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개미의 근성 앞에 대기업도 무너져 내릴 것!
서울남서부수퍼마켓협동조합 (이하, 남서부조합) 이윤근 이사장에게 대형마트와 대기업 SSM출점 저지 활동은 이제 밥먹는 일처럼 일상이 돼 버렸다. 지난 해 8월에는 화곡본동에 들어서는 SSM(홈플러스)을 막기 위해 만 7일 동안 꼬박 노숙을 하며 단식을 했다. 그리고 난생처음 삭발까지 했다. 그렇게 해서 막았던 홈플러스는 끝내 지난 7월 법망을 피해 지분 49%의 프렌차이즈 형식으로 개점을 강행하고야 말았다. |
교묘히 법망을 피해 개점하거나, 도둑개점을 하거나, 여타의 편법 개점을 일삼는 대기업의 행태가 도를 넘고 있다. 홈플러스 염창점, 화곡본동점, 신정점 등이 지분 49%의 프렌차이즈 형태로 출점했고, 롯데수퍼 방화점, 화곡점, GS 마트 방화점은 한밤에 기습 개점을 했다.
홈플러스는 염창동에서 한창 공사를 벌이더니, 사업조정이 여의치 않자 가락시장농 수산물유통이란 처음 보는 간판으로 영업을 시작했고, 롯 데수퍼 방화점도 푸른솔마트란 간판으로 개점한 사례다.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한 사람의 도둑을 열사람이 지키기 어렵다는 말이 이를 두고 한말이다. 개점 후 그들이 탐욕스레 빨아들이는 매출액만큼, 인근 골목 가게들의 매출액이 구멍난 풍선처럼 빠져나가게 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명확하다.
경쟁력만이 살 길!
지난해 11월 유통산업발전법과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이 통과된 후 남서부조합 이 이사장의 기조가 바뀌었다. 상생법, 유통법의 통과를 위해 온 몸으로 달려 왔지만, 그게 더 이상 최종적인 목표는 아니다. 법 개정으로 인해 SSM의 확산속도가 어느 정도 누그러졌다는 점만도 큰 성과라 아니할 수 없다.
이제 그는 나들가게 활성화를 통해 그 어떤 대기업 나부랭이가 들어선다 해도 끄떡없을 정도로, 골목상권을 확실히 선점하겠다는 것으로 목표를 옮겨가고 있다. 이미 남서부조합에서는 조합원사들의 경쟁력 강화 운동이 시작됐다.
남서부조합은 서울지역의 핵심 상권인 강서, 양천, 금천, 구로 지역을 관할 구역으로 하고 있다. 이 곳에는 3천여 개의 수퍼들이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있고, 그 중 지난 해에 46개의 수퍼가 나들가게로 간판을 바꾸었다. 올해는 53개의 수퍼가 나들가게로 간판을 바꿀 예정이다. 내년에는 추가로 50여 개의 나들가게 건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친절함
"SSM의 친절은 꾸며진 것에 불과한 거짓 친절이다. 우리의 친절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친절이다” 똑 같이 고객에게 인사를 해도 직원들의 인사와 주인 본인의 인사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수십년간 주민들
과 동고동락해온 수퍼 점주들이 그 친숙함을 기본으로 현대식 경영 기법을 더해 하루가 다르게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다.
SSM 직원들이 단순히 훈련된 미소를 머금으며 고객을 맞이할 때, 수퍼 상인들은 익히 알고 있는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반겨 맞이한다. 장애인 전동차가 수퍼 쪽으로 향해 오면, 문을 활짝 열어제끼며 반가운 인사를 먼저 한다. 이 외에 나들가게 점주들은 고객을 맞을 때 언제나 앞치마를 두르고 고객을 맞도록 교육받고 있다. 모든 제품에 가격표를 큼지막하게 붙여 고객들의 편의를 살피고 있으며, 현대식 진열방식으로 고객들의 구매력을 자극한다. 철 지난 상품들, 오래된 상품들은 다 빠지고, 제철의 새로운 상품들로 새로 채워졌다.
