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림동 중앙시장에서 6년째 화장품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연아(41. 사진)씨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풍선의 바람 빠지듯 매출이 계속 줄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원래 거제도 출신이다. 그리고 23세 처녀 때부터 화장품점을 운영해본 베테랑 뷰티 매니저다.
서울로 입성해 화장품 회사에 다니면서 좀더 전문적으로 화장품업계를 배우기도 했다. 그러다 결혼과 함께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를 낳은 후, 현재의 매장을 열었다. 10여 년 된 화장품 가게를 인수했는데, 권리금 부담이 그리 크지는 않았다. 시장은 침체 될 대로 침체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걸어서 불과 20분도 안 되는 거리에 이마트가 들어서면서 생긴 여파였다.
또한 화장품 업계가 대기업 브랜드만 취급하는 전문 가맹점 쪽으로 급격히 쏠려가면서, 동네 화장품 가게들 매출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상황 때문이기도 했다.
처음엔 운이 좋아서
하지만 처음에 김씨는 운이 좋았다. 개업 당시만 해도 최악이었던 시장통이 웬 일인지 서서히 활기를 띄어갔다. 바로 이주민들 때문이었다. 중국인을 중심으로 한 이주민들이 하나 둘씩 이주해오기 시작하더니, 어느 덧 그 숫자가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중앙시장 거리는 서서히 이주민들의 거리로 탈바꿈돼 갔다.
막 이주해 온 사람들은 소비 성향이 까다롭지 않았다. 화장품 구입에 있어서도 TV에서 광고되는 대기업 브랜드를 주로 선호하던 내국인들과는 양상이 크게 달랐다. 거기다 김씨의 경우 화장품에 관한한 상당한 노하우를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시장 거리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들어서게 된 10여 곳의 화장품 가게들에 비해 그의 경우 매출이 과히 떨어지지 않았다.
베테랑 뷰티매니저도 손들어야
그러나 이러한 호시절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매출이 정점을 그렸다가 내리막길을 걷게 된 것은 3년여 전부터다. 서서히 이주민들의 기호가 까다로워졌다. 이들은 차츰 국내 소비생활의 흐름을 타기 시작했다. 이들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가까운 거리에 이마트같은 대형마트들이 즐비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화장품도 TV 광고에 나오는 대기업 화장품들을 선호하게 됐다. 아울러 이들은 가까운 동네 화장품점에서는 그러한 대기업 상품들을 구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됐다. 당연히 이들은 대로변 목 좋은 곳이면 어김없이 들어서 있는 대기업 프랜차이즈 화장품점으로 걸음을 옮겨가게 됐다.
현재 김씨의 경우 고점 대비 30-40% 정도 매출이 빠져나간 상황이다. 건물세 등 지출은 고정돼 있기 때문에 매출이 이정도 빠졌다는 것은 참으로 심각하다. 이게 좀더 악화되면 존폐를 고민하지 않을 수밖에 없게 된다.
대기업의 술수에 설화수, 헤라, 아이오페, 라네즈, 마몽드...
남성들마저 가슴을 떨리게 만드는 아모레의 유명 짜한 화장품들, 이 화장품들은 언제부턴가 동네 화장품점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그 이면에는 공룡 화장품 대기업으로 성장한 아모레퍼시픽의 영업 전략이 숨어있었다.
아모레는 진즉부터 생산뿐 아니라 유통까지 확실히 장악한 상태다. 이를 기반으로 아모레는 서서히 자신들 위주로 유통시장을 재편하게 된다. 아모레는 2005년부터 느슨한 수준의 프랜차이즈를 모집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전체 매출 중 80% 정도 자사 브랜드를 팔게 되면, 포스 및 시설, 판매를 담당하는 아가씨를 지원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그런데 그 때까지만 해도 그 이면에 아모레의 교묘한 전략이 숨어있다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단지 아모레의 파격적인 물량지원은 당시 화장품 판매점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것이었다. 너도 나도 아모레의 물량 지원을 받아들이게 됐고, 아모레 가맹점들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코를 꿰인 가맹점들
하지만 아모레의 숨은 의도가 드러나게 되는 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어느 정도 가맹점을 확보하게 되자 아모레는 전격적으로 가맹점 전략을 바꾸게 된다. 그 동안 느슨한 형태로 가맹점 관계를 갖어 오던 가맹점들에 대해, 아모레는 간판을 ‘아리따움’으로 통일시킬 것을 요구했고, 화장품 구성도 순전히 아모레 화장품들로만 채우도록 했다.
이게 2009년부터였다. 문제는 기 가입된 가맹점 중 어느 누구도 이를 거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데에 있다. 그 고리는 아모레 측에서 제공한 포스 시스템이었다. 포스 시스템을 통해 고객 정보를 비롯한 모든 정보를 이미 아모레 측은 다 훤히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것은 ‘아리따움’으로의 전환을 거부할 지 모르는 가맹점들을 위해 아모레 측이 준비해온 결정적인 카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치없는 가맹점들 중 일부는 아모레 측의 이러한 요구를 거절하기도 했다. 기존처럼 종합 화장품 가게로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표명하곤 했던 것이다.
악명높은 아모레
이럴 때면 아모레 측은 그 동안 준비해온 비장의 카드를 내밀었다. “이미 입수한 고객정보를 갖고, 바로 앞에 ‘아리따움’ 가맹점을 내겠다”라는 카드 말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아모레가 거느리게 된 가맹점들이 현재 1,200여 개나 된다. 이 규모는 단순히 숫자 상의 규모를 초월한다. 목이 좋은 데는 이들이 대부분 꿰차고 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이미 목 좋은 데를 차지하고 있었던 동네 화장품 가게들 중 다수가 아모레의 재물이 되기도 했다.
아모레 측에서 느닷없이 다가와 양자택일을 강요한다. “‘아리따움’으로 간판을 바꿔 달던가, 아니면 그 앞에 바로 ‘아리따움’ 매장이 들어서는 것을 보게 되든가”라고 물어오는 것이다. 그리고 일반 화장품 가게에는 자사에서 만든 화장품들을 일체 공급하지 않았다. 이런 방식은 제과점 업계의 파리바게뜨가 골목 빵집을 접수해 들어온 과정과 똑 같다. 그래서 화장품 업계에서는 아모레를 화장품업계의 파리바게뜨라고 한다.
타들어가는 가슴
김씨는 도처에서 폐업을 하는 화장품 가게들을 보면 남 일 같지 않다. 다행이 아직 이 곳 거리에는 아모레 계열의 프랜차이즈가 들어서지 않았다. 하지만 고객들은 계속 줄고 있다. “TV에 난 그 화장품 주세요” 했을 때 “그 제품은 없는데요” 하는 순간 그 고객은 다시는 이 쪽으로 오지 않게 돼 있다. 계속 매장은 악순환이다. 매출이 줄게 되니 화장품 매입도 줄어든다. 상품군이 협소해지니 고객들은 더 줄게 마련이다. 이와 함께 중소규모로 화장품을 제조해온 업체들도 동반 침체되고 있다.
그리고 이들로부터 물건을 받아 소매점에 납품하는 대리점들도 줄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수년만 더 지속되면 중소 제조업체는 물론, 대리점, 판매점이 줄줄이 몰락을 길을 걷게 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엄동설한에 김씨의 가슴이 더욱 더 새카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정이훈 기자 sbnews7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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