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을 주관하는 동반성장위는 현재 출범 1년 반 정도를 지냈다. 초대 정운찬 위원장이 지난 3월 29일 전격사퇴를 하며 동반위 제1기를 마무리했고, 지난 4월 24일 제2대 유장희 위원장이 임명됐다. 지난 1년 반의 적합업종 선정 과정을 한번 되돌아보자.
정부는 2010년 9월 29일 대쪾중소기업 동반성장 추진대책을 마련하고, 12월 13일 동반성장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동반위는 대기업의 동반성장지수 산정과 중소기업 적합업종·품목을 선정을 동반성장을 위한 두 가지 중요한 수단으로 삼고 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ㆍ품목 선정은 중소기업 고유업종에 대한 대기업의 참여를 막음으로써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다.
지난해 동반위는 제조업에서 234개 품목을 신청·접수 받아 실태조사, 분석 및 조정협의를 거쳐 제1차 16개, 제2차 25개, 제3차 41개 품목 등 총 82개 품목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선정했다. 나머지 149개 품목은 반려(철회)됐고, 2개 품목이 판단유보, 1개 품목이 실무위 위임품목으로 정해져 실제 선정된 품목은 79개에 이른다.
지난해 4월 선정 본격 시동
출범에 이어 동반성장위는 지난해 4월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 가이드라인(안)을 발표하며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이어 5월에는 중소기업 적합업종·품목 신청을 접수하고(신청 현황 표), 신청 품목에 대해 실태조사를 실시한 후, 대기업 대표 9명, 중소기업 대표 9명, 공익위원 6명으로 구성된 실무위원회에 상정해 논의를 거쳐 지난해 9월 27일 1차로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 품목을 발표했다. 이어 11월 4일, 12월 13일 등 총 3차에 걸쳐 적합업종 품목을 최종적으로 확정짓고, 각각에 해당하는 권고사항을 발표했다.
1차 발표 당시 ‘사업이양’, ‘확장자제’, ‘진입자제’로 3분해 발표했던 것과 달리 2차부터는 ‘일부 사업철수’, ‘사업축소’, ‘확장자제’, ‘진입 및 확장자제’ 등으로 구분해 발표했지만, 정확한 세부권고 사항에 대해서는 아직 혼란스런 상황이다.
참고로, 1차 선정 16개 품목의 권고사항을 보면, 세탁비누 1개 품목은 사업이양(사업철수), 골판지상자(확장자제 포함), 플라스틱 금형(확장자제 포함), 프레스 금형(확장자제 포함), 자동차재제조부품 등 4개 품목은 진입자제, 순대(사업축소), 청국장, 고추장(사업축소), 간장(사업축소), 된장(사업축소), 막걸리(내수진입자제), 떡, 기타인쇄물, 재생타이어(사업축소), 절연전선, 아스콘 등 11개 품목에 대해서는 확장자제가 각각 권고됐다.
동일한 권고사항이라도 품목별로 구체적 내용은 조금씩 다르다. 골판지상자와 금형은 둘 다 진입자제 권고를 받았지만, 골판지상자는 대기업의 신규 진입과 사업 확장이 모두 금지되는 반면, 금형은 범용기술로 만들거나 국내 판매용 시장에 대해서만 진입이 금지된다. 대신, 제품 개발용 신금형기술이나 핵심분야 경쟁력 유지를 위한 자가금형은 대기업에도 허용된다.
확장자제 권고의 경우도, 막걸리는 내수는 중소기업이, 수출은 대기업이 각각 전념하도록 했고, 장류의 경우 대기업은 정부 조달시장 진입이 자제되고, 저가제품 시장에서 철수해야 한다. 재생타이어의 경우 대기업의 직접 생산을 금지하고 중소기업 OEM(주문자상표부착) 방식만 가능케 했다.
가이드라인 확정도 난항
적합업종 선정에 앞서 가이드라인 결정과정도 순탄치는 않았다. 동반위는 공청회등을 거쳐 지난해 7월 중소기업 적합 업종 및 품목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가이드라인은 해당 업종의 중소기업체 숫자, 대기업과의 경쟁력, 품질·위생·안전·사후관리 측면에서 소비자 만족도등 선정 기준을 적시했다. 기술경쟁력 확보를 위해 매년 매출액의 일정 비율 이상을 연구·개발비로 투자하거나 일정 기간 보호받을 경우 국내외 대기업과 경쟁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느냐도 선정 기준에 포함시켰다.
