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 제작자들은 또 간판정비사업이 시행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지역성을 고려하지 않은 틀에 박힌 획일적인 디자인이 전국을 똑같은 모양의 거대한 간판 왕국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특히 해당 업소 대표의 입장은 외면한 채 밀어붙이기식 간판정비사업으로 일관한다면 주민들의 반발과 원성만 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와 관련, 협회의 한 관계자는 “도시 문화의 업그레이드를 통한 국가경쟁력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시작된 간판정비사업이 지금처럼 지속된다면, 불가피하게 참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지속적으로 발생할 것”이라며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모델과 프로세스의 개발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간판정비 좋지만, 지역 업자는 고사위기
간판정비사업의 문제는 또 있다. 간판정비사업의 옳고 그름을 떠나 사업을 진행하는 해당 지역에서는 일감 감소로 도산하는 업자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시도에서 이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김종필 한국옥외광고협중앙회장의 지적이다.
이와 관련, 김 회장은 “간판정비사업을 시작하기 이전에 영세 간판업자의 몰락 등 그로 인해 예상되는 문제점을 사전에 검토하는 작업이 먼저 선행되었어야 했다”며 “전남 곡성군처럼 규모가 작은 지역의 경우, 공개입찰로 선정된 한 업체를 제외한 나머지 업체는 손을 놀리다시피 하는 상황에 놓일 뿐만 아니라 사업이 끝나는 시점이 되면 모두가 폐업위기에 내몰린다”라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또 “들쑥날쑥한 간판을 깔끔하게 정리해 시각적인 이미지를 개선하겠다는 정부시책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금속창호 설비 자격증을 지닌 외지 업체에게 모든 물량을 몰아주다시피 한 현재의 공개입찰로 지역의 수많은 영세 간판업자들이 문을 닫는 지경에 처했다”라고 주장했다.
곡성군 간판업자 한달 100만원도 못 벌어
실제로 지난 2009년부터 간판정비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곡성군도 상황이 비슷하긴 매 한가지다. 곡성군에는 현재 10개 업체가 있지만, 재정상태가 견실한 2~3개 업체를 제외한 대다수 간판업자들은 월 수익 100만원도 거두지 못할 정도로 물량이 씨가 말랐다. 바로 간판정비사업 때문이다.
최명순 곡성군지부장은 “이제는 지역 업체들도 만성이 됐는지 현 상황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회원도 없다”며 “쥐가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하지만 여기선 그런 기대조차 할 수 없다. 이미 체념 상태나 다름없다”라고 말했다.
최 지부장은 또 “공개입찰에 참여할 여력이 되는 업체가 없을 뿐더러 선정된 외지 업체가 시공부터 A/S까지 완전 싹쓸이하기 때문에 지역 업체로선 그야 말로 벼랑끝 위기나 마찬가지다”며 “그들에게 상생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최소한 사후관리에는 지역 업체가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A/S 빵점 … 지역 업체 참여 고려할 때
곡성군은 지금까지 3차례의 간판정비사업이 진행됐으며, 조만간 4번째 사업 시행을 위한 공개입찰에 들어갈 것으로 전해졌지만, 여전히 문제가 남아 있다. 시공업체가 사후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불량 재질 사용, 조기 시공에 따른 문제점이 곳곳에서 발생되고 있다는 것이 최 지부장의 주장이다. 최 지부장은 “시공업체들이 공사를 서둘러 끝내고 돌아가기에 바빴기에 어쩌면 하자가 당연한 결과였다”며 “하지만 그들은 하자보수도 해주지 않는 상황이라 정비 대상 업체들이 우리 회원사들에게 수리를 요청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시공사의 A/S 문제는 곡성군청에서도 인정하는 상황이다. 군의 한 관계자는 “문제가 발생될 경우 지역 업체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이 사실”이라며 “예산 확보도 없이 시행된 결과”라고 잘라 말했다.
특히 그 관계자는 “애초에 예산을 충분히 확보한 상태에서 설계와 시공을 턴기식으로 발주해, 컨소시엄 형태로 지역 업체가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다면 지금과 같은 A/S 문제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설계와 디자인을 먼저 발주한 후 거기에 맞춰 시공을 따로 하다 보니 최저 공개입찰에서 규모가 큰 업체가 선정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라고 지적했다.
김영욱 기자 sbnews777@naver.com
“지역업체 소외 심각”
김종필 한국옥외광고협회중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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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금속창호 등 전문건설업자로 제한한 입찰자격 조건은 옥외광고사들의 설자리를 더욱 좁게 만들고 있다. 옥외광고 사업자 대부분이 영세 소상공인 점을 감안한다면, 일정 규모 이상의 업체들에게만 일감이 집중되는 현행 공개입찰은 반드시 재고되어야 한다. 현행 광고법 ‘제4조의2, 영 제26조(자율정비시범구역), 영 제27조(주민협의의 운영)’에도 ‘간판정비시범구역의 정비 시 옥외광고사업자와 주민들이 상호 협력하여 자율적으로 정비할 것’을 명시하고 있지만, 지자체에서는 행정편의를 위해 법 규정도 무시한 채 공개입찰만 고집하고 있다.
최근 서울시가 영세 옥외광고업자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옥외광고사들이 지역 내 간판정비사업의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근거 법령을 마련해줘 그나마 다행이다. 이번 시행령 제정으로 관내 옥외광고 단체와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간판정비개선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터준 서울시가 모델이 되어 전국적으로 확산되길 바란다.
한국옥외광고협회중앙회 산하 17개 시도협회 7천여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간판정비개선사업의 존폐여부를 묻는 최근 설문조사에서도 99.9%가 반대의사를 표명한 사실은 기존 관 주도의 간판정비개선사업이 한계에 왔다는 것을 증명하는 좋은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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