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입 쉽고 부담 적은 유통서비스업 진출 … 소상공인 밥줄끊겨
2012년 대한민국. 재벌의 문어발이 도를 넘었다. 돈이 된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영세 골목상권까지 침범한다. 일반 국민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업종에서, 더 재빠르게 탐욕의 촉수를 뻗치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경제정의 따위는 이미 버린지 오래다. “재벌이 꼭 이런 사업까지 해야 하나”는 비판여론이 무색할 지경이다.
과거 산업화 단계에서는 대기업이라 하면 그래도 중대형 제조업을 주력업종으로 하여 우리 경제의 근간을 이루었다. 하이테크와 고급인력 자본력을 바탕으로 ‘큰형’ 몫을 해냈다. 각종 특혜나 정경유착에서 자유롭지는 못했지만, 경제성장이라는 국가적 지상과제 앞에서는 웬만큼 눈을 감기도 했다.
어쨌든 기업이 잘 되면 나라경제도 나아지고 내살림도 피겠지 하는 믿음에서였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의 기꺼이 희생하고 지원했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 과연 재벌들은 이런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가. 오히려 저들의 행태는 돈에 혈안이 된 문어발, 아니 문어발을 넘어 지네발이다.
그나마 굵은 문어의 여덟 개의 다리로도 모자라 무수하게 꼼질거리는 지네발로 변해버린 괴물. 그 지네발의 주 타깃은 서비스-유통업계다. 진입도 상대적으로 쉽고, 조직적 저항도 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지네발은 골목상권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소상공인들에게는 쇠라면 뭐든지 집어삼킨다는 ‘불가사리’와 다름 없다.
SSM, 대형마트와 대기업 MRO
지난 1995년 WTO(세계무역기구)의 GATS 체제가 출범한 이후, 국내 소매업계에는 대기업 대형마트와 SSM(기업형 수퍼마켓) 광풍이 불어 닥쳤다. 거기에다 지난 2000년부터 시작된 대기업MRO는 10여년 만에 급속도로 국내 중소도매업계 시장을 잠식하며, 관련업계를 사지로 몰고 있다.
대기업으로 인한 소상공인의 피해는 어느 정도일까. 한마디로 의식주를 포함해서 모든 업종에서 대기업들은 소상공인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대기업 MRO(기업체나 공공기관에서 필요로 하는 소모성 자재의 구매와 관리를 대행하는 대기업 계열의 유통업체)들은 종이 한 장까지도 수수료를 받고 파는 셈이다.
수십만 가지의 품목을 땅짚고 헤엄치기로 팔면서, 기존의 영세유통업자들 씨를 말리고 있다. 결국 그들을 통하지 않고는 시장이 남아나지 않고, 영세 유통업자들은 장사를 포기해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
SSM은 점포가 눈에 보이니만큼 시장침투의 여파도 선명히 인식할 수 있다. 반면 대기업 MRO는 전혀 눈에 띄지 않고 부지불식간에 시장을 잠식해 들어온다. 하지만 파괴력은 거의 비슷하다. SSM은 한번 들어오게 되면 인근수퍼나 시장 같은 일반 소매상인들을 완전히 초토화해 버린다.
대기업 MRO의 타깃은 도매상인들이기에, 일반 소비자들 시선에는 이들의 폐해가 잘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의 매출이 폭증하는 만큼 일반 도매업자들 매출은 바닥으로 뚝 떨어지게 돼 있다. 애초 영세 도매업자들의 고객이었던 기업체들 매출을 독차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SSM이나 대기업 MRO로 인해 대한민국은 소매나 도매 모두 대기업 판이 돼가고 있다.
2000년 162개 점포에서 11.2조원의 매출을 올린 국내 대형마트는, 2011년말 기준 450곳 점포에서 33.7조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10년 새에 3배 이상의 매출 신장을 기록했고, 그만큼 재래시장 및 슈퍼는 매출 감소를 기록할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슈퍼마켓 숫자는 2001년 11만 685개에서 2009년 7만9,200개(추정)로 9년간 28%나 감소했다.
