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시공업체 사람들 (20)      

취재를 위해 벽송광고사를 찾았다. 다른 광고사와 달리 간판 외에도 외부에 조형물이 걸려있고, 한쪽엔 크레인이 주차돼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꽁지머리를 한 채 조각하고 있던 정병춘 대표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의 첫마디는 “모두들 일이 많지 않다고 걱정을 하고 있다던데, 요즘 어떻게 돌아가느냐”라는 것이었다. 그 역시 업계의 어려움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올해 56세로 1남 1녀를 둔 정병춘 대표는 군대 입대 전에 고향 경남 함양에서 도장을 파는 간판집에서 잠깐 일을 하면서 ‘간판이 이렇다’라는 맛만 보았다. 그리고 서울로 상경을 해 기초에서부터 현재 하고 있는 수작업의 조각에 이르기까지 두루 섭렵하는 등 파란만장한 세월을 보냈다.

현수막서 조각까지 영역 확장
정병춘 대표는 다른 기술자와 마찬가지로 여러 곳에서 광고사를 거치면서 일을 배웠다. 동작구의 가나안 광고에서 기사생활을 하다가 프리로 전환한 이후 지금까지 많은 시공을 했다. 그리고 1992년도에 본인의 사업체를 직접 운영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는 간판업을 시작하는 광고인치곤 특수하게, 나염을 기본으로 하는 현수막공장으로 첫 발걸음을 뗀 것이다.   
“이 당시 운이 좋았는지 아니면, 방향을 잘 잡았는지 몰라도 엄청나게 일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돈도 꽤 벌었습니다. 정신없을 정도로 바빴으니까요. 지금 생각해도 그 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이후, 나염현수막 시장이 조금씩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지만, 정병춘 대표는 서울옥외광고협회 관악구지부장이란 중책을 맡을 정도로 대내외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그의 활동 영역도 간판, 실사, 크레인, 조형물, 조각 등으로 더욱 더 넓어졌다. 

서예·조각에도 조예 깊어
정병춘 대표는 배우는 것에 대해 지금도 열정적이다. 바쁜 와중에도 동서울대학 디자인과를 졸업하는 등 서예부터 조각에 이르기까지 전문가 못지않은 실력을 갖추었다.  
그의 호는 ‘유천’이다. 서예와 조각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이 그의 꿈이다. 특히 정 대표는 광고인이라면 당연 갖춰야 할 기본덕목에 대해서도 일갈했다.  
우선, 그는 “이 어려운 시기에, 광고인에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광고하는 모든 분들이 광고의 자질을 제대로 갖추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이 자질만 갖추게 된다면, 지금처럼 제살을 깎아먹는 것이나 다름없는 치열한 가격경쟁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광고인으로서의 자질만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광고주들에게 단순히 소재에 대한 가격만 알려줄 것이 아니라, 광고물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함께 알려주면서 작업에 따른 위험도나 기술적 가치까지 가격에 반영시킬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견적서를 보면 우리가 구입하는 소재를 도매가로 적어 넣고 거기에다 달랑 인건비만 추가하니, 어떻게 적정 가격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이제 우리 스스로가 적정 가격을 만드는 데에도 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연구를 해야 될 시점이 온 것 같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시공까지도 거뜬히 소화
이처럼, 현실에서는 물건에다가 인건비를 받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 시공을 할 수 없는 광고사는 상당한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다. 또 체인점 형태의 광고사들은 공장에서 이미 만들어진 프레임을 갖고 와 프리 작업자에게 시공 발주를 하기도 한다. 과거와 다르게, 간판은 짧은 시간에 대량생산이 가능한 구조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러나 안전이 그 무엇보다 중요시되는 시공은 그렇게 될 수도 없다. 결국, 옥외광고업계도 가까운 미래에는 간판과 시공으로 크게 나눠질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4천만 원 매출의 경우 고작 7백만 원 정도밖에 남지 않는다는 어느 광고사 대표의 이야기는 광고업계의 구조적인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다. 이는 광고물 견적도 낮게 책정된 상태에서, 크레인비 및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또 시공은 현장 상황마다 다르기 때문에, 시공 시간이 오버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와 관련 추가 비용 역시 지급해주어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병춘 대표는 예나 지금이나 시공을 직접하고 있다. 그는 옥외광고물 시공사 자격시험에서도 거뜬히 합격할 정도로 시공에도 남다른 노하우를 갖고 있다.                                                        

변기원 위원장  webmaster@sb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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