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위는 지난해 제조업에서 79개 품목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선정했다. 올해에는 제조업 이외 유통 서비스업도 포함된다. 제조업의 경우도 선정 가이드라인 설정을 두고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유통서비스업 경우도 만만찮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기존의 제조업 및 기업 소모성 자재(MRO) 동반성장 가이드라인을 중심으로 유통 서비스업의 가이드라인의 대강을 미리 짚어본다.
소상공인, 생존할 권리가 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의 취지는 한마디로 상생이다. 시장 지배력이 우월한 대기업들이 중소기업 영역까지 무차별적으로 진입하여 소상공인들의 생존이라는 기본권마저 위협하자 동반성장위원회에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선정해, 대기업의 자율적인 진입자제 및 사업이양을 통해 중소기업의 사업영역을 보호하려는 제도적 장치다.
자본주의도 좋고, 자유시장도 좋고, 경쟁을 통한 성장도 좋지만, 결국 한 체제가 영위될 수 있는 근거는 그 사회 전체의 발전과 행복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 어떤 체제도 인간의 삶보다 우선될 수는 없는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에 우선하는 문제는 없다. 인간의 기본권이라는 차원에서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그 누구의 목숨과 삶도 사회는 결코 외면해서는 안된다. 당사자만 열심히 산다면 그 누구도 생계를 위협받아서도, 자식을 교육하고, 부모를 봉양하는 일이 불가능해서도 안된다.
적합업종이란 제도의 근저에는, 이익다툼에 앞서 약자의 엄정한 생존권이 놓여 있음을 알아야 한다. 특히 우리 530만 소상공인의 경우는 이 문제가 더욱 절실하다. 서비스 유통업 분야에서도 하루빨리 적합업종 선정이 이뤄져야 하는 까닭이다.
중소기업 방패막 사라져
과거에도 적합업종 제도와 유사한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가 있었다. 중소기업의 안정적 사업영역 보호를 위해 정부는 1979년 도입한 제도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부작용이 나타났다. 중소기업이 고유업종 보호막에 안주해 품질 향상은 뒷전이고 기술개발도 하지 않는 폐해가 나타났다. 또, 중소기업들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기보다는 제도적 수혜에 급급해 여러 개 중소 자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더우기 국내 대기업 진출을 막아놓으니 외국기업들의 시장참여가 늘어 외국제품이 국내시장을 잠식하는 등 정책 실패가 드러났다. 결국 정부는 고유업종 지정 업종 수를 점진적으로 감축해 2006년 아예 제도를 폐지했다.
이런 선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반위가 중소기업 적합업종ㆍ품목 선정에 다시 나선 것은 이번에는 다른면에서 시장실패가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최근 본보(2012년 1월 19일자. 제5호)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했듯이 대기업들의 중소기업 영역 및 골목상권 진입은 점입가경 수준이다. 한마디로 ‘대기업들이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정부도 같은 판단하에 동반성장위원회를 출범시킨 것이다.
가이드라인 어떠했나
동반성장위가 공청회 등을 거쳐 마련한 제조업 가이드라인은 시장규모나 중소기업 업체 수 등에서 일단 제도운영의 효율성을 기할 수 있는 범위를 설정했다. 그리고 그 업종이 중소기업에 적합한지를 알아보기 위해, 해당 품목을 생산하는 데 효율적인 기업규모가 중소기업에 적합한지, 또 1인당 생산성이 대기업보다 높아 생산성 측면에서 경쟁력이 있는지, 해당 업종 전체 종사자 비중이 중소기업에 더 많은지 등을 따져보기로 했다.
나아가, 적합업종 선정에 따를 수 있는 부정적 효과를 방지키 위해, 대기업이 배제되더라도 품질 위생 안정 AS 측면에서 소비자 만족도가 유지될 수 있는지, 대기업 사업을 제한해도 그 공급망에 있는 협력사 경영에 심각한 타격을 주지는 않는지, 외국기업이 진출하거나 또는 제품이 수입되어 국내 대기업에 역차별은 우려되지 않는지, 해당 대기업의 수출 비중이 낮아 수출경쟁력을 저해하지는 않는지 등을 검토하기로 했다.
