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마트들의 동네골목 상권 침탈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소비자들은 물론 해당 동네슈퍼 주인들마저 당장 내 발등의 불이 아니면 그러려니 하는 경우도 있다. 안산 신길동에 가면 이제 재고정리를 하는 한 동네슈퍼를 만날 수 있다. 점주 김 모씨는 “대형 유통재벌의 골목상권 죽이기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라며 “정치권이나 정부도 말로만 ‘골목상권 살리자’ 외치지 말고, 지금 동네슈퍼들이 어떤 고통을 받고 있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합니다”라고 울분을 토했다. 법을 비웃듯이, 대기업은 지금도 먹잇감을 찾아 골목 구석구석을 어슬렁거리는 가운데, 한 자그마한 마을에 대형마트 및 편의점에 이어, 이번에는 기업형슈퍼마켓(SSM)이나 다름없는 롯데마켓999까지 들어와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곳이 있다. 바로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신길동 1580~1660번지 지역이다.


한 동네 7개 매장
그렇게 크지 않은 규모의 대지에 사무실과 원룸이 밀집돼 있는 이 지역에도, 어김없이 창고형 대형마트인 이마트 트레이더스가 지난해 5월 들어섰다.
이곳에 입주한 한 주민은 “새롭게 조성되는 마을이다 보니 대형마트가 들어올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대기업 매장들이 5개가 잇따라 문을 열 것이라고는 꿈에도 몰랐습니다”라며 “원가이하로 상품을 처분하는 두 곳의 동네슈퍼 점주를 볼 때마다 안쓰러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라고 심정을 토로했다. 또 다른 주민도 “골목상권을 완전히 망가뜨린 대기업들이 미워서라도, 동네슈퍼를 찾고 있습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80~90% 정도의 입주율을 보이는 이 지역에는 7(슈퍼 2곳, 세븐일레븐 2곳, GS25시, CU, 롯데마켓999)개의 크고 작은 매장들이 몰려 제살깍기나 다름없는 영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슈퍼 한 곳이 문을 닫은 데 이어 나머지 2곳의 동네슈퍼도 곧 폐업할 위기에 처해 있다.


30평 슈퍼 첫 영업
지난 2010년 초 문을 연 약 30평 규모의 슈퍼는 대기업 매장들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매출이 크게 올랐지만, 이마트 트레이더스가 들어서고, 그리고 지난해 7,8월 바로 코앞에 잇따라 문을 연 세븐일레븐과 GS2시로
매출이 급감하기 시작, 급기야 지난 4월 23일 문을 연 롯데마켓999로 폐업위기에 내몰렸다.
이곳에 음료수와 상품을 공급하는 한 배송인은 “지난해 말부터 상품대금을 갚지 못하더니, 롯데마켓999가 출점한 이후부터는 주문도 크게 줄었습니다”라며 “조만간 문을 닫을 것 같다라는 소문이 배송인들 사이에 나돌고 있습니다”라고 귀띔했다. 현재 이 점주는 재고처분을 위해 마지막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10평 동네슈퍼도 폐업위기
같은 해 7월 문을 연 10평 규모의 슈퍼는 면적에 비해 하루 평균 매출이 150만 원을 웃돌 정도로 알찬 수익을 올렸지만, 지금은 앞서 언급한 슈퍼와 같은 처지에 놓였다. 특히 점주는 롯데마켓999가 들어온다는 얘기를 듣고 공정거래위, 중소기업청, 단원구청에 민원도 제기했지만, 사업조정대상도 아니며 법으로 규제할 근거가 없다는 회신만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점주는 “모든 상품 주문을 중단한 상황이며, 롯데마켓999가 들어선 이후부터는 재고처분을 위해 원가이하로 세일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울먹였다. 특히 개점당시부터 지금까지 24시간 영업을 해 왔던 이 점포는, 최근 매물로 나왔다는 소문까지 들리고 있다.

지난해 편의점 잇따라 개점
지난해 이곳은 편의점들의 춘추전국시대나 다름없었다. 5개월 만에, 4곳의 편의점이 잇따라 출점했기 . 7월에 세븐일레븐이 맨 처음 들어서더니, 8월에는 GS25시, 그리고 10월에는 CU가 입점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11월에는 세븐일레븐이 한 곳 더 개점한 것이다.
이에 따라 총 300미터(도보기준) 거리에 60미터 간격으로 편의점들이 나란히 열을 지어 있는 상황인지라, 중간에 놓인 동네슈퍼들도 타격이 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 거리에 롯데마켓999까지 가세해버린 것이다.


롯데마켓999의 꼼수
이처럼 롯데마켓999 등장은 편의점과의 힘겨운 싸움으로 지친 두 매장들에게는 ‘이제 문을 닫고 전업을 하든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나가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특히 롯데마켓999는 지역 여론을 의식해 출점 준비 과정도 철저히 비밀에 붙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로 롯데 측은 1000원 균일가 숍인 다이소가 입점할 것이라는 소문을 냈을 뿐 아니라 공사 현장에 있던 인부들조차 그렇게 믿고서 일했으며, 또 지역 주민들의 물음에도 다이소가 입점할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와 과련, 한 주민은 “공사 과정을 줄곧 지켜봤는데 마트에서 꼭 필요한 냉장고나 오픈 쇼케이스를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라며 “오픈 당일 아침에 간판을 보고서야 롯데마켓999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라고 전했다.
또 다른 주민도 “실내 공사를 할 당시만 하더라도 몰랐는데, 오픈 하루 전날인 22일 늦은 밤에 냉장고와 오픈 쇼케이스가 실내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고, 또 오픈 당일 새벽에 상품이 한꺼번에 들어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라고 밝혔다.
특히 그 주민은 철저히 비밀에 부친 채 공사를 하다가 단 하루 만에, 그것도 야밤을 틈타 모든 준비를 끝내고 기습 오픈한 것은, 지역 상인들의 나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꼼수에 불과한 것이라고 힐난했다.

김영욱 기자 sbnews7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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