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2일 정부여당에 의해 한미 FTA가 날치기 처리됐다. 야당과 시민단체들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정부여당에 의해 비준된 한미 FTA는 소상공인업계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한미 FTA 협정문 중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평가되고 있는 ISD(투자자 국가 소송제도) 조항은 소상공인업계에도 무소불휘의 힘을 발휘할 것으로 전망된다.

코스트코, 내년 용인점, 울산점 오픈

우선 ISD로 인해 지난 해 말 개정된 유통법과 상생법이 미국계 회사나 미국투자자들에게는 힘을 발휘할 수 없다. 그 첫 번째 희생양이 미국계 유통업체인 코스트코로 인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지난 3월 코스트코 코리아의 프레스톤 드레이퍼 대표이사가 LA를 방문했다. 한인 인재를 찾기 위해서다. 그는 “한국에서의 성장에 속도를 내기 위해 매장 확대를 추진하고 있어 우선은 이중언어가 가능한 부동산 전문가를 구하고 있다”며 “앞으로 다른 분야의 인재들도 영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용인점과 울산점 오픈을 준비 중”이라고 밝히고, “수원, 광주, 인천 등 잠재력이 있는 도시들도 많다. 앞으로 계속해서 매장을 늘릴 계획이다. 부동산 분야 만이 아닌 다른 분야의 인재들도 영입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한국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코스트코 코리아는 2009~2010회계연도에만 전 회계연도에 비해 30% 가까운 성장을 했다. 매장당 평균 매출은 한국의 대표적 유통업체인 이마트의 2배 이상이다. 현재 전세계 8개국에 580여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회사로, 국내에서는 양평, 대구, 대전, 양재, 상봉점 등 7개 매장에서 연 2조원 정도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영세도매업도 위험하다

이 회사가 한미 FTA 비준을 계기로 공격적으로 영업을 나설 태세다. 현재 운영중인 매장의 미국 상품 비중은 약 30% 정도인데, 그 비율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당연히 관세 철폐로 가격 경쟁력도 높아진다. 이 회사가 건축중인 용인점 인근에 이마트 트레이더스가 비슷한 창고형 매장을 운영 중이다.

그런데 이 매장으로 인해 인근 지역 중소 도매업체들이 초토화되고 있다. 이마트 트레이더스는 식당, 수퍼, 병원, 학교 등을 상대로 하루 2번씩 연중 무휴로 배달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가격도 공장도 가격보다 더 저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배달 구역은 용인지역 뿐 아니라, 성남, 수원, 화성동탄, 광주 오포 지역까지 광범위하다. 문제는 코스트코가 비슷한 창고형 매장 형태여서, 서로 경쟁이 격화되면 불똥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그 와중에서 이 업체를 상대로 유통법 상생법 등 어떤 방어조치로 취할 수 없다는 게 더 문제다.

미국계 유통업체는 화약고

만일 사업 조정을 걸어 건축 허가 기간이 지연되거나, 여타의 피해가 발생하면, 그 피해액 만큼 정부를 상대로 피해보상을 요구할 수 있다. 동시에 한미 FTA 협정문에는 가처분 신청도 병행할 수 있게 돼 있어서, 가처분 신청을 한 후, 건축 공사는 공사대로 진행할 수 있게 돼 있다. 이들을 통제할 수단이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지난 해부터 정부에 의해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나들가게 사업이나, 중소유통업체를 위한 물류지원사업도 발목이 잡힐 수 있다. 코스트코와 같은 업체들이 영업 중에 정부의 그러한 지원정책들로 인해 매출에 지장이 있다면 피해 보상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런데 ISD의 위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코스트코같은 직접 투자회사 뿐 아니라, 간접적인 투자자들도 보호를 받는다는 점이다. 미국의 어느 투자자가 이마트나 롯데에 일정한 지분을 확보하고, 국내의 소상공인 보호정책의 발목을 잡겠다고 마음먹는다면, 얼마든지 가능하게 돼 있다.

유통법 상생법 개정으로 가까스로 대기업과의 역학관계가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게 됐다.