또 99년 46조원에 이르렀던 재래시장 매출이 2007년 27조원으로 41% 하락한 반면, 대형마트는 99년 8조원이었던 매출이 2007년 28.3조원으로 무려 253% 폭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영업자들의 터전인 재래시장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시장경영진흥원에 따르면 2003년 1695개였던 전국 재래시장 수가 2010년 1517곳으로 줄었다. 재래시장 178개가 문을 닫는 동안 재벌·대기업이 운영하는 SSM(기업형 슈퍼마켓)은 234개에서 929개로 늘었다. 대형마트 사업체 수 역시 2003년 265개에서 2010년 437개로 증가했다.
청계 도매상가를 가보라
대기업 MRO 업체들의 경우도, 매출 기준 2001년 3조7천억원에서 2009년 21조원으로 연평균 34.5%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한국산업용재협회가 2010년 3월과 11월 2차에 걸쳐, 전국 10여만 개에 이르는 산업용재업체 중 400개사를 샘플링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최근 3년간 해당 회사들이 25%의 매출 감소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들이 MRO영업에 본격 나서면서 기업체를 상대로 도매업을 하던 산업용구업체들이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실제 본보가 지난해 청계천 상가를 르포하면서 파악한 결과에서도, 관련업체들이 대부분 심각한 매출 감소를 겪는 가운데, 빈 점포들이 빠르게 늘고 있었다. 덩달아 택배업체들도 최근 몇 년 사이에 30%의 매출이 감소했다.
한국산업용재협회 유재근 회장은 “중소 공구유통업체들은 어렵게 어렵게 하나하나의 거래처를 뚫기 위해 혼신을 다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대기업 MRO들이 나타나, 자기들을 통해서만 그 회사들과 거래할 수 있다고 일방적으로 통고한다. 그리고 기존 납품 단가를 대폭 낮추게 하고, 통행세 내듯이 2%에서 7%에 이르는 고율의 수수료까지 물게 했다.
그들은 재벌그룹 계열사라는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해당 계열사들의 납품 물량을 공공연하게 우리로부터 빼앗아 갔다. 그것도 모자라, 그 계열사들과 거래하는 1차, 2차, 3차 협력업체들의 물량까지 독차지했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독자적으로 영업할 수 있는 시장이 급속하게 줄어 들었다.”고 호소했다.
“손쉽게 진출” 재벌가 외식업 성업
근자에 들어 특히 재벌 2~3세들의 서비스업 진출이 두드러진다. 이들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곳은 외식업이다. 그룹 계열사 유통망을 활용해 손쉽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데다가, 초기투자 비용 부담도 적은 점이 이를 부추긴다.
혁신과 창의라는 기업가정신은 이미 실종됐다. 오히려 기득권에 편승해 힘 안들이고 사업기반 확보는 물론 경영수업까지 할 수 있다는 점이 이같은 현상을 더욱 조장한다고 전문가들은 풀이한다.
이재현 CJ그룹회장은 고(故) 이병철 삼성 선대 회장의 장남인 이맹희씨의 아들이다. 그는 계열사 CJ푸드빌을 통해 식품업계 중 가장 활발히 외식 사업을 벌이고 있다. 베이커리 ‘뚜레주르’, 카페 ‘투썸카페’, 비빔밥 ‘비비고’, 국수’제일제면소’, 훼미리 레스토랑 ‘빕스’ 등 16개 외식 브랜드, 1800여 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CJ푸드빌이 2010년 첫 오픈한 비빔밥 전문점 ‘비비고’는 현재 국내 7곳으로 점포를 확장했고, 차이니스 레스토랑 사업에도 진출해 있다. CJ 그룹은 천일염 제조 사업에 뛰어들었다.
범LG가 자녀들에게 외식업체 선물
범LG가에 속하는 외식전문업체 아워홈은 2001년 돈가스 전문점 ‘사보텐’을 개점한 데 이어 2010년 말엔 ‘밥이답이다’를 오픈해 비빔밥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국내 케이터링(전문 출장부페 또는 출장파티 전문) 업계 1위인 아워홈 지분은 구자학 아워홈 회장(구인회 LG 창업주 3남 1녀)의 네 자녀가 모두 갖고 있다.
