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까지 추진되는 산자부의 유통산업발전기본계획은 현실적으로 영세 소상공인들에게는 매우 우려스러운 정책이다. 한마디로 ‘강자생존’이라는 정글법칙을 소상공인업계에 적용하겠다는 발상이다. 유통산업은 ‘선진화’될지 몰라도 하루하루 연명에 급급한 영세 소상공인들로서는 결국 시장에서 퇴출될 우려가 상당하다. 국가 선진화도 좋지만 국민생업, 즉 민생을 도외시한 선진화는 주객이 전도되는 꼴이다.

산자부의 이 같은 방침은 지난 2013년 말부터 이미 예견됐던 부분이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민경제자문회의가 생계형 소상공인 퇴출 전략을 담은 유통산업선진화 방안을 밀어붙이더니, 급기야 안전행정부는 지난 3월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규제개혁 끝장토론 이후 각 지자체에 ‘규제개혁추진단’을 설치하라는 공문을 내려 보내기도 했다.

안행부는 국민에게 불편을 주는 경쟁제한적 규제를 개선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라고 애써 강조했지만, 이 가운데에는 유통법과 상생법 등 대기업의 영업환경을 제한하는 조례도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인천시 규제개혁추진단 홍준호 단장은 지난 4월 말 가진 통화에서 “공정거래위가 지난해 5월부터 10월까지 6개월 동안 ‘지방자치단체의 경쟁 제한적 조례·규칙 등에 관한 실태파악 및 개선방안 연구용역’을 실시한 것은 사실”이라며 “이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유통법과 상생법 관련 일부 조례가 기업의 진입장벽을 제한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라고 말했다.

여기에다, 지난 5월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프랜차이즈 거리 제한을 전격 폐지하더니, 지난달에는 동반성장위원회마저도 한층 더 강화된 적합업종 선정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처럼 경제민주화 노선을 포기하고 대기업 프랜들리로 급선회한 현 정부의 유통산업선진화 전략은, 전 부처의 적극적인 지지 속에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대형유통사와 중소유통업계 간 끊임없는 마찰이 예견되는 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산자부의 이번 기본계획 방향은 ▲대형유통사의 획일적인 규제 대신 민간자율의 상생·협력 강화 ▲성장가능성을 토대로 한 중소유통업체 선택·집중 지원 ▲대형유통사의 해외진출 지원 확대 등으로 요약된다.

이와 관련, 김제남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유통산업 규제 강화를 유통산업 성장의 위기 요인으로 인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골목상권 보호, 공정거래 등 신규규제 도입도 민간의 창의성을 제약하고 있다는 것이 산자부의 인식”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산자부는 복합쇼핑몰, 드럭스토어, 편의형 슈퍼마켓 등 신업태 등장 초기단계부터 골목상권 논란에 봉착해 있다”라고 진단하고, “불합리한 규제를 개선하고 상생·협력 문화를 조성한다는 의도가 이번 기본계획의 밑바탕에 깔려있는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를 위해, 산자부가 ▲드럭스토어, 편의형 슈퍼마켓의 “골목상권 침해논란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유통산업 분류기준을 마련하고 ▲유통산업 상생·협력 지수 등을 개발해 정기적으로 발표하겠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특히 김 의원은 산자부의 중소유통업체의 선택·집중 지원에 대해서도 문제제기를 했다.그는 “전통시장과 중소슈퍼의 경쟁력 강화는 자구 의지가 있고 생존 가능성이 있는 곳 위주로 선택·집중 지원하겠다”면서도, “이미 ‘상품공급’ 방식으로 도매업에 뛰어들기 시작한 ▲‘기업형 슈퍼(대형유통사)’가 중소유통단체의 주문을 받아 물품을 공급하는 사업을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이를 토대로 중견 도매물류 전문기업까지 육성하려 한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김 의원은 “산자부가 ▲복합쇼핑몰 육성을 포함해 ▲사실상 관변단체인 유통산업연합회의 설립근거 마련 ▲유통산업연구원 설립 ▲유통산업발전 민간펀드 조성 ▲유통산업 실태조사 및 통계기반 강화 등을 추진할 것으로 파악됐다”며 “이번 유통산업발전기본계획은 대기업 편향적 시각, 중소상인에 책임 돌리기, 정책방향의 왜곡으로 점철된 균형을 잃은 계획”이라고 왜곡된 대기업 중심의 ‘정책 취사선택’과 유체이탈 화법으로 ‘남 탓’만하는 산자부를 강하게 압박했다.

