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가게 사업이 활발하게 추진되던 지난 2010년 8월, 중소기업청은 동네슈퍼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만한 사업 하나를 내놓았다. 바로 나들가게통합물류센터다.

그 당시 김동선 전 중기청장은 중기청의 향후정책 및 발전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정책워크숍에서 ‘유통체계 혁신 및 나들가게사업의 발전방안’의 하나로 네 가지 중장기 계획안을 발표했는데, 그 중 하나가 나들가게의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통합물류센터였던 것.

이 워크숍에서 그는 “중소 도소매업의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전국에 걸쳐 중규모(10,000㎡) 이상의 거점형 통합물류센터 20곳을 2013년까지 건립하겠다”라고 발표했지만, 예산조차 확보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표류하고 있다.

“행여나 만들어주겠지”라고 기대했던, 나들가게 점주마저도 이젠 포기를 한 상태다.

나들가게 사업 초창기에 신청을 했던 대구의 김아무개 점주도 “골목상권을 보호해야 할 중기청이나 경제전반을 균형있게 조절하는 산업통상자원부, 그리고 돈 줄을 쥔 기획재정부의 움직임을 보면, 이젠 기대하지 말아야 할 것 같다”며 “뼈대만 만들어주면 뭐 하냐, 피가 흐르지 않는데, 정부 당국자들이 하는 일이 다 그렇지”라며 혀끝을 찼다.

나들가게 사업에 참여했던 대다수 점주들은 간판 바꿔주고, 포스 설치해주고, 경영지도 해준다고 해 점포가 살아나는 게 아니라며, SSM(기업형 슈퍼마켓)과 마찬가지로 각종 공산품을 “얼마나 싸게 공급받느냐”에 달렸다고 항변하는 상황이다.

기재부·산자부에 막힌 ‘나들가게통합물류센터’

중기청도 나들가게 점주들의 그런 목소리를 수차례 들어왔지만, 이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양새다. 예비 타당성 조사 등의 사전 준비도 철저히 하지 않은 채, 물류센터 건립 예산안을 기재부에 올린 자신들의 잘못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실제로 중기청은 지난 2011년 초 전국 20곳 통합물류센터 건립에 필요한 예산 2400여억 원을 기재부에 올렸지만, 기재부가 역으로 예비 타당성 조사를 벌이는 웃지 못 할 촌극까지 벌어졌다. 정작 돈이 필요한 사람이 “왜 필요한가”를 조사해야 했지만, 오히려 기재부가 역으로 돈의 사용처를 꼼꼼히 따졌던 것이다.

결국 기재부가 자체적으로 예비 타당성 조사를 진행한 결과, 2011년 9월 경제성이 부족하다는 결론이 내려졌고, 중기청의 1차 예산안 신청은 그렇게 무산됐다.

이 당시, 기자와 통화했던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물류센터 숫자에 비해, 공급처인 나들가게 숫자가 너무 적기 때문에 물류센터의 경제성과 함께 효율성이 떨어진다”라는 입장을 내비쳤다.

기재부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나들가게 사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한국체인사업협동조합 측은 “나들가게의 경쟁력 확보에 꼭 필요한 것이 물류라는 사실을 기재부가 알면서도, 왜 그렇게 반대하고 나섰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기재부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은 중기청도 이번엔 5개 광역물류센터로 축소하고 시범사업에 필요한 600억 원의 예산을 또 다시 신청하는 등 물류센터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하지만 그해 말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2012년 예산 심의과정에서도 광역물류센터 시범사업 예산은 일절 반영되지 않았다.

중기청과 기재부의 팽팽했던 예산 줄다리기가 국회의 결정으로 최종 마무리되자, 중기청의 나들가게통합물류센터 건립이 물 건거 가는 게 아닌가라는 목소리들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실제로 지난 2년간 통합물류센터와 관련해 그 어떤 예산신청도 진행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산자부도 중기청의 나들가게통합물류센터 건립에 대해선 탐탁지 않은 속내들 갖고 있었다.

이 당시, 산자부는 골목상권이 살기 위해선 대기업의 물류를 이용하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입장을 내비쳤다. 이를 위해, 산자부는 지난 2010년 나들가게의 원활한 공산품 공급을 위해 사업 참여 단체와 이마트 간 공동구매 협약이 체결되도록 다리를 놓았지만, 이해관계 당사자들의 반대로 이 역시 무산됐다.