대기업 마트의 허점
무엇보다 수퍼 상인들은 문제가 생겼을 때 재량껏 해결할 수 있는 결정권을 갖고 있는 게 큰 강점이다. 농수산물 재고가 있을 때 SSM 직원들은 그냥 재고로 남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있지만, 수퍼 사장들은 재량
껏 처분할 수 있는 실행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앞선 자본력을 바탕으로 물량공세로 나오는 대기업이지만, 그렇다고 가격 면에서 다저렴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신선식품은 오히려 수퍼 식품이 더욱 신선하면서도 가격 경쟁력도 있다. 공산품도 일부 미끼 상품을 빼 놓고는 다 싼 게 아니다. 가격 면에서도 대기업 마트의 이런 허점이 있기 때문에 나들가게 점주들은 대기업 마트를 다녀오는 고객들에게 포스를 통해 자신있게 가격을 비교해 주기도 한다.
조합원들의 자신감 회복
인터뷰 도중에 가양동 쪽에서 지난해 이미 사업조정으로 개점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던 홈플러스가 그 인근 지역에 다시 공사를 시작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이 이사장은 곧 바로 사업조정 절차를 밟겠다고 답변했다. 이 게임은 끝이 없다. 죽느냐 사느냐의 생존 게임이다. 그러나 몸은 힘들지만, 보람도 크다. “대기업이 골목에 나타나면, 꼬리를 내릴 줄만 알던 조합원들이 서서히 자존심과 자신감을 회복하기 시작해 나가는 게 가장 큰 보람이다”라고 말한다.
조합일 끝나면 다시 생활인으로
조합일이 끝나면 다시 가게로 돌아가 하루동안 못다한 배달을 나가야 한다. 그는 아무리 작은 물건을 사도 고객이 원하면 배달을 해 준다. 이 또한 2만원, 3만원 기준을 달아 배달해 주는 대기업 마트와 차별화하기 위한 거다. “훨씬 인간적인 서비스,수퍼 사장들만이 가질 수 있는 강점”이라고 말한다.
서울남서부수퍼마켓협동조합 이윤근 이사장이 살아온 길...
평범한 회사원에 불과했던 그가 수퍼를 열게 된 것은 20여 년간 일을 해온 직장에서 갑자기 명퇴를 당하면서부터였다. 강서구 방화동에 5천여 만원을 투자해 20여 평의 작은 가게를 열었다. 당시 큰 아이가 중학교에 다녔고, 작은 아이가 초등 6학년이었다.
그 후 16년 여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다. 이 이사장 부부가 가게를 닫았던 것은 손에 꼽을 정도다. 장모님과 모친이 돌아가셨을 때 각 이틀씩, 그리고 아들, 딸이 결혼할 때 각 하루씩. 개점 초기에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새벽 6시에 문을 열고, 밤 12시에 문을 닫았다.
그 때는 대부분 아이들이 점심을 싸가지고 다녔기 때문에, 아침 일찍 수퍼를 찾는 주부들이 많았다. 그러면 시장에는 새벽 4시에 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런데 요즘은 좀 늦어졌다. 개점시간은 아침 9시이고 문을 닫는 것은 밤 12시로 똑 같다. 시장에 가는 것은 아침 6시.소주 한병 5백원, 두부 한모 200원이었던 시절이었는데, 현재는 소주 한병에 천원을 훌쩍 넘고, 한모에 3800원 하는 두부까지 생겼다. 그러면 당시 하루 100만원 수입이 요즘은 최소한 200만원 정도는 돼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수입은 계속 줄기만했다.
애초 가게에서 100m 안에 70평대 마트가두 개나 있었는데,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300평대 마트가 500m 이내에 들어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1Km 반경에 롯데마트, 이마트, GS 마트 등 브랜드 마트들이 쭉 들어섰다. 겹겹이 기업형 마트에 포위된 형국이다. 하지만 수년전부터 매출이 서서히 늘기 시작해 현재는 하루 200만원으로 매출이 늘었다. 기업형 마트는 물량공세이지만, 그는 죽기살기식의 처절한 생존본능으로 전쟁을 치러왔다.
강한 정신력 앞에 물질이 당해낼 수 없음을 그는 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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