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뉴얼 갖추고, 젊은 후예 양성, 기술 전승”

“작업환경 개선 위한 공동작업장 절실, 정부 지원 필요”

본래 구두를 비롯한 수제화 제조는 서울 염천교와 명동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비싼 임대료 등으로 지하철 2호선 성수역 인근 지역으로 대거 옮겨오면서 수제화 전문 거리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현재 약 500여 개가 넘는 수제화 관련 업체들이 모여있는 이곳은 이제 명실상부한 국내 수제화의 1번지로 위상을 굳히고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이곳 수제화거리가 일반 소비자들에게 널리 알려지기까진 우여곡절이 겹친 오랜 노력이 있었다. 박동희 (사)성동제화협회장은 그 중심 인물이기도 하다.

2년 여 동안 전국 돌며 노점상, 대중에게 홍보
박 회장은 “제가 지난 2011년 제 3대 협회장으로 취임할 때만 해도 오늘날 만큼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고 돌이켰다. 이에 박 회장은 비상한 수단을 동원했다.
“성수동 수제화를 알리기 위해 전국을 돌면서 노점을 했다”면서 “영등포역이나 청량리역 등 주요 거점 지역이나 고속도로 휴게소를 돌아다니면서 일반인들에게 이곳을 PR하는데 전력을 쏟았다”고 했다.
박 회장은 “회장으로 취임하던 무렵 저희 회사의 연 매출이 35억을 하던 때”였다면서 “아무리 협회 일이라고는 하지만 길거리에서 그렇게 하다 보니 처음에는 창피해서 큰 목소리가 안나왔다.”고 당시를 돌이켰다. 그러나 2년여 동안 돌아다니며 그런 활동을 하다 보니 서서히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정적인 계기가 생겼다.
“그렇게 2년째 돌아다니는데 롯데 백화점에서 연락이 왔어요. 처음으로 잠실 롯데 트레이드 광장에서 수제화 판매행사를 갖게 된 겁니다. 1주일 동안 열던 행사 끝에 2억 천여만 원 어치를 판매할 수 있었어요. ‘빅히트’를 친 것이죠”
당시 현장엔 카드 단말기가 한 대뿐이어서, 다시 한 대를 더 갖다놓았으나 줄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구두 한 켤레 가격이 공장도 가격으로 8~9만원 대였는데 2억원 어치가 넘게 팔았으니, 엄청난 사람들이 구두를 사려고 몰려든 것”이라고 했다.
박 회장은 “그때 구두를 사려는 인파가 긴 줄을 이루고 있는 모습을 각 방송사가 뉴스 등을 통해 화면에 내보내면서 순식간에 대중적 인지도가 높아졌다.”면서 “그때부터 성수동 수제화 골목이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설득, 현재의 수제화 거리 조성
서울시와 박원순 시장의 지원도 주효했다. 마침 박 시장이 이곳을 방문, “시에서 뭘 도와주면 좋겠냐”고 물었다. 그리곤 성수역 상가에 입점을 권유했다. 그러나 각기 15평 정도의 가게의 월 임대료만 1천만원이 넘었다. 이에 박 회장은 박 시장의 권유 대신 다른 대안을 제안했다.
각종 쓰레기로 지저분한 환경을 보이고 있는 성수역 아래쪽 기둥 사이 사이에 부스를 만드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박 시장은 처음엔 “노상이어서 곤란하다”고 했다.
박 회장은 “그렇다면 시 조례를 개정하면 되지않느냐고 제안했고, 결국 이 같은 의견이 받아들여져 현재의 ‘성수수제화거리’가 만들어 질 수 있었다”고 들려줬다.
박 회장은 제화업계가 겪고있는 현실적 어려움도 여럿 지적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젊은이들이 이 일(수제화 제작)을 배우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우리 업계에서 가장 젊은 층이라고 해봐야 50대 후반입니다. 수입은 어느 정도 보장이 되는데 작업 환경이 열악하죠. 본드 냄새에다 각종 화학약품 냄새가 진동하다보니, 젊은 사람들이 이 업종을 기피하고 있어요. 큰 문제입니다.”
그는 또 수제화 산업의 체계화도 시급하다고 했다. “우리나라에는 제화와 관련한 전문 서적이 없고, 일본 책이나 독일 책을 가져다가 배우고 있다”면서 “부산에 가면 운동화(제작)에 대한 매뉴얼이 있다곤 하지만, 수제화 제조와 관련한 매뉴얼은 국내 어디에 가도 없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침대는 과학’이라는 시중의 광고 카피를 새삼 환기했다. 구두 제조 또한 체계적이고 숙련된 기술, 그리고 과학적 지식이 절실하다는 주장이다.
그는 “구두 한 켤레를 만들기 위해선 먼저 패턴을 떠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선 발이 움직이는 몇 밀리미터(mm)의 좌우 공차까지 계산하여, 편차가 집중되지 않도록 하는 과학적 정밀함이 필요하다”고 예를 들었다. “그런 만큼 이 같은 고도의 기술이 후대에도 이어지도록 하는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선 다양한 노력과 대안이 필요하다. 협회는 앞으로 그런 노력의 선두에 서겠다는 각오다.
“우선 공동으로 작업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합니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서라도 공동작업장을 만들고 작업환경을 개선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전통 수제화의 맥이 후대에게 이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현장-성수 수제화거리는…>