이처럼, 골목상권의 물류혁신을 이끌겠다는 중기청의 애당초 목적은 기재부와 산자부의 높은 벽에 막혀 퇴색됐고, 나들가게 점주들은 지금까지 기존 공급처인 제조사 대리점이나 중도매업자로부터 물량을 공급받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들가게 점주들은 “중기청이 약속한 대로, 통합물류센터를 하루빨리 만들어달라”고 지금도 아우성을 치는 실정이다.

물류센터 우리도~

최근에는 슈퍼가 아닌 다른 소상공인 업종에서도 통합물류센터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서는 상황이다.

옥외광고, 자전거, 가구 등 거의 모든 업종별 소상공인단체들이 저 마다의 이유를 들어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회원들에게 자내나 부품이 원활하게 공급되기 위해선 거점별 통합물류센터가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무엇보다, 물류센터를 통한 공동구매 사업까지 진행할 수 있어, 기존 보다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공급받을 수 있는 구매파워까지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한국옥외광고협회중앙회 이용수 신임 회장도 본보와 최근 가진 인터뷰에서 “업계 발전을 위해 광역물류센터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힘을 모아나가겠다”라고 밝혔으며, 한국자전거협회의 한 관계자도 “총판이나 대리점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부품이 원활히 공급되지 않는 어려움도 있다”며 “거점별 통합물류센터만 확보된다면, 회원사들을 위한 공동구매까지 자체적으로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소상공인 업계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중기청 소상공인지원과의 한 관계자는 “중소유통공동도매물류센터 신청 자격을 묻는 문의가 최근 들어 부쩍 늘었다”며 물류센터에 대한 소상공인 업계의 관심이 커지고 있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그는 “현행법에는 신청자격이 종합소매업(슈퍼마켓 외)으로 한정돼 있어, 단일 품목을 취급하는 일반소매업은 신청할 수 없다”며 “슈퍼를 제외한 각 업종별 소상공인들이 경쟁력을 확보를 위해선 업종은 달라도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통합물류센터 건립도 필요한 시점”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그는 또 “조만간 소상공인연합회가 출범하는 것으로 안다”며 “연합회 차원에서도 이 문제를 심도있게 다뤄, 소상공인들이 통합물류센터를 통해 구매파워를 강화해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이렇듯, 소상공인 업계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선 공동구매와 구매파워 강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며, 이는 통합물류센터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에는 중기청도 인정을 했다. 하지만 유독 산자부와 기재부만 여전히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 소상공인 업계의 전반적인 시작이다.

정치권, 물류센터 지원 재시동 거나

통합물류센터를 통한 소상공인들의 경쟁력 확보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도 연일 커지고 있다.

중기청의 통합물류센터가 기재부의 반대로 무산됐을 때에도 여야 의원들은 “기획재정부가 나들가게 사업 취지와 목적을 생각하지 않고 비용과 편익만 따진다”며 “물류센터 건립이 이뤄지지 않으면 나들가게 사업은 성공하기 어렵다”라며 한목소로 기재부를 질타하기도 했다.

특히 한나라당 박민식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초 무조건적인 지원이 아니라 중소상인들이 먹고살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 주겠다고 했던 나들가게 사업이 통합물류센터 건립 지연과 포기로 용두사미로 전락했다"며 "대형마트, 대기업 SSM 등과 경쟁할 수 있게 하려면 통합물류센터건립 등 가격경쟁력 강화방안이 반드시 추진돼야 한다"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민주당 오영식 의원도 본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복합물류센터 건립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보다 적극 나서야 한다”며 “정부에서도 중소유통공동도매물류센터 건립지원을 위해 2011년 140억원, 2012년 125억원 등 지난 10년간 물류센터 36개소, 46건에 국비 560억원이 지원되었고, 2013년에는 160억원이 편성됐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또 “그러나 이 사업은 국비 60%, 지방비 30%, 민간 10%의 매칭사업으로 추진되는데다가, 사업추진 주체가 지방자치단체이다 보니 지자체 예산확보나 사업우선 순위에서 밀릴 경우에는 사업이 원활히 추진되기 어려운 구조다”며 “향후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제도개선을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라고 덧붙였다.

소상공인신문

김영욱 기자 sbnews7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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