아들 구본성씨가 40%, 구지은 아워홈 전무 등 세 딸이 각각 20%씩이다. 아워홈은 돈카스 ‘사보텐’, 수제버거 ‘버거헌터’, 철판요리 ‘아키스타’, 일식 ‘키사라’, 중식 ‘싱카이’, 뷔페레스토랑 ‘오리옥스’, 푸드코트 ‘메인디시’ 등의 브랜드로 사업을 확장 중이다.
LG패션도 자회사 엘에프푸드를 통해 ‘하코야‘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고 있다. 2007년 12월 시푸드레스토랑 마키노차야를 인수하면서 외식 사업에 진출한 엘에프푸드의 ’하코야‘는 씨푸드와 일본 정통 생라멘ㆍ돈부리 브랜드로 잘 알려져 있다. 지난해 매출액은 190억원이며 국내 약 80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또 허승조 GS리테일 부회장은 2007년 일본의 ‘미스터도넛’을 들여와 현재 약 80여개 점포 운영 중이다. 허 부회장은 LG그룹 공동 창업자인 허만정 회장의 8남이다. GS그룹의 프레시서브라는 계열업체는 김밥과 샌드위치를 만들어서 납품하는 회사를 만들었고, 또 다른 GS 그룹 대주주는 삼겹살 체인점업에 뛰어들었다. 더욱이 LG 그룹은 아워홈과 사보텐, LF푸드 등 계열사를 통해 라면 순대 등을 판매해 왔으나, 최근 골목상권 잠식을 비난하는 여론에 밀려 이를 접기로 했다.
롯데그룹·남양유업·매일유업·현대백화점그룹...·
롯데그룹의 ㈜롯데리아는 패스트푸드 ‘롯데리아’, 커피 전문점 ‘엔제리너스’, 훼미리레스토랑 ‘TGIF’, ‘크림스피크림도넛’, 아이스크림 ‘나뚜르’ 등 5개 브랜드를 갖고, 국내외 2,000여 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지난해 매출액이 1조원을 넘어선 ㈜롯데리아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신동주 일본롯데그룹 부사장이 각각 14.59%씩 지분을 보유중인 롯데쇼핑이 지분 30.81%을 갖고 있다. 이들은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아들들이다.
신 회장의 셋째부인인 서미경씨의 외동딸 신유미씨도 롯데쇼핑의 지분 0.1%를 보유하고 있다.홍두병 남양유업 명예회장 3남인 홍명식 사장은 이탈리아 레스토랑 ‘일 치프리아니’, 오리엔탈 레스토랑 ‘미세스마이’, 회전초밥집 ‘사까나야’ 등을 운영하고 있다. 고(故)김복용 매일유업 창업주 아들인 김정완 매일유업 회장과 김정석 부회장은 커피 ‘폴바셋’, 돈카츠 ‘안즈’, 스시 ‘타츠미즈시’, 일본식 곱창요리 ‘야마야’, 인도요리 ‘달’, 중식’크리스탈 제이드’, 일본 양식 ‘만텐보시’, 수제버거’골든버거 리퍼블릭’ 등을 브랜드로 외식사업을 하고 있다.
현대백화점그룹 계열사 현대그린푸드는 베이커리 ‘베즐리’, 회전초밥 ‘본가스시’, ‘한솔냉면’ 등의 외식사업 브랜드를 갖고 시장을 확장하고 있다.
이 회사 지분은 정몽근 현대백화점 명예회장의 두 아들인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회장이 15.28%, 정교선 현대백화점그룹 사장 12.67%를 갖고 있다. 현대그린푸드는 지난해 말 연회 전문 브랜드 ‘아르드셰프’를 새로이 론칭했다.