“국내 최고 품질의 구두를 저렴하게 공급”
 대기업 OEM 등 부자재 거리, “고급 소재로 명품 제작”

지하철 2호선 성수역 인근에 위치한 ‘성수동 수제화거리’는 명실상부한 국내 수제화 산업의 1번지다. 정확하진 않지만 성수역을 중심으로 대략 3만여㎡ 구역 안에 500여곳의 수제화 관련 업체들이 모여있다.
본래 국내 수제화는 서울 염천교, 명동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비싼 땅값과 임대료 부담 때문에 1990년대 이후 수제화 매장들이 성수동 일대로 대거 이동하면서 이 거리가 생겨났다.
성수 수제화거리에선 등산화 신사화 정장화 여성화 캐주얼 스넥크즈(구두이면서도 운동화 느낌이 나는 신발) 등 수제화라면 없는게 없다. 소가죽, 양가죽, 물소가죽, 악어피, 뱀피, 장어피 등 소재도 무척이나 다양하다.
수제화거리 조성과 홍보에 앞장섰던 박동희 (사)성동제화협회장은 “수제화거리의 제품은 일단 튼튼하다”면서 “기계로 대량으로 만들어낸 구두는 가죽이 금방 헤어지고 접착은 물론이고 실밥도 금방 뜯어져 나간다”며 차이점을 설명했다.

소재, 제작공정에서부터 ‘차별화’
이곳에 있는 부자재 거리도 성수동 수제화거리의 제품이 저렴한 가격으로 좋은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다. 가죽부터 힐, 액세서리 등 모든 것이 몰려있어 디자인부터 완제품에 이르기까지 원스톱으로 이뤄질 수 있다.
박 회장은 “브랜드 제화업체의 OEM 생산을 하는 공장도 이곳(성수동)에 모여 있어 부자재를 좋은 것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액세서리나 발바닥에 와 닿는 쿠션감부터가 다른 곳의 제품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특히 소재나 제작 공정에서부터 차별화를 기하고 있다. 이곳에선 흔히 악어가죽이나 타조가죽과 같은 고급 소재를 쓰곤 한다. 악어가죽의 경우 한 마리분이 80만원 남짓한다. 구두 한 켤레를 만들기 위해 그런 악어가죽 두 마리분을 사용한다. 또 한 마리에 100만원 남짓하는 타조가죽 한 마리분으로 구두 한 켤레를 만든다. “악어가죽과 타조가죽으로 만든 구두는 고급스럽고 질기면서 오래 간다”는게 박 회장의 얘기다.
성수동 수제화 거리엔 단순히 신발만 있는게 아니다. 다양한 볼거리들도 있어, 서울 시내에서 대표적인 ‘가볼만한 곳’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슈스팟, 부자재 거리, 구두박물관 등 테마별로 즐길 수 있다.
슈스팟은 2014년 서울시와 성동구청이 함께 만든 지하철 역사 내의 작은 구두 박물관이다. 역사 내 통로를 따라 걷다 보면 우리나라 수제화의 역사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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