지출이 생겼고, 카드사로부터 돈을 빌려 쓰지도 않았는데, 연 36%의 고율의 이자를 내는 거나 다름 없게 됐다.

명백한 영업의 자유 침해

정부는 세수 투명화 정책의 일환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가맹점들 입장에서는 명백한 영업의 자유의 침해였다. 가맹점들은 카드보다 더 경비가 저렴한 현금을 결제수단으로 선택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소비자들이 카드결제를 고집하면 물건이나 서비스를 팔지 않으면 그만이다.

또 카드사로부터 돈을 빌려 쓰지 않은 이상 수수료를 구태여 낼 이유도 없다. 더욱이 가맹점 수수료는 수익자 부담의 원칙으로 보면, 소비자가 내야 할 영역이다. 신용으로 구매를 하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이자를 내는 건 당연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잘못된 가맹점 시스템으로 카드사들은 폭리를 취하게 됐다. 그 동안 정부는 카드사들로 하여금 준조세적인 수수료를 거둬가도록 특권을 보장해 주고는, 그 수수료율이 적정한지 한번도 조사하지 않았다. 카드사들이 집단적 발언권이 높은 대형점들에게 낮은 수수료를 물리고, 중소형점에게는 높은 수수료를 물리는 것도 방치했다.

은행과 카드 정책의 이상한 차이

반면 같은 화폐를 다루는 은행에 대해서는 판이하게 다른 태도를 보인다. 은행의 금리는 매달 금융통화위원회를 통해 정해지는 정책금리에 의해 통제된다. 또 시중은행들은 그 한도 내에서 각기 다른 금리 상품을 갖고 국민들을 상대로 영업을 벌인다. 그 와중에서 자연스레 적정한 시장금리 형성 시스템이 작동하게 된다.

이토록 정부가 기준금리를 정하는 것은 화폐가 국민경제에 끼치는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를 민간에만 맡길 경우 신용 공여자인 은행이 국민을 상대로 독점적인 이익을 과도하게 남길 수 있는 폐단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와는 달리 화폐보다 더큰 지불수단이 된 카드 가맹점 수수료율 문제에 대해 완전히 손을 놓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수수료율 결정을 완전히 카드사에 맡기고 방치함으로써 카드사가 폭리를 취하도록 방관하고 있다. 평균 36%에 이르는 고리대금업 이자만큼이나 비싼 고율의 수수료를 꼬박꼬박 물고 있는 중소 가맹점은 그 최대의 피해자인 셈이다.

해외국가의 적극적 카드정책 개입

우리 정부의 카드사들에 대한 특혜 위주의 카드 정책과는 달리 외국에서는 진즉부터 이같은 카드사들의 행태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2006년부터 호주 중앙은행은 가맹점 수수료 원가를 고시해 카드사들로 하여금 기준 수수료율을 준수하도록 했다.

카드사들의 독점체계의 폐단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동시에 차별적 수수료 부과 금지규정을 철폐해 가맹점들은 가맹점 수수료를 카드 사용자로 하여금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수익자 부담의 원칙을 받아들인 것이다. 또 모든 카드 수용 원칙도 폐기해 가맹점들로 하여금 좀더 저렴한 비용이 드는 체크카드를 선택해 받도록 했다.

이같은 정부 조치를 카드사들은 직권남용으로 제소하기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카드사들은 가맹점 확보를 위해 경쟁에 나서지 않으면 안됐고, 수수료율은 최대 75%나 내려갔다. 그 동안 카드사들의 독점적 수수료 결정과정에 얼마나 거품이 많이 끼어있었는지를 반증해주는 사례다.

EC(유럽위원회)는 카드사들의 가맹점 수수료율 산정을 비공개로 하는 과정에 대해 반독점으로 판단한 경우다. 2000년에 이뤄진 EC의 이같은 판단에 대해 비자는 스스로 수수료율을 기존보다 38% 인하하기로 하여 반독점법 위반 판결을 비껴갔다.

영국의 경우 2005년 공정거래청(OFT)이 마스터카드 비자의 정산수수료에 대해 반독점법에 위반했다고 결정한 후 가맹점 수수료가 크게 하락했으며, 스페인, 폴란드, 뉴질랜드 등의 나라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와 관련해 국회 김상희 의원이 지난해 12월 “금융위원회를 통해 가맹점수수료 원가내역 표준안을 작성하도록 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김의원은 “신용카드 소득공제제도가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되는 상황에서, 신용카드업자는 국민에게 필요한 정보를 정확하고 충분하게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입법 취지를 밝혔다.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는 최근 고위당정협의회에서 “신용카드는 전체 거래의 70%를 결제하는 준화폐의 성격이 있는데, 화폐는 국가가 관리하는 것이기에 신용카드도 국가가 관여할 필요가 있다. 공사를 세워서라도 수수료율 인하에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편집자  morning77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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