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편안이 갖고 있는 오류에 대해
이번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를 새로 책정하는데 개편안은 몇 가지 잘못된 전제로부터 시작했다. 첫째는 신용카드 거래 건수가 높아질수록 건당 수수료율을 낮게 적용할 수 있다고 언급한 부분이다. 이는 전체 매출액이 많을수록 수수료가 낮아지게 된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는 개편안이 처음부터 내걸었던 수수료의 합리적 재편이라는 취지와 동떨어진 것이다.
개편안은 처음에 수수료 책정을 하는데 있어서 신용카드 네트워크를 유지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을 산출해야 할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리고 이를 가맹점별로 배분하기 위해 비용과 편익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오류1, 신용카드 거래 건수 높은데,
왜 수수료 내려가나
그렇다면 신용카드 네트워크로 인해 가장 이익을 보는 쪽이 가장 높은 수수료를 부담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졌어야 한다. 애초 우리나라 신용카드는 1978년 백화점, 호텔, 고급 음식점에서부터 쓰여지기 시작했다. 돈 많은 고객들을 유치하려는 업소들과 돈 대신 카드를 갖고 다닌다는 자기과시욕과 편리성을 추구하는 일부 부유층들의 욕구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여기에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말처럼, 카드 네트워크가 활성화될수록 카드 사용 고객들의 씀씀이가 커질 수밖에 없는 속성도 무시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카드 사용자들이 많아질수록, 가맹점이 많아질수록 가장 이익을 보는 쪽은 이를 통해 매출을 가장 많이 올리는 대형 가맹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편안은 전체 매출액이 많을수록 수수료가 낮아지게 된다는 잘못된 전제를 적용했다.
이는 개편안 책자 말미에 소개된 덴마크 직불형 카드 Dankort 수수료 체계와 모순된다. 덴마크에서 1983년부터 사용된 PIN을 사용하는 직불형 카드 Dankort에는 고객들의 연회비가 없다. 다만 카드 인프라 비용 부담 차원에서 가맹점 별로 차등화된 연회비가 부과된다.
이에 따라 연간 500건 미만의 결제 건수를 보이는 소형 가맹점은 784 DKK(1DKK= 약 201원, 157,584원)을 부담하고, 500-5천건 1020 DKK, 40만 건 이상 146,364 DKK(2,900여 만원)를 부담한다. 소형 가맹점에 비해 대형 가맹점이 무려 185배나 많은 수수료를 부담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결과가 나오게 된 것은 바로 카드 사용으로 인해 대형 가맹점이 가장 이익을 많이 본다는 관점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오류2, 구시대적 VAN 수수료 체계 적용
두 번째는 그러지 않아도 문제가 심각한 VAN사 수수료 체계를 적용한 결과, 객단가가 높은 가맹점일수록 수수료가 낮게 나온다는 결론으로 이어져 버렸다. 이에 따라 소액 결제 가맹점들의 수수료는 VAN사에게 지급되는 수수료 원가가 높기 때문에 대부분 수수료가 올라가게 된다.
그런데 개편안이 언급한 VAN 수수료 체계의 골격은 90년대 말 경 세워진 이래 거의 변화가 없었다. 당시에는 현재처럼 전산화가 거의 발전되지 않았다. 일일이 매출 전표를 수거하는 게 매우 큰 일이었다. 또 이를 입력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아울러 특히 가맹점 모집 비용 비중이 매우 높았다. 당시에는 가맹점 가입이 의무화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VAN 수수료 구성을 보면 지금도 거래승인 관련 수수료가 건당 83.3원이 책정돼 있다. 카드를 긁었을 때 발생하는 비용이다. 여기에는 전산 비용 및 가맹점 모집 비용, VAN사의 마케팅 비용이 포함돼 있다. 또 이와는 별도로, 승인된 카드 전표의 수거 및 보관비용, 이에 따르는 전산 비용 명목으로 추가 비용이 더 소요된다. 이 과정에서 대형 가맹점의 경우는 건당 5.5원이 들어가고, 중소 가맹점에서는 68.3원의 비용이 소요된다.