또 동반위는 같은 달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 시 적용되는 대기업의 범위를 흔히 재벌로 불리는 공정거래법상 자산 규모 5조원 이상의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으로 정했다. 공정거래법을 기준으로 대기업을 분류하면 대기업의 범위가 줄어든다.(공정위가 지난해 4월에 지정한 자산총액 5조원 이상 기업집단은 모두 55개로 이들 대기업 계열사는 총 1554개다.) 하지만 동반위는 이 기준은 ‘이양 품목’에만 적용하기로 했다.(1차 발표된 품목 가운데는 세탁비누만이 유일하게 이양품목이다.) 실태 조사를 통해 예외가 인정되는 경우 중소기업기본법을 적용해 종업원 수 300인 이상 기업을 대기업에 포함시키는 등 품목별로 기준을 신축적으로 적용하기로 했다.
중소기업 “생색만 내냐”
이같은 우여곡절 끝에 선정된 적합업종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권고수준이어서 이행에 대한 실효성에 담보되지 않는다. 이 권고 조치도 당초 계획한 중기청장의 고시 형태가 아니라 이에서 한발 후퇴한 동반성장위의 권고수준을 택했다. 중소기업계가 적합업종 선정을 두고 ‘자칫 알맹이 없는 생색내기에 그칠 수 있다’며 우려하는 대목이다.
사실 적합업종 사업 초기부터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신경전은 팽팽했다. 가이드라인이 발표된 직후인 지난해 4월 27일 전경련과 대한상의, 경총 등 경제 3단체와 대한건설협회 등 7개 업종별 단체는 동반위, 지식경제부, 중소기업청에 가이드라인의 수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어 6월 15일에도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주요 품목의 중기적합업종 타당성 분석보고서’를 내고, 레미콘, 데스크톱PC, 유리식기, 재생타이어 등 6개 품목에 대해서는 중기적합업종 선정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기업, 언론플레이 중단하라”
중소기업계도 즉각 대응하고 나섰다. 한국연식품협동조합연합회(회장 최선윤)는 6월 27일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전경련이 발표한 ‘중소기업 적합업종 타당성 분석시리즈 : 두부’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며, “두부의 중기 적합업종 선정과 관련해 대기업 및 전경련의 언론보도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맞받았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1차 적합업종 품목이 선정되자 양측의 신경전은 더 가열됐다. 정운찬 위원장은 중소기업 적합업종·품목의 실효성과 관련해 “동반성장은 자율적으로 하는 것”이고 “사회적 압력이 법보다 훨씬 더 무서울 때가 있다”며 대기업의 자발적인 참여를 촉구하기도 했다. 정 위원장은 중소기업 적합업종이 법적 구속력이나 강제성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특별한 (규제)장치는 없지만 법보다 더 무섭고 중요한 것이 사회적 합의라고 생각한다”며 “타율로 받아들이는 기업이 일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미 사회적 공감대는 이뤄졌다고 보고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기중앙회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은 비현실적”이라는 성명을 내었고, 전경련은 ‘중기 적합업종 특별법’을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중소기업중앙회 동반성장추진위원회도 11월 14일 “최근 중소기업적합업종 선정이 당초 기대와는 다르게 미온적이고 미숙하게 운영됨으로써 중소기업계의 현장의견이 제대로 반영되고 있지 않다”며 「중소기업적합업종 선정」관련 성실한 이행을 촉구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법적 강제력 가질 근거 마련
지난해까지 동반위는 민간위원회로 법적 권한과 강제력이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국회가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통과시키면서 올해는 동반위의 정책 추진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위원회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 및 대기업의 이행여부를 둘러싼 법적 실효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다. 올해도 제조분야 적합업종 신청은 지난해에 이어 계속되고 있어, 어떤 업종, 품목들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소상공인들의 삶과 직결되는 서비스 유통업 분야에 대한 적합업종 선정도 하루빨리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전인철 기자 sbnews777@naver.com
관리자 ihjung@sb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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