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에 발견한 양심가게’
사장님 지난주 11월 26일 월요일 아침에
맛나게 먹고 간 남자들 4명을 기억하시나요?
전 사장님 같은 분 처음 봤습니다.
첫 마디가 “ 안팔아요... 재고가 없어요”
헉....
알고보니 어제 만든 빵이라서
사장님이 안판다고 하신 거였죠.
저흰 진짜 맛있게 먹고 돈을 막 드리려는데,
한사코 안 받으시고...
장인정신이라고 하죠.
진짜 장인정신을 가지신 분을 오랜만에 본거 같습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시고 번창하시길 바랍니다.
<12/3, ‘감귤찐빵’ 홈페이지에서>
제주 서귀포시 천지연 폭포 주차장 내에 위치하고 있는 감귤찐빵(대표 박병인)집, 이 빵집은 주인의 후덕한 인심과 빵맛, 그 날 그 날 만든 빵만을 판다는 장인 정신으로 점차 입소문을 타고 있는 곳이다.
특히 제주 감귤을 소재로 만든 빵이어서 이미 여러 번 방송을 타기도 했다. 07년 7월 JIBS(제주방송) ‘혼저 옵서예’에 처음 소개된데 이어, MBC ‘TV 전국기행’, SBS ‘네트워크현장, 고향이 보인다’, KBS ‘6시 내 고향’ 등에도 차례차례 소개됐다.
이 곳 빵은 감귤 특유의 오렌지 빛과 향을 내며, 새콤달콤한 맛을 낸다. 단팥의 텁텁한 맛을 귤의 새콤한 맛이 감싸 넘어가기 때문에 목 넘김이 부드럽고, 찐빵을 먹고 난 뒷맛도 깔끔하다. “먹을 때 씹히는 감귤 알맹이 맛이 특별한 묘미를 준다”는 평이다. 고객들은 “색깔과 향, 맛 모든 게 특산물인 귤을 소재로 했다는 면에서 더욱 소중한 느낌을 준다”라고 말하고 있다.
같은 건물에 파리바게트 개점
하지만 머지않아 우리는 이러한 감귤 찐빵집을 서귀포에서 더 이상 보지 못하게 될 지 모른다. 감귤찐빵집이 들어서 있는 건물 내에 재벌 빵집인 파리바게트가 27일 오픈한 탓이다. 규모도 50평형 대로 20평에 불과한 감귤찐빵집과 비교가 안된다.
지난 5일 서울에서 열린 대한제과협회 주최 ‘재벌빵집 규탄 기자회견’에서 감귤찐빵집 대표 박병인씨는 같은 건물 벽 하나 사이를 두고 일어나고 있는 이러한 사실을 전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비슷한 규모와 브랜드를 갖고 경쟁을 한다면 우린 절대로 뒤떨어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라고 말을 뗀 뒤, “하지만 재벌들의 가공할 브랜드의 힘과 자본력, 거기에 각종 포인트제까지 가세한 영업력 앞에서는 속절없이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을 뿐”이라며, “이제 나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40여년의 빵 인생
그 동안 박씨는 천연의 감귤 빵맛을 내기 위해 수없이 많은 밤을 씨름해 왔다. 17세부터 서울에서 빵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87년 경 제주도로 옮겨와 역시 빵 기술자로 일했다. 열심히 기술을 쌓아 2000년 첫 개점을 했지만 6년 만에 간판을 내리고 말았다. 기술은 있었으나, 장사는 체질이 아니었다. 너무 정직한 게 탈이었다. 자신이 만든 빵이라도 맛이 없으면 팔지를 못하는 성격이었다.
현재의 자리에서 개점을 하면서부터는 전략을 새로이 짰다. 어차피 영업력은 따라갈 수 없으니, 진솔하게 자신만의 빵을 만들어서 서서히 입소문으로 빵을 팔자라는 전략이었다. 가게 규모도 전보다 대폭 줄여 비용을 줄이면서, 장기적으로 살아남을 계획을 세웠다. 4천만원을 융자내 보증금 천 만원에 1년 가게세 천 만원인 점포를 임대했다.
개점 준비차 제주 전역을 돌면서 조사한 결과 아직껏 감귤 빵을 파는 곳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감귤을 소재로 한 빵을 개발하기 위해 달려 들었다. 문제는 감귤을 섞는 비율이었다. 수없이 실험을 했지만, 아무리 해도 원하는 빵 맛이 나질 않았다. 개점을 하고도 첫 3년여 간은 집에서 도리어 돈을 가져오곤 했다. 임대료에 재료값, 각종 비용이 장난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때는 희망이 있었다.
가족들, 질릴 정도로 감귤빵 시식
지금도 아이들과 부인은 감귤빵이라면 기겁을 한다. 실험을 하면서 하도 빵맛을 봐 달랬더니, 질려버린 것이다. 그러면서도 가업이라며 가족들도 격려해 주었고, 부인은 다른 일을 하며 가계를 운영해 왔다.
어느 정도 빵 맛이 나오기 시작한 지 이제 3년여, 서서히 소문이 일기 시작하는 단계다. 하지만 제주 사람들 사이에서는 감귤이라는 소재는 더 이상 특이한 소재감이 아니다. 워낙 감귤을 소재로 하는 식품들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요한 타깃은 제주를 찾는 관광객이 주요한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그러기 때문에 바로 옆에 들어선 파리바게뜨가 치명적이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 외래 관광객들은 동네의 이름 없는 빵보다는 선뜻 눈에 띄는 낯익은 빵집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양육강식의 세상
혼신을 다해 온 가족이 생존을 걸고 달려온 세월이 무위로 끝나버리게 되는 것인가. 박씨는 바로 한 건물에 파리바게트가 들어선다는 말을 들었을 때, ‘설마 설마’했다. 아무리 시장에 서 좌판을 벌린다 해도 인근 장사하는 사람들의 이목을 따지는 법이다.
한정된 시장에서 같은 아이템이 들어서면 결국 손님이 양분되기 때문에 잘못하면 양쪽 다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공식이 통용되지 않을 수 있다. 재벌들과 맞붙으면, 양상이 달라지는 것이다. 재벌들이 가공할 자본력과 브랜드 파워를 내세워 밀고 들어오면 골목 상권은 백전백패할 수 밖에 없다. 박씨처럼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말이다.
파리바게트가 바로 감귤빵집 건물에 버젓이 들어서는 것은 누가 봐도 분명하다. 자신들이 실패할 리는 없고, 옆 가게가 죽든 말든, 옆 가게의 가족에게 어떤 사연이 있던, 나만 살면 된다는 지극히 반 사회적인 의도가 깔려 있는 것이다.
박씨는 제주도와 도 인권위 등 국가 기관을 통해 청원도 해 봤다. 하지만 법적으로야 이를 막을 근거가 없다는 대답 뿐이었다. 세 밑 박씨의 40년 빵 인생이 대한민국 한 켠에서 시들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장영환 기자 sbnews7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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