재벌 커피 브랜드만 7개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도 계열사 신세계푸드를 통해 씨푸드레스토랑 ‘보노보노’, 햄버거 레스토랑 ‘자니로켓’, 컨세션사업 ‘푸드카페테리아’ 외에 골프장클럽하우스 등 외식사업을 벌이고 있고, 임창욱 대상그룹 회장 장녀인 임세령씨는 대상홀딩스가 지분 100%를 출자해 설립한 외식업체 와이즈앤피 공동 대표로 동남아 지역 음식점 ‘터치오브스파이스’ 2개점을 운영중이다.
고(故) 동양그룹 창업주 이양구 회장의 둘째 딸 이화경 오리온그룹 사장은 ‘마켓오’레스토랑 사업을 하고 있다. 애경그룹은 일본 치카라노모토사와 제휴해 일본 라면점 ‘잇푸도’를 운영하고 있고, 농심은 일본 브랜드인 카레전문식당 ‘코코이찌방야’를 들여왔다.
대기업 커피 브랜드는 철수 계획을 밝힌 삼성의 ‘아티제’를 제외하더라도, 신세계의 스타벅스, 롯데의 엔제네리스, CJ의 투섬플레이스, 이랜드의 더카페, 중견그룹 SPC의 파스쿠찌, 카페벨에삐, 귀뚜라미보일러의 닥터로빈 등 7개에 이른다.
대명리조트로 유명한 대명그룹도 2009년 퓨전 떡볶이점인 ‘베거백’을 강남과 목동, 홍천비발디파크 등 세 곳에서 운영했으나 작년 10월 강남, 목동에서는 철수했다. 대명코퍼레이션 관계자는 “골목 상권을 침범한다기 보다는 떡볶이 해외시장 진출을 위해 사전 마켓서베이 차원에서 시범적으로 점포를 열었던 것 뿐”이라며 “앞으로도 국내 매장을 열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이밖에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 외아들인 이웅열 코오롱그룹회장은 계열사 코오롱인더스트리의 스위트밀을 통해 치즈케이크 전문점 ‘스위트 카페’와 닭꼬치구이 전문점 ‘토리고’를 운영하고 있다. 이 회장이 지분 40.45%를 갖고 있는 코오롱이 코오롱인더스트리의 지분 27.76%를 보유중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계열사 한화호텔앤리조트를 통해 베이커리 ‘에릭 케제르’를, 한화갤러리아를 통해 델리 카페 ‘빈스 앤 베리즈’를 운영하고 있다.
약국 문구점 학원도 공략
한편 최근에는 학원 약국 주유소 문구점 등 전통적 골목 영세상점들마저 공략대상이 되고 있다. 웅진그룹의 웅진씽크빅이 운영하는 보습학원 ‘싱크센터’는 최근 급격히 점포수를 늘이고 있다. 기존의 자사 학습지와 연계된 형태로 운영한 덕이다.
또, 매장 내에 약국을 입점시킬 수 있는 드럭스토어 형태인 CJ그룹의 ‘올리브영’이나 GS리테일의 ‘왓슨스’는 아직까지는 영업이 활발하진 않지만, 일반의약품 슈퍼 판매가 허용될 경우 약국 사업에 진출할 수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마트들이 주유소 사업에 뛰어들거나, 문구 제조사 ‘모나미’가 문구점 사업을 시작한 것도 기존 상인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최근들어 시장이 급성장한 와인사업에도 LG, SK, 롯데, 신세계, 보광, 두산, 동원 등이 뛰어들었다.
LG는 2007년 LG상사 계열의 트윈와인을 세웠고, SK는 2008년 SK네트웍스 계열로 WS통상을 설립했다. 보광은 2008년 아미뒤뱅을 세웠고, 신세계는 2008년 말 신세계와인컴퍼니라는 법인으로 포도주시장에 합류했다. 막걸리 열풍이 불면서 CJ와 롯데, 진로, 오리온 등이 대거 막걸리 사업에 뛰어들기도 했다.
