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보호 위해 일단 진입장벽
한국화원협회 문영배 회장, 돌이켜보면 그에게 꽃과의 인연은 애당초 운명이었다.
집안이 농사를 짓고 있었고, 정부에서 권장했던 특용작물로 화훼농원을 시작해 자연스럽게 직장생활과 병행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역에서 훈장을 하고 계시던 아버지가 서예에도 일가견이 있어 문 회장은 형이 하고 있는 화원농장에서 축하화환의 글씨를 써주기도 했다.
문 회장의 글씨만을 고집스레 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형의 제안으로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화원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는 화원이라 하면 지금처럼 꽃만 팔고 마는 그런 시절이 아니었다. 꽃꽂이도 가능해야 하고, 화환의 글씨를 쓰는 일도 할 수 있어야 했다. 제반 관련 기술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런데 문 회장의 경우, 아내가 꽃꽂이를 잘 하고 본인 스스로는 글씨를 잘 쓰니 화원을 하기에 필요한 조건이 안성맞춤으로 갖춰져 있어 결국 문 회장은 가게를 따로 차려 독립을 하게 되었다.
꽃꽂이를 잘 하는 아내와 글씨를 잘 쓰는 문 회장의 조합은 환상적인 앙상블을 연출했다. 화원은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일하는 시간에 여유가 생기자 문 회장은 지역의 일을 돕기 위해 시민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지역발전을 위해 경륜장을 시화공단 폐염전에 유치하는 노력에서부터 YMCA 창립, 기독실업인 모임 창립, 와이즈만 클럽 창립 등에 애썼다. 시흥에는 거의 없었던 단체활동을 위해 노력했다. 시민운동을 하다 보니 경기도 지역의 화원협회 회장직을 맡게 된 것이 화원협회와의 인연이 되었다.
화원업계의 구원투수
지역사회를 위하는 일이라면 발벗고 나서는 데다, 본인의 이익에는 그리 급급하지 않는 모습에, 화원업계는 산적한 현안을 풀기 위해 문 회장에게 러브콜을 보낸다. 화원업계의 원로들마저 업계 난국을 타개할 구원투수로서 문 회장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몇 번의 고사 끝에 그는 회장직을 수락했다.
요즘 문 회장은 한 달이면 20일 이상을 화원협회를 위해 밤낮없이 뛰어 다닌다. 문 회장은 “업계를 위해 열심히 뛰어달라고 요청을 받았으니 사명감과 의무감이 크다”고 말한다.
각종 모임이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곳이라면 장소와 시간을 불문하고 열심히 찾아다녔다. 긴급현안이 있을 경우는 거의 국회에 살다시피 할 때도 있었다. 그 결과 카드수수료 인하, 소상공인 특별법 개정이라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는 데에 다른 단체와 연대해 힘을 보탰다.
또 농림수산식품부에서 지원하는 1억원의 예산으로 신품종 화훼 보급 지원자금도 유치하고, 여신협회의 장학금도 유치했다. 또 지난해에는 코리아컵스의 플라워디자인 대회도 성황리에 잘 치러냈다.
이런 여러 가지 성과에 힘입어 최근 한국화원협회는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이런 경우도 대개는 그 협회의 회장이 수상을 하지만 문 회장은 자신의 이름이 아닌, 기관의 이름으로 표창을 원해 협회가 상을 타게 된 것이다.
유종의 미 거두는 게 목표
문 회장의 소신은 “임기를 마칠 때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저런 상을 통해 받는 영광보다 회원들의 평가가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마음을 비워야 협회도 깨끗하고 투명하게 운영된다고 믿고 있다.
문 회장의 임기는 2년이다. 연임을 할 욕심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가능하면 개인의 영광보다는 협회의 운영이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는 것이 먼저다. 회장직에서 물러나더라도 소상공인으로서 일을 잘 해낼 수 있도록 계속 후원활동을 할 생각이다.
문 회장은 화원업계 종사자들이 그 어느 업종 종사자보다도 ‘소상공인 중 소상공인’이라고 생각한다. 자영업자의 순수익이 150만원 이하라는 통계 수치도 바로 화원업계의 종사자들을 지적하는 말이라 여긴다.
요새 들어서는 부쩍 경기도 어렵고, 화훼 가격 경쟁도 심해지고, 꽃에 대한 인식도 낮아졌다. 과당 경쟁으로 인해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꽃 가격이 똑같다. 당연히 업계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인터넷보다는 동네화원을
이 대목에서 문 회장은 “한 가지 소비자들이 잘 알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있다”고 강조한다.
바로 인터넷 꽃 화환 배달의 속사정이다. 꽃이나 화한은 아무리 인터넷으로 주문해도 결국은 현지 꽃가게에서 배달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꽃이나 화환의 경우는 인터넷보다는 가까운 동네 화원을 이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말이다.
근래 들어서는 화원업계에도 대기업이 들어오고, 아웃소싱 형태로 사업을 벌이고 있어, 이를 차단하기 위해 공정거래법으로 부당이익을 없애는 방향으로 가려고 한다.
특히, 한 번 판매된 꽃이나 화환을 다시 수거해 재사용하는 이른바 ‘재탕업자’들이 예식장, 장례식장에 마구잡이로 들어오는 바람에 화환의 판로가 거의 막혀버렸다.
이런 현장 여건을 고려하면 화원업계로서는 적합업종 지정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업종 진입을 제한하는 것이라고 문 회장은 말한다.
교육공제회나 재향군인회 같은 공공기관의 네트워크로 인한 판매, 고위직 공무원들, 대기업들이 수익에만 급급해 마구잡이로 시장진입을 시도하는 탓에 계속해서 판로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업계 고유영역을 지킬 수 있는 진입장벽을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는 얘기다.
문영배 회장은 화원업계 조직화 사업을 소상공인 단체를 통해 완성하고자 한다. 그래서 소상공인단체가 법정단체로 잘 출범할 수 있도록 소기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임기 내의 활동을 마무리 짓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다. 협회 역사에 남는 회장으로 평가받기 위해 자신을 내려났다는 문 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남을 세워야 남도 나를 세워준다.”
윤은자 기자sbnews7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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