끝으로 중소기업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해당 중소기업이 총매출액의 일정 비율 이상을 연구개발비로 투자하고 있는 품목, 기술수준이 어느 정도 확보돼 있어 적합업종으로 선정해 일정 기간 보호할 경우 국내 대기업과 경쟁이 가능한 품목 등으로 제한했다.
이런 기준에 따라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선정된 분야에는 3년 동안 대기업의 진출이 제한되도록 했으며, 적합 품목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은 위원회 심사를 거쳐 한 차례 더 적합 업종으로 선정될 수 있어 최대 6년간 보호받을 수 있도록 했다.
제조업의 경우가 유통 서비스업 가이드라인으로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지만, 유통 서비스업 가이드라인 설정이 험로가 될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현재 유통 서비스업 분야에서 적합업종 신청을 계획하고 있는 업종은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는 지혜가 필요하다.
특히 유통 서비스의 경우, 제조업과는 별도로 마련된 기업 소모성 자재(MRO) 가이드라인도 참고할 만하다. 대기업들이 잇따라 기업 소모성 자재(MRO) 사업을 확장하면서 ‘계열사 몰아주기’ 논란이 빚어졌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중소기업들이 시장을 만들어 놓으면 뒤늦게 들어와 시장을 장악하는 얌체행위가 도를 넘어섰다는 진단도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에 힘을 실어줬던 것이다.
대기업 MRO의 사업확장을 제한하는 MRO 가이드라인은 일감몰아주기 증여세 부과기준을 차용해 ‘내부거래 비중 30%’ 초과 여부를 잣대로 MRO의 신규사업 참여 범위를 차별화했다.
내부거래 비중이 30% 이상인 MRO가 다른 재벌사와 거래할 때는 매출액 3000억원 이상인 기업과만 거래할 수 있고, 30% 미만은 재벌 계열사 중 매출액 1500억원 이상인 기업까지만 신규로 거래할 수 있도록 영업범위를 제한했다.
또 MRO 대기업이 제조사로부터 직접 구매하는 완제품은 구매비중을 30% 이하로 하도록 하여 중소유통상인들의 생존권을 보장했다.
MRO 대기업의 과도한 이익취득과 우월적 지위를 통한 불공정거래 방지를 위해 영업이익이나 매출이익을 공표토록 했고, 납품단가의 일방적 인하요구 금지, 일방적 거래단절 금지, MRO 덤핑공세 금지 등 불공정거래행위를 금지토록 했다.
하지만 대기업들의 반발로 가이드라인 준수는 여의치 않았다. 한국베어링판매협회 등은 당시 LG 계열 MRO 업체인 서브원에 동반성장위의 가이드라인 수용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 가이드라인 준수를 촉구하기 했다. 동반성장위 실무위원회에서 가이드라인을 논의한 대기업 MRO 업체 중 서브원은 ‘고객이 원할 때에는 기업 규모에 관계없이 납품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을 추가해야 한다며 부분적으로 부정적인 견해를 밝혀왔다.
이에 대해 베어링협회 측은 “서브원이 저가 물량공세를 하면서 중소기업들에게까지 물량을 공급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며 “단서조항이 포함되면 가이드라인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반발했다.
소상공인들은 IMK를 인수한 인터파크에도 가이드라인 준수를 요청하고 중소기업청을 통한 사업조정 재신청을 내놓은 상황이다.
최근 유통쪾서비스업 분야는 대기업의 급속한 사업 확장 및 진출로 중소상인들의 생존영역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대기업이 일단 소상공인 영역에 진출하면 보통 1년을 못넘겨 시장이 대기업에 잠식당하고 만다.
이같이 급박한 현실에서, 현재와 같이 적합업종 몇 개 품목을 선정하는 데 수개월이 걸리는 방식으로는 중소상인들의 생존권을 보호해 줄 수 없다. 현재 도쪾소매업, 식자재 납품업, 외식업 등의 유통쪾서비스 분야에 대한 적합업종 선정과 관련해서는 가이드라인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동반성장은 의지와 진정성의 문제다.
전인철 기자 sbnews777@naver.com
관리자 ihjung@sb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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