대기업들은 소금 사업에도 나서고 있다. 2010년 7월 CJ가 전남 신의도에 세계 최대 갯벌 천일염 공장을 완공하자, 8월에는 대상이 전남 신안군에 천일염 공장을 세웠다. 최근엔 풀무원도 CJ제일제당과 대상이 경쟁하는 국산 천일염 시장에 합류했다. 대기업들이 염전을 대거 확보하는 바람에 영세 천일염 업체가 무너져 지난해 초 소금값이 급등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론 질타 불구 “내 길 간다”
SK, 삼성, KT, 이랜드는 온라인교육에, SK는 차량정비와 사진관, 웨딩사업에까지, 롯데, 농심, 한화, 삼양식품, 오리온, 애경은 골판지 사업에까지 진출했다.
굳이 따로 회사를 설립하지 않더라도 기존 계열사를 통해 중소기업 또는 자영업 부문에 진출하는 경우도 빈발한다. 롯데마트 `통큰치킨’, 이마트 피자 등이 대표적이다. CJ그룹의 뚜레주르와 SPC그룹의 파리바게뜨는 이미 동네 빵집들을 거의 대부분 밀어냈다. 이들은 커피숍, 아이스크림점 등으로도 영역을 넓혔다.
하지만 여론의 질타에도 불구하고 재벌 기업들의 자영업 및 중소기업 업종 진출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2월 1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내놓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등의 소속회사 변동현황’에 따르면, 지난 1월 한 달간 상호출자·채무보증 제한 기업집단 55곳에 속한 계열사는 전달보다 13개(편입 39개, 제외 26개) 늘어났다.
의류유통업체 ‘갤럭시코퍼레이션’은 효성 계열사로 편입됐다. 효성이 원사를 공급하는 미국 기능성 스포츠의류 브랜드인 ‘언더아머’를 수입해 파는 이 회사는 조현준 효성 사장이 지난1월 설립한 회사다. 효성은 기존의 스판덱스 생산에 이어 의류 유통에까지 손을 뻗친 것이다.
또, SK에너지는 경기도 화성에 자회사 ‘하이웨이스타’를 설립했다. SK는 화물차 운전자들이 쉴 수 있는 복합화물차 휴게시설을 개발 운영할 이 회사를 통해, 주유소에 이어 고속도로 휴게업에까지 뛰어든 것이다. 현대백화점도 리바트를 인수해 대표적인 중소기업 분야인 가구제조업에 진출했고, LS그룹은 충북 청주의 흥업백화점을 인수해 지방상권으로 사업 범위를 넓혔다.
시위 나선 자전거 소매상들
‘프로스펙스’ 브랜드로 알려진 LS네트웍스(LS산전의 계열사)는 지난 2010년 4월 서울 잠원동에 660㎡(약 200평)규모의 자전거전문 대형매장 ‘바이클로’를 개장했다. 지난해 총매출 3,582억 원으로, 부동산임대 투자사업과 프로스펙스를 비롯한 아웃도어브랜드 사업을 하는 이 회사가 5,000여 소규모 영세상인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며 자전거 유통에 뛰어든 것이다. 개장 당시 수도권 자전거소매상인 50여 명이 이에 항의해 안양에 위치한 LS산전과 용산의 LS네트웍스 앞에서 시위를 벌였지만, 자유경쟁이라는 철벽 앞에서는 불가항력이었다.
국내외 30여개 자전거 브랜드를 취급하고 자전거 마니아들이 쉴 수 있는 라운지와 샤워 시설까지 갖춘 이 매장은 오픈 1년 만에 대리점이 10여개 이상으로 늘어났다. 계열사가 20개가 넘고 자산이 10조원에 육박하는 재벌그룹(LS그룹)이 자전거까지 팔면서 30년 이상 형성해 온 소매상권을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자전거판매업협동조합 인보식 이사장은 조합 차원에서 엘에스(LS)그룹을 상대로 중소기업 적합업종 신청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인 이사장은 “자전거 소매시장은 새로 가게 하나를 내려고 해도 매장 예정지의 반경 5㎞내에 있는 기존 조합원의 허락을 얻어야 조합가입이 가능할 만큼 아주 영세한 시장”이라며 “대기업이 시장에 참여하고 싶으면 대기업답게 직접 제품을 생산하거나, 아니면 고가의 고급 자전거를 대량으로 수입하여 소비자에게 저렴하게 공급하는 등 대기업다운 방식으로 참여해야 모양새가 맞을 것이다”고 비판한다.
