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중소상인을 포함한 자영업자 비중이 매우 높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소상인은 일단 (생업전선에서) 한 번 밀려나면 새로운 생존대책을 찾기가 어려운 현실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중소상인은 수적으로 많을 뿐 아니라, 사회적 최후 안전판을 이루는 계층입니다. 따라서 중소상인을 보호하고 생존책을 마련하는 것은 사회적 안전망을 튼튼히 하는 것입니다.”
사회 지속발전 위해서도
지난 4월 4일 국회도서관 회의실에서는 중소상인과의 상생을 위해서는 유통대기업들의 판매품목을 제한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대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 ‘대형마트 중소상인 상생품목 지정제도 도입의 필요성’이라는 제목의 주제발표에 나선 양창성 변호사(‘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는 “품목지정 제도화가 많은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논의가 더욱 구체화되고 하루빨리 제도화되어 중소상인의 생존에 도움이 되어야 할 것”이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민주통합당 전순옥 의원과 진보정의당 김제남 의원, 국회 소상공인 중소기업 살리기 포럼, 중소상인살리기전국네트워크, 경제민주화국민운동본부가 주최한 이날 토론회에는 이동주 전국유통상인연합회 정책기획실장,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 겸 (사)희망살림 상임이사, 김진철 망원시장상인연합회 사무총장, 신지연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회 사무국장, 김성진 변호사(참여연대 시민경제위 부위원장) 등이 패널로 참석해 제도 지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토론회가 열린 나흘 뒤인 4월 8일 서울시는 “서울시가 지난 3월 8일 발표한 ‘대형마트·SSM 판매조정 가능품목’은 ‘서울시 유통업 상생협력 및 소상공인 지원과 유통분쟁에 관한 조례’에서 정하고 있는 ‘특정품목 판매제한 권고’ 정책을 입안하는 과정에서 진행한 연구용역 결과로서 이를 판매제한 품목으로 확정한 바 없”다며 한걸음 물러났지만, 앞서 토론회 참석자들은 소상공인 생존권뿐만이 아니라 우리사회의 지속발전을 위해서도 품목지정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품목 제한 낯선 것 아냐
주제발표를 한 양 변호사는 먼저 ‘대형마트 판매품목을 제한하는 제도는 불가능한가’를 자문한 뒤 “상생법상 중소기업청장은 대형마트 개점 전 사업조정에서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품목축소를 권고할 수 있고, 동반성장위원회도 적합업종 뿐만 아니라 적합품목을 선정하며, 서울시 조례에도 이를 권고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며 이미 시행중인 국내제도를 비춰보더라도 품목제한을 못할 이유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어 그는 “미국 일부 주에서도 식품 매장면적을 일정범위로 제한하고, 독일은 도심성과 비도심성 상품을 분류해 대형마트에서 판매를 제한하기도 한다”며 대기업이나 대형마트의 판매품목 조정 및 제한은 ‘낯선 것’이 아니라고 소개했다(표 참조).
