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인 “중형 슈퍼 계란헐값 요구 취재한다더니” 반발
제작진 “기획 의도 충분히 설명하고 인터뷰 했다” 해명

AI(조류인플루엔자)가 급속도로 확산되는 가운데, 연초부터 계란인들의 원성이 또 다시 커지고 있다. 바로 불량달걀의 시중유통 주범을 계란 유통인으로 몰고가는 듯한 공영방송의 편집 의도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에 인터뷰를 응했던 계란 유통인들은 정작 중요한 부분은 다 짤렸고, 그 중요한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부수적으로 언급했던 불량달걀 문제만 잔뜩 편집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불량달걀의 실체’라는 주제로 방송된 ‘소비자리포트’ 프로그램을 둘러싸고, 계란 유통인들과 프로그램 제작진 사이에서는 어떤 얘기들이 오갔을까.

계란유통인, 불량달걀 문제로 골머리
지난해 말 계란 유통인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던 하림의 계란유통 진출 선언이 롯데마트의 잠정 판매 중단으로 일단락되자, 이번엔 한 공영방송이 이들을 또 다시 자극해 물의를 빚고 있다. 지난 1월 17일 방송된 KBS 1TV ‘소비자리포트’에서는 ‘불량달걀의 실체’라는 주제로 먹을 수도 없는 상한 계란으로 인한 시민들의 피해사례와 함께, 그러한 계란들이 식탁에까지 올라올 수밖에 없는 유통 과정의 문제들이 낫낫이 소개됐다. 우선 제작진은 피해사례 보다는 불량 계란의 유통 과정에 더 무게를 두고서 이번 프로그램을 기획한 듯이 보였다. 실제로, 제작진은 “어렵게 만난 달걀 유통업자가 충격적 사실을 고백했다”는 멘트를 인용해 일부 계란 도매인들의 도덕성까지 간접적으로 문제시 삼았기 때문이다.
이 보다 앞서, 산란계 농가와 식당간 직거래 문제가 언급됐지만, 바로 이어 나온 유통업자의 문제로 희석될 수밖에 없었다. 또 프로그램 말미에는 미끼상품으로 사용하기 위해 계란을 헐값으로 요구하는 일부 중형 슈퍼들의 문제점도 함께 지적되기도 했지만, 결국엔 그 가격을 맞추기 위해선 유통업자들이 불량 계란을 납품할 수밖에 없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결국 ▲깨져서 이물질이 섞이거나 오염되기 쉬운 달걀을 폐기처분 하지 않고 제과점, 함바식당, 중식식당 등에 파는 행위 ▲같은 날짜에 들어온 달걀마저도 유통 기한이 다르거나 또 이미 지났음에도 유통기한을 맘대로 늘이는 행위 ▲중형 슈퍼의 행사용 공급 달걀에 불량 달걀을 섞어 파는 행위 등의 원인 제공자가 바로 계란 유통업자라는 것이다.

불량달걀 유통 주범이 “우리라고…”
이날 프로그램을 접한 계란 유통인들은 “KBS가 계란 도매상들을 완전히 죽이려고 작정을 했다”, “왜 이 시기에 불량 계란 문제를 집중 보도하는지 모르겠다”, “이젠 KBS 앞에서 시위를 해야 되나” 등의 격한 반응을 보였다. 특히 “이들은 불량 계란 근절에는 찬성을 하면서도, 모든 잘못을 자신들에게 돌린 제작진의 편집 의도에 대해선 분명 문제가 있다”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한국계란유통협회 측도 “불량계란의 유통 문제를 근절시키고자 하는 KBS 1TV ‘소비자리포트’의 기획 의도를 충분히 이해를 한 가운데, 인터뷰 협조 요청을 받아들였다”면서도, “계란유통협회장을 포함한 회원으로 있는 일부 도매상들의 인터뷰 내용 중 상당 부분이 잘려나간 후 편집됐다”라고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특히 협회에 따르면, 애당초 프로그램 제작진은 중형 슈퍼의 계란 헐값 요구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하겠다는 취지로 인터뷰 협조 요청을 했으며, 이와 함께 부수적으로 불량 계란의 문제를 언급하기 위해선 유통인들의 고백 등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는 뜻도 함께 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 김낙철 교육위원장은 “결론적으론 그렇게 방송됐지만, 만약 불량 계란의 시중 유통이 유통인들만의 문제라는 전제하에서 인터뷰 요청을 해왔다면 협회 차원에서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라며 “지난해 말 터져 나온 하림의 계란유통 진출 선언에다, 최근 발생한 고병원성 AI(조류인플루엔자)까지 이래저래 골머리를 앓던 계란 유통인들은 ‘우리들을 불량 계란 유통의 온상’으로 몰고 간 이번 방송으로 큰 타격을 받게 됐다”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일부 매장에서는 “진짜로 상한 계란이 섞였나”, “당신 매장의 계란은 믿을 수 있느냐”, “어떻게 썩은 계란을 판매할 수 있느냐” 등 항의성 문의가 있었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협회의 한 관계자는 “방송 이후 슈퍼마켓에서의 반응을 알아보기 위해 직접 현장에 가봤는데, 약 30분 동안 이런 유형의 질문을 점주에게 던지는 손님이 5명이 넘었다”며 “소비자에게 올바른 먹거리를 제공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꼭 필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어떤 경로를 통해 유통된 것인지 정확히 파악되지 않은 상황에서 아주 작은 숫자의 불량 계란이 마치 계란 전체의 문제로 부각된 것이나, 또 불량 계란의 유통의 주범이 마치 유통업자인 듯한 편집내용은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소비자리포터 피디, 충분히 설명했다지만
협회의 그러한 주장에 대해, 이번 ‘불량달걀의 실체’를 기획한 유 모 피디는 기획 의도와 취지를 충분히 설명한 가운데 인터뷰를 했는데, 이제 와서 편집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의아해했다.
유 피디는 또 “강종성 협회장과의 만남에서도 불량달걀의 유통 문제에 대해 충분히 얘기를 나눈 상황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며 “차후엔 대기업의 일등란사업 진출 이후 어려움을 받는 계란 유통인들에 대해서도 후속 취재를 하겠다고 약속한 상황에서, 이런 일이 발생해 안타깝다”라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이에 대해, 협회의 한 관계자는 “유 피디가 했던 말은 모두 사실”이라며 “하지만, 협회장이나 인터뷰에 응했던 일부 회원들이 우리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나 다름없는 불량 계란의 시중유통 문제를 직접 거론한 것은, 대기업의 잘못된 습관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일부 중형 슈퍼의 계란 헐값 요구를 집중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불량 계란의 문제점을 간접적으로 언급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 관계자는 또 “그런데 중형 슈퍼의 헐값 요구 관련 인터뷰 내용은 상당 부분이 잘려나간 채, 불량 계란 문제만 집중적으로 거론됐다”며 “이를 본 시청자라면, 열에 아홉은 산란계농장도, 중형 슈퍼도 아닌 우리 유통인들이 불량 계란을 시중에 유통시킨 주범이라고 단정할 것이 분명하다”라고 덧붙였다.

김영욱 기자 sbnews7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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