계란 유통, 인테리어도
계란유통업은 재래시장 및 중소형 마트, 동네 요식업체, 제빵업체 등에 맞춤형 배달 등으로 운영해왔다. 두부, 콩나물과 같은 대표적인 지역밀착형 서민업종이다. 이런 상황에서 2000년대 초중반부터 풀무원, CJ, 오뚜기 등 대기업들이 OEM으로 계란을 납품받아 시장에 뛰어들어 일반소매, 식자재 등을 망라하고 있어, 3,000여 곳에 이르는 영세 계란유통업을 뿌리 채 흔들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시장은 점점 좁아지고 그 틈바구니에서 영세업자들끼리 좁아진 시장에서 생존경쟁하는 열악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한국계란유통협회 강종성 회장은 “대기업들은 신선식품계통 브랜드화를 통한 대대적인 광고공세와 두부, 콩나물 등 여타 신선식품과의 끼워팔기, 매장의 주요 매대 독점을 자행하는 등 대기업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시장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며 “대형마트 등에 판매직원을 상주 시킬 수 없는 영세유통업자들의 계란은 소비자 눈에 잘 띄지 않는 한쪽 구석으로 내몰려서 매장을 방문해 보면 판매가 극도로 부진한 것을 볼 수 있다”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건축 인테리어 업계도 마찬가지다. 인테리어 업계는 중국의 저가공세에다, 국내 건축경기도 주춤해 가뜩이나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와중에 대기업이 아파트 건축 내부인테리어도 자체 계열사에 발주하면서는 소규모 인테리어 업체들이 할 일이 없어졌다. 더욱이 최근에는 대기업 계열사들이 소매까지 직접하겠다고 나서는 통에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다. KCC그룹의 홈씨씨는 조만간 수원점을 오픈할 계획이며, LG도 에코하우스라는 프랜차이즈사업을 벌여, 현재 점포를 10개 정도로 늘렸다고 한다. LG하우시스는 서울 목동에 3~4층 규모의 빌딩을 인테리어 전시장으로 만들어서 오픈을 준비하고 있다. 소상공인들이 따라가지 못할 규모의 사이즈로 전시장을 운영하여, 동네 상권을 먹겠다고 뛰어든 것이다.
왜 서비스업에 집중될까
대기업들이 주력업종과 전혀 상관없는 빵집 순대 떡볶이 등 서민업종까지 진출하는 것은 상식적이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돈과 조직을 앞세워 상대적 약자의 기본생존권마저 위협하는 행태는 결국 부메랑이 되어 재벌의 발등을 찍을 수 있다. 내수시장이 무너지면 외국으로 이전하면 된다는 식이라면 대한민국은 어디에 있는가.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본업과 관련된 업종에 진출해 수직계열화를 이룬다면 문제 삼을 게 없겠지만 그룹의 지원을 받아 편안하게 수익을 낼 수 있는 수입ㆍ서비스업에 집중한다는 건 분명 기업가 정신의 실종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전문가들은 특히 재벌 2ㆍ3세들이 서비스업에 몰리는 현상에 대해 “선대가 이끌었던 제조업이 이제 ‘레드 오션’이 된 현시점에서, 기업가정신이 상대적으로 약한 후대들은 초기투자비 부담도 작고 계열사 지원에도 기댈 수 있는 서비스업으로 몰리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재벌그룹이 2대, 3대로 내려오면서 친인척의 수가 많아지고 있는 점도 하나의 동인이 된다. 늘어난 식구에게도 자리를 하나씩 주려다 보니, 외식업 등 골목상권을 위협하는 업종까지 넘보게 된 것이라는 말이다. 전인철기자 sbnews777@naver.com
관리자 ihjung@sb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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