서랍 속에 들어있던 산업통상자원부의 유통산업선진화 로드맵이 마침내 공개됐다. 이번 로드맵 속에는 향후 5년간 국내 유통업체의 해외진출 적극 유도, 중소유통업체에 대한 선택·집중 지원, 유통산업 실태조사 및 통계기반 강화 등을 통해 세계적 수준의 유통 강국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산자부의 야심찬 의지를 담고 있다.

그런데 산자부는 이 같은 계획을 외부에 알리지도 않은 채 꼭꼭 숨겨오다, 지난 1월부터 자료 요청을 지속적으로 해온 정의당 김제남 의원의 요구에 못 이겨 근 6개월 만에 이번 자료를 공개한 것이다.

김 의원실 관계자는 산자부의 이런 행태에 대해 “매년 초 계획을 수립해 각 지자체에 알리도록 한 현행법마저 무시한 처사”라며 강하게 질타했다.

문제는 또 있다. 향후 5년간 기본계획에 담겨야 할 세부 시행계획이 부실하기 짝이 없는 졸속행정의 대표적 사례라는 것이 김 의원실 측 주장이다.

이와 관련, 김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8일 “올해부터 2018년까지 유통산업발전 기본계획에 따라 추진될 연도별 시행계획 자료를 요청하자, 산자부가 유통물류과의 올 한해 업무계획을 제출했다”며 “시행계획은 유통법에 따라, 매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협의를 거쳐 수립하고 시도지사에게 송부해야 하는 계획이다, 관계기관과 공조해 장관의 책임으로 수립하고 시행해야 하는 시행계획이 산업부의 일개 ‘과 업무계획’으로 둔갑된 것이다, 유통법을 조롱하는 행위로 보지 않을 수 없다”라고 분개했다.

김 의원실은 또 “중소업체 정책은 누락시키면서, 살아남을 수 있는 중소유통업체 만을 골라 집중 지원하겠다”라는 산자부의 이중적 행태도 꼬집었다.

산자부는 지난해 1억 원의 예산을 들여 대한상의 유통물류진흥팀과 학계 교수가 참여한 ‘2014∼2018년 유통산업발전 기본계획 연구’를 실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연구용역이 제시한 중소상인과 지역경제 관련 정책은 대부분 누락시켰다는 게 김 의원실 주장이다.

이에 대해, 김 의원실은 “연구용역에는 도매 공급구조의 활성화를 위해 ▲중소 유통업계의 광역 및 통합물류센터 건립 ▲중소상인 맞춤형 교육·경험 프로그램 확대 ▲중소 유통의 조직화 강화 ▲대형유통의 지역경제 기여 확대 방안 등이 제시됐지만, 이번 기본계획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라며 “결국 남은 것은 드럭스토어, 편의형 슈퍼, 복합쇼핑몰 육성 등을 필두로 하는 대형업체 편향적 지원과 중소업체에 대한 선택적 지원이라는 불균형, 반규제, 반중소상인적 정책만 남았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산자부 유통물류과의 한 관계자는 김 의원실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기본계획과 시행계획 발표를 고의로 늦춘 것은 아니며, 관계부처와의 실무 회의를 거치다보니, 다소 늦어진 것이 사실”이라며 “이번 기본계획에 중소유통 정책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것은 아니며, ‘전통시장및상점가육성을위한특별법’과 ‘소기업및소상공인지원에관한특별법’에 중소유통 정책이 일정부분 들어가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번 기본계획 중 어떤 부분이 중소유통 정책과 관련이 있냐는 질문에는 즉답을 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