건당 VAN 수수료로 대형 가맹점 88.8원, 중소형 가맹점 149.9- 151.5원의 수수료가 발생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소요되는 VAN 수수료의 책정 기준이 구시대적이라는 것이다. VAN 산업은 이제 초기 네트워크망 등 시스템 이 구축되고 나면, 동 시스템의 유지 관리 비용 외에 영업을 위한 추가비용이 들지 않게 돼 있다. 즉 가맹점들 입장에서 VAN사는 카드 단말기 한 대 설치해주고, 꼬박꼬박 수수료를 빼가는 존재 이외 아무것도 아닌 셈이다. 그래놓고 이를 근거로 대형 가맹점 대비 수수료율을 높게 책정한 것은 말도 안된다는 반응이다.
더욱이 과거와는 달리 VAN 네트워크 유지 비용도 거의 들지 않는다. 즉 영수증 수거 및 보관, 데이터 입력과 같은 업무가 거의 수반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VAN사들은 대형 가맹점에 엄청난 수준의 리베이트를 바치면서까지 가맹점 유치에 열을 올린다. 심지어는 수수료의 80%까지 되돌려준다는 관행이 공공연한 비밀이 됐다.
그 리베이트가 결국 거품이라고 봤을 때 중소형 가맹점에서 발생하는 거품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결국 중소형 가맹점들은 VAN사들이 대형가맹점들에게 바치는 리베이트까지 대신 내주고 있는 셈이다.
기타의 오류들
개편안이 갖고 있는 또 하나의 문제점은 역시 이같은 VAN 수수료와 연관돼 있다. 이렇게 해서 VAN 수수료 때문에 중소 가맹점 수수료가 올라간다고 쳐도 그 차이는 0.12%를 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맹점간 수수료 차이는 0.5% 이상 차이가 나는 가맹점들이 많다.
그런데 개편안에서는 “소액결제 가맹점의 경우, 총 수수료 중 VAN 수수료 비중이 높기 때문에 고액 결제 가맹점보다 수수료가 올라가게 됐다”라고 언급하고 있다(개편안 보고서 54쪽). 큰 폭으로 발생하는 가맹점간 수수료 차이에 대해 개편안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개편안의 또 다른 문제점은 수수료 책정 요소로 마케팅 요소와 VAN 수수료 요소를 반영하면서도, 지난 10년 동안 인하된 자금조달 비용 요소의 수수료 인하 요인은 거의 반영하고 있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 동안 전업카드사들의 자금조달 금리는 2001년 0.93%에서 06년 0.48%, 07년 0.43%, 2010년 0.34%, 2011년 0.39%로 현저히 낮아졌다. 이 부분에서만 가맹점 수수료의 0.54%(2011년 기준)의 추가 인하가 가능한데도 개편안은 이에 대해 거의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이 것은 전체 수수료 중 VAN 수수료가 차지하는 0.11-0.23%보다 월등하게 높은 비율로 자금조달금리 인하분만 제대로 반영했어도 수수료율은 대폭 내려갈 수 있었다.
이외에 개편안은 금액당 원가율 1.6%의 구체적 내역이 어떻게 되는지 설명이 부족하다. 특히 아무런 규제없이 카드사들이 임의로 책정해 온 마진율을 어느 정도까지 인정하고 있는지에 대한 언급도 없다.
아울러 현재의 국세 수수료가 1.2%로 책정돼 있는데, 어떤 근거로 그렇게 낮은 수수료를 책정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이 빠져 있다. 결과적으로 이번 개편안은 기존 업종별 수수료 체계에 결여된 합리성과 공정성을 배가한다고 한 취지에서 크게 벗어나 버렸다. 되려 가맹점 수수료 차이에 굳이 합리적 이유를 붙인다고 하면서, 소액 결제 가맹점 수수료를 올려버리는 불공정함에 빠져버렸다.
전인철 기자 sbnews777@naver.com
관리자 ihjung@sb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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