<국의 유통업 규제 방식>
민주정책연구원 2012.8 연구보고서 ‘재벌개혁을 위한 입법과제’ 제166면 이하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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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출점규제 |
품목규제 |
영업 시간 규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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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
▲대형점과 중소매점의 경쟁 조정 관점에서 도시계획이나 토지이용 규제와 연동(1996년 라파인 법) ▲300㎡이상은 허가대상으로 규제 |
▲노동법에 의거 영업시간 규정 ▲주중은 22시까지 가능하나 일요일은 원칙적으로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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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
▲지역개발 및 도시계획에 의거 규제(연방건설법) ▲연면적 1,200㎡, 전용 800㎡ 이상의 소매시설은 허가 받도록 ▲주거지역에서는 대형점 건축 못함(연방건축 이용령) ▲사전영향평가 결과, 인근 소규모 상가들이 기존 매출 10% 이상 타격을 받을 경우 대형점 진출 못함(10% 가이드라인) |
▲도심성 상품과 비도심성 상품 품목을 분류해 운영 |
▲유통업체 종업원 휴식권 및 가정생활 보호를 위해 영업시간 제한 ▲모든 상점 평일 토요일 6시~20시까지만 영업, 일요일 휴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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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
▲도시계획상 규제 통해 출점 규제. 허가제. |
▲연면적 280㎡ 이상 점포는 일요일 휴무, 기타는 일요일 여업 총 6시간 이내로. 위반시 5천 파운드 벌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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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
▲도시지역 비도시지역 매장면적에 따라 소매시설 허가제(패드락 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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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
▲중규모 소매점은 시의 허가, 대규모 소매점은 주정부 허가 사항(D.L 법). |
▲일, 공휴일 영업 금지. 주중 9~22(하절기23)시까지만 영업 가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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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
▲매장면적 15% 이상을 식품/비과세 상품 매장으로 사용못함(워싱턴DC 시의회조례) |
▲종교를 배경으로 지방자치단체 수준의 ‘일요일 휴점법’ 시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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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
▲대규모 점포 출점시 생활환경문제(소음, 교통, 폐기물)로 제한 가능(대규모 점포 입지법) ▲1,000㎡ 이상 점포 개설 시 신고 ▲도시게획법상 지구 성격에 따라 출점 제한 |
▲소음방지법상 야간소음 방지를 위해 영업시간 제한 가능 |
“법적으로 허용될 수 없는가”
2009년 대형마트 개설등록허가제, 판매품목 제한, 영업시간 제한 등의 내용을 담은 유통법 개정안이 발의됐을 때 당시 지식경제부는 ‘이 개정안이 WTO서비스협정을 위반할 소지가 있고, 우리 헌법상 대형마트 사업자의 직업선택의 자유, 소비자의 일반선택의 자유, 재산권 과도제한 등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며 사실상 반대입장임을 밝혔다.
양 변호사는 이같은 입장들을 ‘품목제한은 허용될 수 있는가’라는 화두로 집약한 뒤 각 항목에 대해서 지식경제부의 입장과 대비되는 ‘민변’의 법적 견해를 조목조목 밝히며 품목제한이 법적으로도 하자가 없음을 설명했다.
또 그는 ‘현재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제한을 하고 있는데, 거기다가 품목제한까지 해야하느냐’는 일부 지적에 대해서도 “영업시간 제한 및 의무휴업은 일부 효과가 있으나 제도적으로 정교하지 못하다”며 “반면, 품목제한은 중소상인들에게 매우 직접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중소상인들이 취급하는 품목은 단순합니다. 콩나물을 팔면서 생선도 파는 경우는 별로 없지요. 그래서 대형마트 품목제한은 해당품목을 판매하는 상인들에게는 영향이 클 수 밖에 없습니다. 대형마트의 성장이 중소상인들의 위기를 바탕으로 이뤄진 것이고, 그나마 받아들여질 만한 방안이 품목제한인데다, 이 제한이 중소상인 보호에 도움 되기에 꼭 필요합니다.”
납품업체 소비자 고려도 함께
이어 양 변호사는 판매품목을 제한하면 대형마트 납품업체들이 어려워진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제한품목 선정 시 납품업자에 대한 고려는 있어야 하지만, 식료품 위주의 생필품은 대형마트에서 판매제한 하더라도 전체 소비가 줄어들 우려는 없다”며 “어디서 파느냐에 따라 소비자 구매여부가 결정되고 그 결과 소비량에 큰 변화를 주는 품목이라면 제한품목으로 선정하는 데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중소상인 보호를 위해서는 규제와 더불어 지원육성도 이뤄져야 하는데, 지원사업이 자리를 잡으면 납품업체들의 공급처도 다양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밖에 소비자선택권을 두고도 양 변호사는 “한곳에서 장을 다 보려는 경우에는 당장은 불편할 수도 있지만, 판매제한과 함께 구입처도 다양화된다면 소비자 불편은 완화될 수 있다”며 “대형마트 규제로 시장이 변하면 소비패턴도 변할 것이고, 그러면 장기적으로는 현재 우려되는 불편도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더욱이 그는 “제도 도입으로 다양한 법익이 충돌할 경우는 각 법익이 일정한 양보와 타협이 필요하다”며 “결국 소비자 선택권은 중소상인의 생존권 및 시장의 균형발전 등 타 법익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가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단언했다.
전인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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