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체인사업협동조합이 분명 젊어지고 있다. 세대교체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30년 이상 이 업에 종사해온 체인본부 대표들의 머리와 마인드가 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체인조합의 그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지난해 3월 취임한 권영길 이사장이 우뚝 서 있었다. 취임한 지 1년 5개월이 넘었지만, 권 이사장은 아직 멀었다고 한다. 이제 그는 또 다른 준비를 하고 있다. 바로 체인본부의 체질개선이다. 과거 수십 년간 몸에 배인 인습과 관행을 타파하겠다는 것이다. 취임 이후, 제조사와의 협상창구 일원화, 체인본부 결속력 강화, 대정부 협상력 강화 등 굵직굵직한 결과물을 내놓은 권 이사장이, 이번엔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낼지 그의 얘기를 들어보았다.



● 제조사와의 관계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궁금합니다
주류 유통시스템의 전체적인 흐름에서 본다면, 과거에는 체인본부들이 주류 제조사와 소매점(동네슈퍼)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면서, 거기에서 발생되는 수수료만을 갖고서도 미래지향적인 목표를 세울 수가 있었습니다. 즉 수수료 체계가 안정적으로 확립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무너지지 않을 것으로 확신했던 그 체계에도 조금씩 금이(수수료가) 생기기(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틈이 더 벌어지자 체인본부로선 외상거래를 할 수밖에 없었고, 제조사는 외상을 빌미로 체인본부의 발목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제조사는 겉으론 상생을 외치면서도, 안으론 자기 맘대로 요리할 수 있는 빌미를 우리 스스로 제공해주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장 취임(2012년 3월)과 함께 제일 먼저 했던 것이 바로 불합리한 제조사와의 관계개선이었습니다. 취임 당시, 대메이커(제조사)팀을 만든 것도 그런 이유이며, 지금은 제조사상생발전위원회로 확대시켜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자율정상화위원회, 물류·공동구매위원회, 중소상권대책위원회 등을 만들어 제조사, 체인본부, 동네슈퍼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지속적으로 모색하고 있습니다.

● 조합의 대내외적 역량이 그만큼 커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
저는 그렇게 확신합니다. 일례로, 지난해 음료와 주류 업계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됐던 빈병취급수수료만 놓고 보더라도, 터무니없게 책정된 수수료를 현실화시키기 위해 조합차원에서 무진 애를 써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환경부를 포함한 관련단체를 수시로 드나들며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건의했고, 그 결과 지난 7월에는 공청회까지 열리는 등 수수료의 현실화에 대해 정치권이나 관계부처에서도 공감대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꼭 한 가지 짚고 넘어 갈 것은 체인본부의 이익만을 위해 그렇게 해왔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자원의 재활용과 에너지절감이라는 공익적인 차원에서 이 문제에 접근했고, 수수료 인상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는 제조사조차도 우리의 순순한 뜻에 마음을 열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동종 업계의 관련 단체에서 수수료 현실화를 이끌어낸 주역이 우리 체인조합이라고 인정한다는 사실에, 이사장으로 자부심과 긍지를 갖게 되었습니다.

● 최근에 플라스틱박스 보다 종이박스가 부쩍 느는 것 같습니다.
빈병의 재활용을 강조하는 국가에서 종이박스를 사용하는 사례가 별로 없습니다. 있더라도 선물용 등으로 국한되지만, 국내 현실은 이들 국가들과 정 반대인 것 같습니다. 또 병보다 회수율이 낮은 PET병도 문제입니다. 현재 국내 맥주 총 생산량의 약 40% 정도가 펫(PET)에 담겨 판매되고 있지만, 가까운 일본만 보더라도 주류와 음료수는 물론, 심지어 물까지 유리병에 담겨 판매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모두 자원의 재활용을 고려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종이박스와 PET병을 줄이는 정책을 정부차원에서 적극 펼쳐나가야 할 것입니다.

● 제조사들이 직접 배송해야 될 주류를 체인본부들이 직접 공장까지 가서 실고 오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체인본부들이 직접 실어 나르는 경우가 최근 들어 부쩍 늘었습니다. 이럴 경우, 제조사에서는 운반보조비를 지급해줍니다. 그런데 그 액수가 터무니없다는 겁니다. 제조사가 화물기사들에게 실제로 지급하는 화물운송비와 비교해 1/3정도 수준에 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일한 노동력과 유류가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제조사는 이 원칙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국세청장 훈령의 주세사무처리규정’을 보면, 제조사는 구매자의 업소까지 직접 실어줘야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이 규정만 놓고 보더라도, 제조사가 당연히 해야 될 의무를, 체인본부들이 헐값에 대신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체인본부들은 직접 주류를 실고 와서, 대신 팔아주고, 또 빈병까지 회수해서 공장까지 갖다 주는 등 궂은 역할을 다하고 있지만, 제조사들은 운임보조비에는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이 운반보조비가 단계적으로 현실화될 수 있도록 제조사와 적극 협의해나갈 것입니다.

● 체인본부 내부적으로도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관련 업계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절대적으로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우리 업계의 고질적 병폐 중 하나가 바로 접대문화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타파하지 못하고선 그 어떤 변화의 바람이 불어와도. 체인본부의 체질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는 체인본부들도 제조사와의 관계에 있어서 생각과 관점을 달리해야 합니다. 예를들어 각 체인본부가 할 수 없는 교육세미나 등을 협력개최하여 앞으로를 위한 초석으로 삼았으면 합니다. 여행 보내주고, 또 술 사주는 그 예산이 결국엔 거래처 지원예산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꼭 명심해야 합니다.

● 조합의 향후 계획에 대해 한말씀만 부탁드립니다.
앞서 언급한 4개 분과 위원회를 중심으로 조합과 체인본부들이 유기적으로 함께 움직일 수 있도록 나침반 역할을 할 계획입니다.
건전한 주류유통시스템 확립을 위해 자율정상화위원회를 적극 가동할 계획이며, 제조사상생발전위원회가 수직 관계가 아닌 수평 관계의 동등한 입장에서 당당히 협상 테이블로 나갈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줄 계획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중소상권대책위원회에선 제조사, 체인본부, 동네슈퍼가 공생할 수 있는 방안을 다각적으로 강구해나갈 것입니다. 최근 조합이 자체 브랜드인‘ThankQ 25시‘를 활용한 가맹사업 진출도 그 일환으로 보면 됩니다. 조합의 가맹사업은 기존 거래처인 동네슈퍼를 가맹점으로 유도하는 사업으로, 점포의 기본 골격은 그대로 유지하되 물류시스템을 적용해 동네슈퍼의 가격 경쟁력을 강화시켜나갈 생각입니다.
물류·공동구매위원회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물류와 공동구매가 수반되지 않고선 동네슈퍼도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최근 정부에서도 물류와 공동구매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적극 협조할 뜻을 밝힌 상황이어서 물류·공동구매위원회이 업무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김영욱 기자 sbnews7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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