그러나 한미 FTA로 상황이 급변하게 됐다. 미국계 기업으로부터 시작될 화약고는 방아쇠가 당겨지는 순간, 순식간에 국내 영세 유통업계의 기반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

영국계 홈플러스, 두 번째 화약고

코스트코 이상으로 위협적인 유통회사가 영국계 회사인 홈플러스다. 한유럽 FTA에는 ISD 조항과 같은 독소조항은 빠져있다. 하지만 협정문 내에 우리나라 유통법, 상생법과 같은 규제안에 대한 양허안까지 빠져 있어서 문제다. 지난 7월 협정문이 발효됐지만, 홈플러스 측은 아직까지는 칼을 빼들지 않고 있다.

최근 서울 서초동과 대치동에서 편의점형 SSM 직영점을 기습 개점하려다, 서초강남수퍼마켓협동조합에 의해 좌절됐다. 하지만, 편의점형 SSM 개점은 영국 본사로부터 이미 훈령으로 내려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당분간은 숨을 죽인다 해도, 업체간 경쟁이 격화되고, 한미 FTA로 인해 유통법과 상생법의 균열이 보이기 시작하면, 언제든 표변할 가능성이 크다.

만일 이러한 외국계 회사들이 틈을 벌려 놓기 시작하면, 국내 대기업들이라고 가만있을 리 없다.

그러지 않아도 한 밤의 기습개점이나, 프랜차이즈형 개점 등 별의별 편법을 마다하지 않는 업체들이다. 역차별 운운하며, 이들 또한 버젓이 영업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정부, 사전에 상황 감지했다

이같은 우려에 대해 정부도 인정하고 있다. 최근 진행된 한 TV 토론회에서 임종룡 국무총리실장은 한미 FTA와 유통법? 상생법간 충돌 가능성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고 하면서도 “사전에 정부 당국자간 양해를 구한 사항이어서 심각한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답변을 내 놓았다.

이에 대해 전국 소상공인단체연합회 최승재 사무총장은 “자본의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 투자업체들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제도적 장치는 양국간 맺어진 협정문밖에는 없다. 그럼에도 임실장은 사전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기는 커녕, 구두로 이뤄진 당사자국간 사전 양해의 이행에 기대를 거는 듯한 무책임한 발언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미국계 공룡 MRO, 그레인저사

한미 FTA로 인해 예상되는 피해는 비단 국내 영세 소매업에 국한된 게 아니다. 중소 도매업도 예외는 아니다. 당장 동반성장위원회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중소 유통업에 대한 적합업종 지정도 무위로 돌아갈 공산이 크다.

지난 6월 이뤄진 대기업 MRO(소모성 자재 납품업) 상위 4개사와의 사업조정도 실효될 수 있다.

미국에는 우리나라 대기업 MRO보다 비교할 수 없이 큰 MRO사들이 많다. 그 중 그레인저(Grainger)사가 다루고 있는 품목은 200만여 가지에 이르고, 이 회사의 지난 해 매출이 8조원을 웃돌았다. 이 업체는 최근에 매물로 나온 삼성 계열 MRO 회사인 IMK의 유력한 인수회사로 떠올랐던 회사다.

그런데 이러한 그레인저사가 국내에 별도의 기업을 세우거나, 제 3의 회사와 합작을 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70년간의 오프라인(Off-line)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축적된 노하우가 대단하며, 다국적 기업으로 최근에도 해외 MRO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한미 FTA에 발맞춰 좀더 발전된 미국의 산업 및 각종 소모성 자재를 값싸게 국내에 공급할 수 있고, 이들이 국내에 들어오는데 따를 수있는 특별한 장벽도 제거된 상태다.

지금도 청계천이나 구로 공구상가를 가면 상인들의 시름이 가득하다. 국내 문구 유통업체나 골판지 업체들도 마찬가지다. 2000년도 초에 시작된 ,대기업 MRO로 인해 기존에 이들이 담당해 왔던 유통망이 대부분 대기업에게 넘어갔기 때문이다. 2001년 3조 7천억원의 매출에 불과했던 대기업 MRO 사들의 매출이 09년 21조원을 넘어섰다. 대부분 중소 도매업체들이 담당해 왔던 시장이 잠식된 것이다.

정부 여당은 한미 FTA를 날치기 통과시켰지만, 불똥은 엉뚱하게 도소매업종을 가리지 않고, 영세업체들에게 돌아가게 생겼다.

관리자  ihjung@sb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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